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림픽은 이런 저런 논란도 많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한 올림픽이 될 듯하다. 왜? 역설적으로 그 논란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원치는 않았지만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없지 않을 듯하다.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관계자는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지만 그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소치 올림픽에 '극히(extremely)' 또는 '매우(very)' 관심 있다고 응답한 미국인이 43%로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때의 37%를 상회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관계자는 "우리에겐 거의 홈 경기장에서 열리는 올림픽 같다"고까지 했다. 왜 그럴까.
소치 올림픽 관전 포인트는?
이번 소치 올림픽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김연아, 이상화의 2연패나 빅토르 안의 복수(?)를 꼽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올림픽사(史) 측면에선 그저 '기록'일 뿐이다. 소치 올림픽은 어쩌면 올림픽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소치 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다양한 논란을 불러왔다. 올림픽을 시작한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는 공사, 영상 12도까지 오르는 소치의 온난화, 물경 500억 달러를 쏟아 부은 개최 비용 같은 문제적 뉴스들도 있지만 소치 올림픽에 대한 세계 언론의 주된 관심사는 테러의 위협과 동성애 논쟁이다.
지금 러시아는 물론이고 올림픽 스폰서 기업들도 가상 시나리오까지 만들며 최악의 테러에 대비하고 있다. 그 시나리오 중엔 1972년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단'에 의해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이 살해된 뮌헨 올림픽 참사를 능가하는 수준의 것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테러 위협이나 공사 지체, 온난화, 과도한 개최 비용 등의 문제는 이전 올림픽에서 경험했던 것들이다. 지금 소치 올림픽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이슈는 바로 동성애 논쟁이다.
지난 5일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에 따르면 미국의 최대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업이자 올림픽 광고주이고, 또 USOC 최대 후원기업 중 하나인 AT&T는 자사 블로그에 개최국 러시아의 반동성애법(anti-gay propaganda law)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러시아의 이 법이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성전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위해를 끼치고 또 사회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2013년 6월 러시아에서는 동성애를 선전, 전파하는 것은 물론 동성애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언행을 해도 벌금은 물론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반동성애법이 통과됐다. 그러자 소치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임원, 기자, 방문객에게 이 법이 적용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푸틴의 태도는 애매했다.
"올림픽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 법의 목적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개막 전부터 시끄러운 반동성애법 논쟁
AT&T는 올림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업 중 동성애자 인권을 발언한 첫 번째 기업으로 AT&T의 이러한 움직임은 코카콜라, 맥도날드, 비자카드, 삼성 등 다른 올림픽 주요 스폰서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명백한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압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낼지언정 러시아 법을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 기업은 올림픽 이후에도 러시아에서 사업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AT&T의 비판은 러시아의 반동성애법 통과 이후 세계 각지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반대 운동과 인권 캠페인의 흐름을 타고 있지만 이것이 다른 올림픽 관련 기업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있다. 한 마케팅 컨설턴트는 "기업은 윤리적이고 개인적 이슈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또 빌라노바 대학 마케팅 교수 찰스 테일러는 "일반적으로 다국적 기업은 타깃 집단의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필 올림픽 개최를 몇 달 앞두고 통과된 이 법은 러시아에겐 골칫덩이가 되어버렸다. 국제 동성애 인권 단체 'All Out'은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 19개 도시에서 항의 시위를 연이어 벌이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미국의 피겨스케이팅의 간판선수 애슐리 와그너는 작년부터 러시아의 반동성애 정책에 노골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와그너는 "나는 가족 중에 게이도 있고 많은 LGBT 친구들도 있다. 우리 모두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지 말라고 교육을 받았지만 그는 지금 소치에서도 질문을 받으면 이를 피하지 않는다. 스키 선수인 보드 밀러도 "지금도 이렇게 무지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인간으로서 당혹스럽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출전했던 그렉 루가니스도 여기에 동참했다. 금메달만 4개를 획득한 미국의 올림픽 다이빙 영웅이자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미국의 인권 단체들이 주장한 올림픽 보이콧에는 반대했지만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에게 동성애자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생각해 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 6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현지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성적 기호나 성 정체성을 포함해 어떠한 종류의 차별에도 반대한다"고 강조하며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오바마, "푸틴, 너 나와!"
