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금강산 관광 자금 핵 만드는데 쓴다고?

[정욱식 칼럼] 관광 중단 이후 빈번해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어느덧 6년이 훌쩍 지났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서 남북관계도 악화되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관광 재개 여부는 남측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가늠할 바로미터처럼 여겨져왔다.

'북한이 망하기만 기다린' 이명박 정부는 이런저런 구실을 들어 관광 재개에 부정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흐름은 현 정부 들어서도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또 하나의 족쇄를 스스로 채워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관광 재개 여부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북 제재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 재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21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금강산 관광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끌고 가려는지가 중요하다." 쉽게 말해 관광 재개 여부는 한국 정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 금강산 주봉(主峰)인 비로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주변 풍경 ⓒ현대아산

그런데 다음날인 22일 통일부는 또다시 어깃장을 걸고 나섰다. 김의도 대변인이 "금강산 관광 문제가 안보리 제재 결의하고 관련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정부 공식 입장이 최종적인 유권해석은 유엔제재위원회가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판단은 유엔제재위원회가 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통일부는 그 근거로 "북한의 관광 대가로 가는 자금이 대량살상무기와 관련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참고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2094호는 '대량 현금(bulk cash)'의 북한 유입을 금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 조항을 들어 금강산 관광 대금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사용되지 않아야 관광 재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는 정상적인 상업 거래까지 금지하지 않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로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했던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근거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일본조차도 독자적인 대북 제재 해제는 안보리 제재와는 무관하다며 일부 제재를 해제한 바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유엔 제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금강산 관광 재개와 연계시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금강산 관광 중단은 유엔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보복조치를 남한 정부가 독자적으로 가한 대북 제재이다. 이에 따라 이 제재 해제 여부는 남한 정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고, 미국은 안보리 제재와 관계없다고 한다.

관광 중단 이후 오히려 북핵 강화돼

북한에 지급됐던 관광 대금은 연간 4천만 달러(약 440억 원) 수준이다.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이를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돈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투입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이 정도의 관광 대금은 정부가 주장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비용에 '새 발의 피'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부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데 '북한 주민이 1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8억 달러 정도가 들어간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이 추정에 따르면 북한이 금강산 관광 대금 전액을 로켓 발사에 사용했다고 비현실적으로(!) 가정하더라도 5%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 사업이 이뤄졌던 1998년 1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북한은 한 차례의 핵실험(2006년 10월)과 한 차례의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2006년 7월)를 했다. 반면 관광이 중단된 이후에는 두 차례의 핵실험(2009년 5월과 2013년 2월)과 세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2009년 4월, 2012년 4월, 2012년 12월)를 했다.

이러한 통계는 금강산 관광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무관하거나 오히려 관광 중단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그만큼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길은 열렸는데

문제를 풀고자 하면 길을 찾으려 하고 문제 해결을 피하려면 구실을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이미 열린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은 고(故) 박왕자 씨 피살사건에 대한 사과, 재발방지 약속, 관광객 신변보장 등 남측이 제시했던 3대 조건에 대해 이미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대북 제재와 관련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미국 정부는 금강산 관광은 유엔 제재 결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관광 사업과 거의 관계도 없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라는 구실만 붙잡고 있다.

이러한 지적이 결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눈감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등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북핵 문제에 대한 남한의 발언권과 개입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이다. 북한과 핵문제라는 최고 수준의 전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신뢰구축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데 첫 단추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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