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청과 한국전력, 경찰이 협력한 지난 11일 행정대집행의 폭력성을 규탄하고 765킬로볼트 송전탑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밀양 주민 82명이 서울을 찾았다. 이들은 "비록 농성 움막은 모두 철거됐지만 송전탑 반대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경찰청 정문 앞에서 승리의 브이(V)를 손으로 만들어 보이며 기념사진을 촬영했고, 직접 제작한 모형 송전탑을 호미로 캐서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기념 촬영 퍼포먼스는 행정 대집행 당일 오후, 경남경찰청 소속 여경들이 다친 주민들이 헬기로 수송되던 장소에서 V자를 그리며 단체사진을 찍은 것을 풍자하고 조롱하기 위함이다. 당시 이 현장을 <프레시안>이 포착해 보도하며 공무 집행 중인 경찰의 부적절한 언행과 부족한 인권 감수성 등이 도마에 올랐다. (☞ 관련 기사 보기 : 할매 목 향한 '펜치'…'작전' 끝낸 경찰은 V자 미소)
"폭력 집단 소굴인 경찰청을 대집행 철거하겠다"
밀양 주민과 연대 시민 총 100여 명은 이날 오전 11시 서대문구에 자리한 경찰청 앞을 우선 방문했다. 경찰청사에 대한 '국민 대집행 영장'을 낭독하며 "사실상 행정 대집행을 주도한" 경찰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이 발부해 '이성한 경찰청장 귀하(밀양경찰서장 김수환)'로 시작하는 영장에는 "수없이 누적된 국가폭력 전과 경력과 이에 대한 시정 요구에 불복종한 상습 파렴치범으로 (경찰이) 규정되는바, 아래와 같이 국민의 이름으로 폭력 집단 소굴이 경찰청을 대집행 철거하고자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저희들의 철거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귀하께서 그토록 지켜주고자 했던 765kV 송전탑과 고리 1호기를 방호가 용이하며 인력 및 비용 절감을 기할 수 있는 등 수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경찰청사 및 인근 지역으로 이주시키고자 하오니, 원전 송전탑 반대 시위를 예방하고, 국민 안전을 위해 모든 위험을 '몸빵'하며, 국가 전력 정책에 대승적으로 협조하는 차원에서 감내하여 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라고도 밝혔다.
"폭력 집단이 운영하는 불법 시설물인 경찰 청사 내에 '커피 믹스' 등 생필품이 있을 시에는 도난 사고가 발생치 않도록 즉시 이전하여 주시기 바란다"고도 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경찰이 있지도 않은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겠다며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본부를 강제 침탈했던 당시, 한 의경이 커피믹스 두 상자를 몰래 가져가려다 들킨 사건을 풍자한 것이다.
패러디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국민 대집행의 일시는 영장이 발부된 16일부터 "경찰이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까지"이다. 국민대집행 책임자로는 밀양송전탑전국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과 함께 화학산 산신령과 도곡못 물귀신, 전국산새협회 밀양지부장 산새 등이 명시됐다.
"핵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위해 앞장 서서 싸우는 것"
풍자와 조롱으로 발랄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회견 중간중간 주민들은 11일 있었던 폭력 대집행을 떠올리며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용회마을의 구미현(66) 할머니는 기자회견 장소 주변을 둘러싼 경찰을 향해 "시골은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것이냐"며 "(한국전력이 아니라) 당신들이 송전탑을 세운 것이다. 대단한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경찰, 책임지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 또한 떨리는 목소리로 경찰의 폭력성을 비난했다. 장 의원은 "경찰이 조폭, 학폭(학교폭력) 척결한다고 하는데 경폭(경찰폭력)이야 말로 사회악 1순위"라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호소드린다. (부산의) 핵 발전소가 폭발하면 밀양 사람뿐 아니라 부산·울산 350만 명이 한꺼번에 죽는 것이다. 전 국민이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라고 먼저 앞장서서 싸우는 밀양 주민과 함께해 달라"고 했다.
이날 회견에는 송전탑 문제로 괴로워하다 음독 자결한 고(故)유한숙 씨의 아들 유동환(45) 씨도 참석했다. 유 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로 5월 말부터 서울 곳곳에서 진상규명과 공사 중단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 등을 벌이고 있다. 앞서 밀양경찰서는 음독 직후의 유 씨로부터 "(음독 이유는) 송전탑 때문"이라는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개인적인 문제를 포함한 '복합적인 문제'로 자살한 것처럼 사건을 축소·왜곡 발표해 비난을 산 바 있다. (☞ 관련 기사 보기 : 밀양 고 유한숙 씨 "송전탑 때문에 음독" 녹취록 공개)
"한전이 공기업이면 똥파리가 봉황이다"
경찰청 앞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주민들은 오후 2시께는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을 찾아 전날 만든 송전탑 모형을 부수고 한전에 불우이웃 성금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전이 공기업이면 똥파리가 봉황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밀양 주민들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전달' 공문은 조환익 한전 사장을 수신자로 제작됐다. 공문은 "국가 전력 산업의 허울을 쓰고, 대기업과 핵 마피아의 뒤 설거지를 하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를 1번 문장으로 한다.
"한전이 비열한 압박으로 마을 공동체를 ‘돈’으로 분열시키고 있는 것은 초고압 가공송전선로 건설을 통해 대기업들의 값싼 전기 공급을 위한 몸빵으로 발생한 적자분을 상쇄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인 것으로 알고 있는바"라며 "밀양 주민들이 그동안 드시고 싶은 막걸리, 담배 한 개비 아낀 눈물겨운 돈으로 조성한 불우이웃 성금을 전달하고자 하오니, 부디 우리의 정성을 받아주시길 소망합니다"라고 했다.
주민들은 이 같은 내용의 성금 전달 공문을 낭독한 후 10원짜리 동전 500개를 한전을 향해 내던졌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7월부터 전국적인 원전 반대 운동이 진행될 것이라며 밀양 주민들을 응원했다. 그는 "반핵 후보로 당선된 삼척 시장이 7월이면 원전 백지화를 선언하고 주민 투표를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며 "충남 서산·당진에서도 송주법(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헌법 소원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농성 움막을 지을 계획이다. 부북면 평맡마을의 이남우(72) 할아버지는 예정에 없던 발언을 자청해 "한국전력 사장 이 사람아, 당신이 얼마나 호위를 노리고 권세를 부리며 오래 살 지 모르겠다"며 "그러나 당신이 지옥은 안 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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