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가 정점을 지났다. 이제는 그 폭압적 부작용을 치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분배 문제는 국제기구들의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하지만 대안적 체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국가가 조세와 재정으로 부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한계가 있으며, 시장과 제도 내에서 자율적인 조정 기제가 작동하는 건전한 자본주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율적 제도 중 노동조합과 노사 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자본주의가 1930년대 대공황에 빠졌을 때 그것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노동권을 강화해 노동 소득을 향상시킨 미국의 뉴딜 정책이었다. 즉 노동조합에 의한 임금 인상 효과 등이 이른바 케인스(Keynes, John Maynard)의 유효수요를 확충했던 것이다.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영향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후유증으로 인해 양극화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그 폐해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저임금 노동자층에 집중되고 있다. 그들에게 노동권을 강화해 주는 천사가 당분간 등장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해법은 내부에서 찾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3퍼센트에 불과하고 그마저 두 개 노총으로 분할돼 있으며, 특히 기업별 노사 관계 시스템 탓에 파편화된 조직과 교섭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면 노동 계급 일반의 이해를 누가 대변해 줄 것인가.
전국적 노사 관계 유형 설정자, 현대자동차
그러한 점에서 한국에서는 대표 노조의 행태와 교섭 결과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둔다.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 노사 관계야말로 전국적 노사 관계의 유형 설정자(pattern setter)로서 관심의 초점이 아닐 수 없다.
현대차 노조의 교섭 결과는 기아자동차 등 그룹사의 유사한 합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한국지엠(GM) 등 다른 완성차 업체와 부품 협력업체들로 전파되며, 심지어 삼성과 같은 '무노조 기업'에도 영향을 끼친다.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교섭 결과는 각 지역 내에서 다른 중소기업의 비교 대상이 되기 일쑤다. 따라서 전국의 대표 선수로서 현대차 노조뿐 아니라 현대차 사용자 역시 엄청난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부담이 곧 책임감의 발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 노사는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먼 교섭 결과를 내놓고 있다. 박태주 박사가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 관계가 있다>(매일노동뉴스 펴냄)에서 표현한 대로, 현대차 노동자들은 웬만한 서비스 노동자(책에서는 현대차 지부장 간병인의 예를 들고 있다)가 1년간 받는 임금보다 많은 액수를 연말 성과급으로 가져간다. 물론 현대차의 고임금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대가라는 점, 그리고 그만큼 임금 구성이 불안정하다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그런데 부품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는가? 그러한 점에서 현대차 노조 조합원들의 고임금은 연대를 몰각한 전투적 경제주의의 산물이며, 부품 하청업체와 사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배경으로 한다. 더욱이 자기들만의 리그를 고착화하기 위한 산별 교섭 참여 기피, 비정규직과 제한적 연대(정규직 노조의 역할은 대리 교섭으로 국한되며, 비정규직의 고용 문제라는 핵심에 다가서지 않는다!), 그리고 불황 시에는 해외 공장을 우선 폐쇄하고 국내 고용은 유지한다는 단체협약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1998년 1만여 명에 이르는 고용 조정의 경험을 배경으로 단체협약과 특별 협약 등에서 수도 없이 고용 안정 협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이는 언제 잘릴지 모르니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 두자'는 단기 실리주의로 표출된다.
현대차 사용자의 '계급적 노조 부정'
거듭된 고용 안정 협약과 노조의 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고용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현대차 노사 관계의 최대 모순 지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1998년의 고용 조정 경험뿐 아니라 빈번히 이뤄지는 모듈화·외주화·자동화, 해외 공장 건설, 일부 화이트칼라들의 비자발적 이직 경험 등에서 기인한다. 근저에는 현대차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박태주 박사는 이를 현대차 사용자가 철저히 (자본) 계급적 입장에서 노조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해외 공장에서 나타나는 현대차 경영의 DNA와 같은 것이다. 매일매일 강성 노조와 마주해야 하는 현대차 사용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지만, 1987년 노조가 결성된 이후 '존재 인정 투쟁' 단계에서 마지못해 승인해 준 이후로 한 번도 노조를 파트너로 끌어안은 적이 없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사실 이 대목은 대단히 중요하다. 강성 노조로 인한 경영상의 곤란을 극복하기 위해 노조 기피 전략을 사용한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경영진을 믿지 못해 끝없이 작업장 운영에 개입과 간섭(저자가 말하는 책임 있는 경영 참여는 아니다!)을 일상화하는 노조가 먼저 불신의 빌미를 제공한 것인가.
박태주 박사의 답은 이 책 11장에서 제시된다. 현대차 노사 관계가 이렇게 꼬여 버린 원인은 노사에 모두 있을 수 있지만, 매듭을 푸는 것은 힘이 있는 사용자 측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억울할 수 있다. 힘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내 최강의 현대차 노조가 더 막강하지 않은가. 그러나 현대차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대법원의 두 차례 판결도 무시할 수 있는 강심장과 사람에 대한 투자 재원을 포함한 여러 자원을 갖고 있다. 더욱이 파업만 일어나면 나라 경제가 금방 거덜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 대는 수많은 우호적 언론 기관들도 동원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그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지만….
