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장 선거, 왜 모두 "고리원전 폐쇄"를 외칠까?

[프레시안 books] 김기진 외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한 지 이제 3년을 넘고 있다. 28년 전 구 소련에서 발생하였던 체르노빌 핵사고에 대해서 우리 사회 대부분이 거의 인식조차 못했던 것에 비해서, 후쿠시마 핵사고는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아직은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닐지라도, 3년 전 국민들의 대다수가 핵발전을 지지했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큰 변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여러 여론조사에서 핵발전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답변자가 절반을 넘어서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또한 그 동안 반핵/탈핵운동과 거리를 두었던 여러 전문가들도 태도를 바꿔 탈핵의사회, 탈핵법률가모임, 탈핵교수모임 등을 결성하고, 천주교처럼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곳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영향 탓인지, 지난 대선에서도 야당 후보들이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천명하는가 하면, 이번 지방선거에는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까지도 낡은 고리 핵발전소는 폐쇄하겠다고 공약하고 있을 정도이다. 최근 가슴 아픈 세월호 사건으로 불 붙은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열망은 핵발전소로 옮겨 가고 있다.

▲ <탈핵>(김명진·김현우 외 지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획, 이매진 펴냄). ⓒ이매진
변화 중 하나로는 서점에 수많은 핵발전 관련 서적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핵발전을 애써 옹호하거나 짐짓 중립적인 태도로 대중들의 불안을 무마해보려는 책들도 있지만, 후쿠시마 핵사고의 충격을 거름삼아 핵위험에 대해서 배우려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한 줌도 되지 않았던 반핵/탈핵론자들이 고군분투하며 발간한 책들이 다시 주목받아 재인쇄되었고,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해외 필자들의 반핵 저작들도 여러 권 번역되어 나왔다. 그러나 국내의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저자들이 자신의 연구과 경험에 기반들 두어 왜 핵발전소가 문제이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후쿠시마 핵사고 직후에 나온 <탈핵>(김명진·김현우 외 지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획, 이매진 펴냄)을 제외하고는, 2013년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국내 저자들이 핵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탈핵학교>(김익중·김정욱 외 지음, 반비 펴냄), <한국 탈핵>(김익중 지음, 한티재 펴냄)과 함께, 오늘 논평하려는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김기진·김영희 외 지음,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엮음, 무명인 펴냄)도 그 중 대표적인 서적이다.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을 포함하여, 최근에 나오기 시작하는 탈핵 서적들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지난 3년간 한국의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탈핵운동에 과정에서 이루어낸 지적 성과물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이 출판된 계기들이 흥미롭다. <탈핵학교>나 <한국 탈핵>은 일반 시민들에게 핵의 위험과 탈핵 대안의 가능성을 알리기 위해서 조직된 수많은 강연과 강좌를 통해서, 여러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고심하여 준비한 강의록들을 모은 것이다.

▲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김기진·김영희 외 지음,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엮음, 무명인 펴냄). ⓒ무명인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의 탄생 배경은 더욱 흥미롭다. 이 책은 2013년 11월에 한국천주교주교회가 발표한 소책자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다. 핵발전은 "천주교회의 사회교리에 근거"해서도 부당하지만, 그들은 과학적 측면에서도 그 위험성을 확인하고자 18명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에게 핵발전의 다양한 문제와 그 대안을 검토하는 글들을 요청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에 반영되었지만, 그 글들을 일반 대중들과 함께 읽고자 따로 출판하였다고 한다.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은 물리학, 의학, 공학, 법률, 경제학, 사회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반핵/탈핵 운동에 헌신해온 활동가들이 참여하면서, 핵발전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이 "한 권으로" 탈핵 이슈를 "꿰뚫"을 수 있도록 기획된 "핵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만든 교과서"가 될 만한 하다. 이 책을 통독한다면,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핵발전과 관련된 쟁점들의 거의 대부분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1부(핵과 핵발전)에서는 한국인(조선인)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자라는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서부터(김기진),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2000회 이상 실시한 핵폭탄 실험과 후쿠시마 핵사고를 비롯한 심각한 핵사고들의 현황과 영향에 대한 고발(정욱식, 김영희), 그리고 "핵발전소는 즉각 폐지해야 한다"는 물리학자(이준택)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2부(핵발전의 문제점)은 대중들에게 가장 민감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핵발전 등에서 불가피하게 나오는 방사선 노출의 건강 피해와 한국인들의 피폭 경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하미나, 김익중). 이어 핵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부르는 이유가 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처분의 곤란함(시실상의 불가능함)(진상현)과 이와 관련한 한국 정부와 지배적인 핵전문가들의 '꼼수'라 할 만한 파이로프로세싱(원자력발전 후 남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여 다시 원자력발전의 핵연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편집자)과 고속로 기술과 정책의 문제점(장정욱)이 고발된다. 또한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핵사고가 발발한다고 하였을 경우에 손해배상 제도는 충분한지, 또한 그것이 역으로 핵발전의 위험을 적절히 규제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지도 분석된다(장정욱).

