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국민 '축구 마약'에서 깨어날까

[주간 프레시안 뷰] "충격 패배, 브라질 경제호황 마침표 상징"

1대 7. 지난 9일 브라질 월드컵대회 준결승전 '브라질-독일' 경기에서 나온 점수죠. 통계학자들은 기존의 모든 통계를 적용해 봐도 나올 수 없는 점수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팀이 브라질이기 때문이죠.

브라질이 어떤 나라입니까. '축구의 나라', 월드컵 5회 우승에 빛나는 '최다 우승국', '삼바 축구의 나라'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장식한 나라. 온 국민이 사랑해 마지 않고, 자부심을 한껏 느끼게 해주던 브라질 축구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점수 차이도 충격적이지만, 유럽 특히 독일식의 조직적 축구에 '삼바 축구'가 무너진 것도 뼈아픕니다. 화려한 개인기에 안주하다가 더욱 정교해진 시스템 축구에 현란한 기술을 보여주던 브라질 선수들이 '멘탈붕괴'에 빠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며 처참하게 무너졌다는 것에 국민 모두 자존심이 더욱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이 무너지고 있는 구석이 축구뿐일까요? 브라질 국민을 '멘붕'에 빠뜨릴 요인이 축구경기뿐일까요?

▲ 2014 월드컵 개최국인 브라질은 지난 8일 독일에 1대 7로 대패했다. '삼바 축구'를 앞세워 유럽 강팀을 꺾어보겠다던 열망이 수포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AP=연합뉴스

"충격적 패배, 브라질 경제호황 마침표 상징"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 톱기사를 통해 "브라질이 오랫동안 누려온 경제호황이 마침표를 찍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독일 팀에 '역사적인 수모'를 겪으며 참패를 당한 브라질 팀 뒤에는 '멘붕'에 빠진 브라질 정부가 있습니다.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는 외면하고, 정치적인 사활을 걸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공들여온 '월드컵 주최국 개최 효과'가 한순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죠.

어쩌면 브라질 팀이 홈그라운드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것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브라질에게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약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축구는 브라질 국민에게 마약과 다름없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라질 사회에 축구는 다른 삶의 영역에 활력을 불어넣은 역할이 아니라, 도피처로 작용해 왔다고 비판했습니다.

축구 앞에서 브라질 국민은 참 마음이 약해지나 봅니다. 월드컵 대회를 앞둔 지난해에는 사회적 갈등이 고조돼 월드컵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것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도 벌어졌습니다.

브라질 정부가 월드컵 사상 최대 규모라는 110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들여 피파(FIFA)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경기장 등 월드컵 대회를 치르는 데 요구되는 사업들을 밀어붙였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월드컵이 웬 말이냐'라는 거센 반발을 했습니다. 대다수의 브라질 국민들은 여전히 낙후된 마을에 살면서 적절한 위생과 건강관리, 교육, 교통수단에서 소외돼 있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올해에도 지난해에 비슷한 규모의 반(反) 월드컵 시위가 반복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지난해 시위는 월드컵 대회가 1년 뒤의 '먼일'이어서 그랬던 건가요?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올해 들어, 브라질 전체가 '축구'라는 드라마에 매몰되는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브라질 국민이 세계을 상대로 자부심을 갖는 상징물인 축구경기가 64년 만에 자국에서 열리고 성공적인 대회를 치르기를 염원하는 분위기에 도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브라질 국민은 도취에서 화들짝 놀라 깨어나게 하는 충격적인 패배에 넋을 잃고 있습니다. 과연 브라질 국민은 '월드컵 주최국의 충격적 패배' 이후를 잘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브라질 축구팀이 독일 팀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월드컵 대회에 반대의 뜻을 밝히며 대규모 시위에 나섰던 브라질의 많은 유권자들은 지금 "환상에 젖어 잠시 현실을 잊었나 보다"라고 자책하고 있을 것입니다.

"호세프 대통령 재선 가도에 빨간불"

이미 지난 6월 28일 브라질의 정치학자 프란시스코 폰세카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앞에서 브라질이 참담함을 느낄 사건이 벌어진다면,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사건이 '독일 팀에 치욕적인 패배'라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말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브라질 국민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브라질에서 일개 축구경기의 결과가 초래할 정치적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삶의 질 개선은 이미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는 10월 대선에서 가뜩이나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에 회의적인 전망이 많았지만 이런 우려가 더욱 커지게 됐습니다.

경제적인 여건도 받쳐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임 루이스 이나치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집권기간 4%가 넘는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신흥 경제대국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두주자로 각광을 받았던 때와 다릅니다. 브라질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2%도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경제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브라질 정부의 무능한 행정이나 부패 문제는 이제 탄식하는 것도 지겨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호세프 정부는 '성공적 월드컵 효과'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의 충격적 패배로 오는 7월 13일 월드컵 결승전 경기장에 호세프 대통령이 참석해 '브라질 우승’의 감격을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이벤트로 만들려는 희망도 사라졌습니다.

축구 애호가로 알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밀어줘서 월드컵 대회 직후 '브릭스 정상회의'를 브라질이 주최하도록 하고, 이 자리에서 호세프 대통령이 러시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의 최고 지도자들과 나란히 어깨를 같이하는 '정상들의 사진'으로 대선 유세의 신호탄으로 삼으려는 기대도 빛이 바랬습니다.

9일 AFP통신은 "브라질의 성난 축구팬들이 치욕적인 패배에 충격을 받아 선수들과 호세프 대통령에 욕설을 퍼부었다"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 110억 달러를 쏟아부은 월드컵 대회 유치로 얻은 '시위 유예 기간'이 끝났다"라고 전했습니다.

한 대학생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질 팀의 패배로 호세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대가를 치른다면 속이 시원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브라질 정치인들은 축구대표팀보다 훨씬 형편없다"면서 브라질 정치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 다른 브라질 축구팬은 "이런 결과를 얻으려고 그 많은 돈을 들여 월드컵 대회를 유치했느냐"고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통신은 이에 대해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면서, 삶의 질을 위한 투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지난해의 갈등이 잠시 수면 밑으로 잠복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미 브라질 대표팀이 월드컵 우승에 실패하면서 전국적으로 시위와 충돌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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