'저항적 실리주의'에서 '전략적 실리주의'로 가야
파업과 관련한 박태주 박사의 서술도 매우 흥미롭다. 현대차에서 최근 파업은 임단협 교섭을 마무리하기 위한 수순에 불과하며, 이제 현대차의 파업은 '짝퉁 전투주의'에 다름 아니다. 노무 관리자들은 회장에게 최대한 버텼음을 보고할 수 있고, 노조 역시 조합원들에게 최선을 다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불가피한 카드다. 노조 결성 이후 26년간 23회 파업을 했지만, 최근의 파업은 노사 간 사생결단의 다툼이 아니라 타협 선을 찾고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 돼 버렸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박태주 박사의 책은 이제까지 전문가들이나 의식 있는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노사 '담합'을 전면에 부각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적 담합이 내부 노동 시장을 지키려는 정규직들과, 소수를 포섭함으로써 다수의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자본의 공모에 기초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들은 2008년을 전후로 산별 교섭에 참여하는 것도 회피했고, 사내 하청 비정규직 문제를 진정성 있게 풀어내는 것도 마다했다. 이제까지 귀족 노조, 강성 노조만을 비난하던 보수 언론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은 달리 해석하는 것이 맞게 된 것이다.
담합이라는 용어 자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박태주 박사의 비판의 칼날은 정규직 노조도 겨누고 있다. 그들은 전투적 실리주의의 화신으로서 실 노동 시간을 단축하자고 하면서 연월차 수당의 지급률을 100퍼센트에서 150퍼센트로 인상하는 모순덩어리다. 공장 밖의 노동자들은 물론 옆에서 일하고 있는 사내 하청 비정규직도 끌어안지 못하는 이기주의자들이다.
게다가 브라질·중국·체코·인도·미국 등 해외 공장이 잇따라 건설됨으로써 총 생산량의 60퍼센트를 넘게 됐는데도, 아무런 능동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국내 생산 물량 보장 타령이나 반복하고 있는 아둔한 집단이다.
박태주 박사의 해법은 소극적·단기적 고용 안정과 임금 인상 투쟁에 매몰되는 '저항적 실리주의'에서 글로벌 허브(hub) 전략이라는 '전략적 실리주의'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현재는 사내 하청이 하는 일이나 정규직이 하는 일이나 별 차이가 없는 숙련 경시형 생산 방식에 발목 잡혀 있고, 자동화를 중심으로 그러한 생산 방식이 구축됨으로써 고임금이 무색해지게 됐지만, 국내 공장을 해외 공장들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고숙련과 고생산성 모델로 만들면 장기적인 고용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차 노조에 대한 비판을 새로운 전략과 역할에 대한 기대로 마무리하면서 그것을 끌어낼 수 있는 사용자의 개명된 파트너십 전략을 주문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실현할 때 박태주 박사가 주도한 노사전문위원회·노사자문위원회가 도움이 됐듯이 전문가들이 결합한 미시적·사회적 대화 기구가 이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현대차 노사가 답할 차례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저자 자신도 그에 대해서는 자신하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현대차 노사 관계의 전환으로부터 한국 노사 관계의 새 흐름을 제기하고자 하는 저자의 집필 의도가 실현될 것인지 여부는 독자들, 그중에서도 현대차 노사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다. 2014년 교섭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장기적 관점에서 단기 현안을 다루는 지혜를 노사가 발휘할 수 있을까. 통상임금 문제가 양극화를 촉진할 현안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 방법이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현실적으로 현대차 노사에 기대할 것이 없다면 차라리 현대차를 뺀 연대 활동을 조직하는 것은 어떠한가. 박태주 박사는 서문에서 "현대차 노조는 한국 노동조합의 축소판일까? 아니면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 즉 아웃라이어(outlier)일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책 제목이 보여주듯이 한국 노동조합의 축소판임을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행태가 계속된다면 유감스럽게도 현대차 노조는 필자가 표현하듯이 '사회적 왕따'로 굳어질 것이다.
현대차 노사 관계는 아직은 우리나라 노사 관계의 유형 설정자일지 모르지만, 점점 더 예외적 케이스가 돼 가고 있다. 노동운동의 힘이 전반적으로 약해지는 가운데 현대차 노조만이 강한 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예외성의 역설적인 예다. 이러한 예외적 파워를 사회적 연대를 위한 에너지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현대차 노조의 사회적 입지는 점점 더 고립될 것이다. 그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노동운동의 힘 있는 진지를 잃음으로써 수많은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현대차 사용자와 노조가 답할 차례다.
왜, 어디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424쪽에 이르는 책은 두께에 비해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다. 필자의 풍부한 입담과 적절한 비유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표현들만 따라가도 현대차 노사 관계가 어떠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다. 필자 소개대로 산행을 하면서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는 것을 즐기며, 소주잔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논하면서 언제 그 많은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동차 산업 및 노사 관계와 관련한 기존 논의들을 잘 아우르고 있다. 10여 년에 가까운 자동차 산업 연구와 노사 전문위원회 활동의 경험을 담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과 실천을 넘나들며 생생한 논의를 끌어모았기 때문에 이 책은 한국 자동차 산업 및 노사 관계 논의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
다만 현 단계에서 '담합'으로 노사 양쪽을 모두 공격하면서 응원군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기업별 노조의 실리주의가 곧 진보라고 우기는 일부 노동운동 세력과 저자가 표현한 종속적 실리주의와 노사 협조주의가 산업 경쟁력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 보수적 논자들을 제외하면 박태주 박사의 합리적·전문적 중도 노선은 시간이 갈수록 설득력을 더해 갈 것이다. 왜냐하면 대기업 노조의 선도 투쟁을 따라올 수 있는 중소기업 노조는 이미 힘이 빠졌을 뿐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지불 능력 자체가 취약하고 노사 협조주의는 흔히 보듯이 하위 파트너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박태주 박사를 포함해 전문가들 사이의 최대 고민은 '이제 어느 정도 문제는 밝힐 수 있는데,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가'다. 누가, 어떻게 교착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의 대안은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독일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독일이 그 같은 제도적 틀을 갖추기까지 100여 년의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한 점에서 이제 다시 우리나라의 1980년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어디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이래저래 새로운 연구와 담론이 필요하다. 그러한 논의들은 이 책으로 인해 그 출발선이 확실히 당겨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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