▲ 2013년 7월 7일 오후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우리가 밀양이다' 탈핵희망문화제에서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대책 위원회' 주민들이 상경해 공연을 관람하며 부채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핵사고나 방사능 위험이 적절히 통제될 수 있다면 핵발전은 괜찮을 것일까? 핵발전은 그 자체로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야기하며(이헌석), 핵전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서 밀양 할매들에게 고통스럽게 강요되는 초고압 송전탑의 이야기(하승수)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핵발전소 경제성 평가는 한계가 있고 "어떤 에너지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는 사회 전체의 몫이라는 점이 강조된다(정연미).

그렇다면 한국의 핵발전은 어떤 상황이며, 우리는 어떻게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3부는 한국 핵발전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위험한 활성단층 위에 건설되었을 뿐만 아니라 충격적인 원전비리가 만연한 속에서 운영되면서, 만약 낡은 월성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90만 명의 인명피해와 1019조원의 경제피해가 예상되고 있다(양이원영). 그러나 수요관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공급 중심의 에너지 정책과 1차 에너지보다도 싼 전력가격의 왜곡으로 인해서 에너지 수요가 계속 증가하도록 조장되며(윤순진, 석광훈), 이는 핵발전의 당위성의 잘못된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의 반핵/탈핵운동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지역 주민들과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역에너지를 추구하면서(김혜정, 이유진), 핵발전의 대안인 수요관리와 재생에너지의 광대한 잠재력을 활용하고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자는 전문가(윤순진, 이성호)의 주장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대안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이미 확인되었다(박진희).

그러나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후 보다 나은 '탈핵 교과서'가 나오기를 위해서 몇 가지 점을 지적해보자. 우선 가장 기초적인 사항으로, 오탈자의 교정, 사진과 그림의 배치 등의 책의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책을 3부로 나누고 각 글의 순서를 정한 것이 최선이었을까 의문도 들고, 무엇보다도 각 글들이 가진 형식과 논조가 너무 편차가 심하다. 대단히 전문적이고 쟁점에 대해서 치밀하게 논증하는 형식의 글이 있는가 하면,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에게 쉽게 설명하는 글들이 뒤섞여 있다.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고 했을 경우, 좀 더 조정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보다 생산적인 토론은 이 책들이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쟁점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것이 될 것 같다.

▲ 2012년 3월 10일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서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 시민문화행사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을 열고 반핵, 탈원전을 촉구하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벌였다. ⓒ프레시안(최형락)

탈핵 에너지전환이 장기적이며 대단히 복합적인 정치사회경제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내일 당장 탈핵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2012년 현재 전력의 29.5%를 차지하는 원전을 당장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일단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20~30년의 장기간 동안에 핵발전 중심의 공급확대적인 중앙집중화된 에너지시스템을 에너지효율화와 재생에너지를 위주로 한 지역분산적인 에너지시스템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핵발전의 위험을 비판하면서 수요관리를 강화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자는 주장으로만 대체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물론 이것이 출발점이며 그 견고함이 이후 전환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장기적인 전환 과정/동학의 역동성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유연한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 책에 반영된, 탈핵 진영의 지적 상상력은 이런 부분에서 아직 빈곤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핵발전의 위험을 폭로하고 이를 비판하는데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에너지전환의 구체적인 경로에 대해서 토론한다고 하였을 경우, 우리는 대단히 논쟁적인 문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전환의 "브리지 기술"로서의 천연가스 발전을 확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얼마나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까? 또한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를 설치하는데 직면하게 되는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의 비판과 저항은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 에너지전환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 수요 감축과 관련하여, 대규모 전력을 이용하는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의 축소가 야기할 수 있는 실업과 지역 경제의 쇠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또한 에너지가격 '정상화'를 위한 탄소세/핵연료세 등의 도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아가 한전의 전력산업 독점체계를 해체하고 시장요소를 강화하자는 일각의 구상은 에너지 공공성 주장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단순히 정부와 한전을 비판한다고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문제들은 아니며, 시민사회 내에서부터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대안기술'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6년부터 대안기술 사업을 해오고 있는 산청 갈전리 민들레공동체의 '대안기술센터'. ⓒ정기석

논평자가 참여하고 있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에너지전환과 관련하여 좀처럼 토론되지 않는 몇 가지 쟁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예를 들어 에너지전환 과정이 단순히 에너지원의 변화(핵/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와 이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경제적 과정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기술경제적 요소들과 함께 결합되어 발전되어 온 사회정치적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기술시스템은 '핵마피아'로 통칭하는 핵산업 안팎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이해관계자와 구분할 수 없으며, 이를 대체할 만한 기술적 대안과 사회세력이 함께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핵산업 동맹에 맞서는 탈핵 재생에너지동맹이 필요하며, 그런 동맹은 단순히 핵위험으로부터 벗어나자는 탈물질주의적 동기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일자리와 경제적 이해관계 등과 버무려 종적․횡적으로 연대하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은 사회운동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과정이다. 최근 관심이 증가하는 에너지협동조합도 이런 동맹 구축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에너지전환의 과정에서 그 역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상의 토론에도 불구하고,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이 탈핵운동 진영의 여러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폭넓게 참여하여 그 간의 지적 노력을 종합하는 귀중한 성과가 부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논평자가 제안하는 토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쟁점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토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가 한국의 반핵/탈핵 운동의 진전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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