인간성을 잃어버린 권력을 어찌할 것인가?

[김민웅의 인문정신] 야당은 기소권, 수사권 확보 당론으로 정하라

“살충제”를 뿌리는 권력

인간성을 잃어버린 권력이 지배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희생당한다. 그리고 그 사회의 영혼은 독성을 뿜게 된다. 희생자들을 비난하고 가해자들을 옹호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이 나라는 지금 “정치적 아우슈비츠”가 되고 있다. 권력에게 불리한 기억을 지닌 개인과 집단을 모두 따로 지목하고 줄 세워 소각(燒却)시키려 든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 박근혜와 집권당 새누리당,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들은 우리 사회에 “살충제”를 뿌리는 자들을 닮았다.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이들을 제거해야 할 벌레처럼 보면서, 모욕과 음해, 거짓과 왜곡이라는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중이다. 지난 대선 때 댓글 공작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이리라.

이러면서 이 나라 최고 권력에게 대롱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은 “불가촉 천민집단”이 되었고, 40일 이상을 단식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관철을 요구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존재 없는 “투명인간”이다. “세월호”라는 단어는 이제 청와대 회의실에서 불온한 금기어가 되었다.

<침묵의 봄>을 통해 살충제의 악폐를 고발했던 레이첼 카슨이 지적했던 것처럼, “살충제”라기보다는 “살생제”라고 할 이 화학제품의 정치적 변종은 지하수 깊은 곳까지 침투해 들어가 우리 사회 모든 생태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비수가 되고 있고, 권력 자신의 영혼은 썩어문드러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국가를 가로막는 자들은 누구인가?

가해자들을 색출하고 더 이상의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상국가의 기본책임이다. 이를 거부하는 국가 또는 정부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존립의 근거를 상실한다. 그것은 가해자의 소굴이거나 공모자의 집단이지, 주권자 국민의 대표성을 가진 헌법상의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만 봐도 참사 발생 이후 대통령은 긴급구조 조처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관련기관의 구조과정은 무능이 아니라 고의적 방치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살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살리지 않았다는 논란은 더는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3백 명이 넘는 목숨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인 것이 되는 셈이다.

이 의혹은 속히, 그리고 정확히 풀어야 지금과 같은 국가적 혼돈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가해 책임의 당사자를 활보하게 하고, 피해자들을 도리어 궁지에 몰아넣는 한 국가의 정상적 작동은 날이 갈수록 불가능해진다.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 행적은 최고 위치에 있는 공인의 책임수행이라는 관점에서도 스스로 밝혀야 하는 것인데 감추고 있는 것은 의혹을 도리어 증폭시키고 있다. 다른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때만이 아니라 요즈음의 행적을 봐도, 정작 중요한 일은 돌보지 않는 공감능력 부재의 관성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충분히 받을 만 하다.

누구의 잘못 또는 의도 때문에 이러한 비극적 희생이 결과했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민의 헌법적 권리다. 이러한 권리가 발동되는 것을 막는 자나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해자 당사자이거나 그와 연관된 개인 또는 세력일 뿐이다. 지금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을 대하는 자세는 가해세력의 은폐와 방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러한 의혹이나 문제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독립적인 진상규명의 권한이 확보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서도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꿀리는 것이 없다면, 유가족들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기소권, 수사권을 가진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마다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참사 당사자 우선의 원칙

세월호 특별법은 첫째, “참사 당사자 원칙에 의거한 법”이다. 가족이 희생된 당사자가 없는 세월호 특별법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호 특별법의 모든 존재근거와 발상은 여기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것을 벗어나려는 일체의 시도는 당사자 배제일 뿐이다. 지금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총력을 기울여 하고자하는 것은 바로 이 당사자 배제원칙의 관철이다.

진상조사위원회에도 참여시키고 추천권한도 주려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론할 수 있다. 당사자 포함 아니냐는 논리다. 자, 그렇다면 이런 경우를 어떻게 보는가?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법을 만든다고 하자. 여성들이 와서 발언해라, 그러나 최종 결정은 남자들이 하겠다, 그러면 당사자 포함인가, 배제인가?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위한 법과 제도를 만든다고 하자. 흑인들도 와서 발언하고 관련법 결정을 위한 인사추천권을 주겠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백인이 한다. 이러면 당사자 포함인가, 배제인가?

세월호 진상규명과 관련한 기소, 수사권을 갖는 특검 추천권 주겠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대통령만이 한다. 이러면 당사자 포함인가, 배제인가?

세월호 참사 사건에 대한 조사는 법적 강제력을 갖지 못하는 한 불가능하다. 이는 이미 청문회 과정에서 입증되었다. 당사자가 기소권과 수사권을 가진 조사 권한에 대하여 주체적 결정권을 가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진상조사는 비로소 실질적 결과를 결코 가져온다.

조사대상이 조사주체가 될 수 없다

둘째, 그러면 왜 특별법인가? 사건의 결정적 책임자인 박근혜 정권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조사권한을 결정짓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사대상과 조사주체가 동일할 수는 없다. 물론 조사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혐의가 확증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조사의 객관성,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혐의를 벗어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집권세력이 떳떳하다면 이를 거부할 바가 전혀 없다.

대통령이 특검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갖는 상설특검방식은 특별법이 이미 아니다. 새정치 연합 원내대표 박영선의 지난 번 대여 협상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지 못한 채, 기소, 수사권 포함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식의 투항적 논리에 따른 타결에 몰두한 결과였다. 상설특검방식을 세월호 특별법에 끼워 넣고 협상하는 방식은 특별법의 조사대상과 주체를 바로 세우지 못하게 하는 모순을 발생시킨다.

이완구 새누리 원내대표는 지난 8월 20일 CBS 방송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수사권한이 없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법적 수사권한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수사권한을 피해자가 직접 가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판사 검사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법조인이 그걸 받아 포함된 진상조사위원회가 갖겠다는 말이니 그의 말은 또한 틀렸다. 가해 책임이 있는 자가 수사의 자격이나 권한이 없는 것은 당연할 테니 이는 달리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세월호 특별법 문제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다. 김영오씨를 포함하여 유가족 대책위는 장기전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쉽게 물러설 기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상규명의 권한을 법적 강제력으로 보장하는 것은 양보나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원칙의 문제로 파악하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나가려는 자세다.

이제 야당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답은 하나다. 진상조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원칙을 당론으로 정하라. 그리고 이것이 갖는 법적, 논리적 타당성과 헌법적 권리의 의미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확산시키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함께 나설 개인과 집단, 세력은 차고 넘쳤다.

인간성을 상실한 권력과 맞서는 길은, 선과 의로움에 대한 확신을 결코 접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자식을 비롯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아직도 길바닥에서 고통스럽게 호소하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사회는 절망이 일상이 되게 하는 곳이 된다. 이 절망을 중단하기 위한 선택은 너무도 자명하다.

목숨을 잃은 이유를 알지 못하면, 앞으로도 우리는 이유도 모르는 채 목숨을 잃지 않겠는가? 누가 이런 사회를 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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