푸틴 대통령의 귀를 가장 거슬리게 하는 비난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 반동성애법이 통과된 직후인 2013년 8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G20 정상 회담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이 법을 언급하며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면전에서 장시간 신랄하게 비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2013년 12월 오바마는 한 언론인의 표현에 따르면 이 논란에 대한 '천재적 솜씨(stroke of genius)'를 보여준다. 미국이 올림픽에 파견하는 공식 사절단 선정을 통해 푸틴의 급소에 어퍼컷을 꽂아버린 것이다. 여자 테니스의 전설이자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스포츠인, 그리고 무엇보다 '공개된 게이(openly gay)'인 칠순 나이의 빌리 진 킹을 필두로 역시 오래 전 커밍아웃해서 공개된 게이로서 살아가고 있는 남자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라이언 보이타노, 하키 선수로 두 개의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던 스물세 살의 법학도 케이틀린 케이하우 등 세 명의 게이를 사절단에 선발한 것이다. 백악관은 이 사절단이 미국의 다양성을 대표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백악관이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에 대한 강력한 항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오바마는 푸틴의 안면에 니킥(knee-kick)을 꽂았다. 이번 미국 사절단엔 대통령과 영부인은 물론 부통령도, 심지어는 내각 관료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는 적어도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데 오바마는 이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변동이 없을 것임을 확실히 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 영국의 캐머론 총리, 독일의 가우크 대통령도 개막식에 불참하기로 해 이번 소치 올림픽은 서방의 주요 지도자들이 대거 불참하는 올림픽으로 기록될 것이다.
올림픽, 세상을 바꾼다
소치 올림픽은 성소수자 운동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올 수도 있고 이 분위기가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새로운 사고방식이 전파하는 것은 올림픽의 진정한 힘이자 가치일 것이다. 이미 성소수자 운동은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소치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드미트리 체르니센코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레인보우 핀을 꽂았다거나 반동성애법과 관련한 신체적 행동을 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푸틴 대통령은 올림픽 기간 집회나 시위를 금지시켰지만 지난 주 토마스 만 IOC 위원장은 대회 기간에 '특별 항의 구역'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해 결국 푸틴이 제한적이나마 올림픽 공간에서의 의사 표현을 허락하는 것으로 물러섰음을 보여줬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많은 선수들의 땀과 열정이 결실을 맺을 것이고 우리들은 이들을 보며 감격하고 열광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 올림픽의 관전 포인트는 성적 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의 빛을 줄 수 있느냐는 것, 그리고 우리들에게 성적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도 포함된다.
경기장과 관중석에서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빛 깃발과 옷차림, 그리고 페이스 페인팅과 네일 페인팅을 볼 것인가. 시상대에서 동성 선수가 키스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인가. 올림픽 구역에서 선수들이 반동성애법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랜드슬램 싱글 타이틀만 12회에 빛나는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은 지난 5일 아흔 살이 넘은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해 개막식에 참석하지 못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역사적 임무(Heroic mission)'에 자신을 포함시켜 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해 하면서 올림픽이라는 훌륭한 플랫폼에서 많은 선수들이 목소리를 내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다시 스물한 살이 돼서 올림픽에 참가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그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200미터 시상식에서 우승자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리스트 존 카를로스가 만들어낸 그 유명한 순간을 불러냈다. 미국의 인종 차별을 고발하기 위해 두 선수가 시상대 위에서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높이 치켜 든 것이다. 이는 미국의 인종 차별을 생중계 되는 TV를 통해 전 세계에 고발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시상식 직후 이들은 선수촌에서 쫓겨났고 그 소중한 메달마저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미국 사회의 지지와 각성을 이끌어냈다. 동료 육상 선수가 자신의 금메달을 이들에게 바친다고 발표했고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미국 조정 팀은 미국의 인종 차별을 비판하며 두 선수의 행동에 지지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훗날 캘리포니아대 산호세 캠퍼스는 이들의 모습을 동상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정치와 무관하다고? 올림픽과 정치는 올림픽 링만큼이나 서로 엮여 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은 과연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