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셀프 개혁안' 국회 보고…상시 출입 폐지 등

남재준 "국정원 정치 중립, 법 아닌 운영의 문제"

국가정보원이 국회·정당·언론에 대한 상시 출입 제도를 폐지하고 정치 개입 등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내부적으로 심사해 걸러내는 내용의 자체 개혁안을 12일 국회에 보고했다. 다만 개혁안의 초점이 제도적 개혁이 아닌 내부 운영에 맞춰져 있어, 야당으로부터 "매우 미흡한 셀프(self)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개혁특위에 출석해 이런 내용을 담은 국정원 자체 개혁안을 보고했다고 개혁특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김재원, 민주당 문병호 의원이 전했다.

우선 정치 개입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회·정당·언론 등에 배치해온 연락관(IO)을 철수시키고 상시 출입을 금지키로 했다.

이밖에도 전 직원의 '정치 개입 금지 서약'을 제도화해 신규 직원의 경우 채용 시 서약을 의무화하고, 현직 직원은 직원→부서장→차장→원장 순의 상향식으로 서약하도록 했다. 국정원 요원이 퇴직한 뒤엔 3년 동안 정당 가입 및 정당 활동을 금지키로 했다.

아울러 '부당 명령 심사청구센터'와 '적법성 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키로 했다. 상부로부터 정치 관여 소지가 있는 부당한 지시가 있을 경우, 내부적으로 이의 신청 제도를 마련해 명령을 철회하고 지시자를 징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직원의 자의적 판단을 방지하기 위해 감찰실 내 부당 명령 심사청구센터를 신설해 운영하고, 법률보좌관실에 '적법성 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센터로부터 청구된 내용의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심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했다. 남 원장은 특히 심사위는 법률보좌관실의 외부 파견 검사 2명 주도로 운영해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조실 법무처에 '준법 통제처'를 설치해 각 부서가 민감하거나 문제가 있는 업무를 수행할 시 사전 법률 조언을 하거나 자문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방어심리전에 대해선 시행 규정을 제정해 방어심리전의 소재를 △북한의 지령, 북한 체제 선전 선동 △대한민국 정체성 및 역사적 정통성 부정 △반헌법적 북한 주장 동조에 대한 내용으로 한정하기로 했다. 또 심리전의 시행 실태를 확인하고 감독하기 위해 '심리전 심의회'를 설치해 운용키로 했다.

또 방어심리전이 정치 개입에 악용되고 있다는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심리전 수행 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관련 내용을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적 사이트에 대한 정보 수집 차원의 심리전 활동은 계속하기로 했다.

남재준 원장은 이날 개혁안을 보고하며 "국정원은 법, 제도적으로 엄격한 탈정치 기반이 구축돼 있는 국가 안보 수호 기관임에도 아직 국민의 신뢰가 부족한 점을 반성한다"면서도 "국정원의 정치 중립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상의 문제"라며 법 개정을 통한 국정원 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남 원장은 민주당의 국정원 예산 통제 강화 주장에 대해선 "지금도 국회의 통제를 받고 있다"면서 "세계 어떤 정보기관도 예산을 공개하는 사례는 없다"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 옹호 발언' 공개해 '빈축'

한편 이날 특위 소속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은 여야 간사 간 합의 사항을 어기고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비공개 자료를 공개해 민주당이 항의하는 소동이 있었다. 김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국정원장에게 노무현 대통령 등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이 집권 기간 국정원 개혁·운영 방향등과 관련해서 말한 내용에 대해 자료 제공을 요구했고, 그 자료를 받아 공개한다"며 "저는 이분들의 말씀에 100% 동의한다"고 했다.

김 의원이 공개한 참여정부 인사들의 발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정원의 부처출입제도는 문제가 있지만 국가와 사회의 안전유지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필수적(2003년 3월)", 문재인 의원의 "국정원에 필요한 개혁은 천천히 전개할 것이며 현행 국정원법은 그대로 운영하겠다(2003년 1월)", 문희상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정원 국내정보 파트를 없애면 대북·마약·국제범죄에 대처하기 힘들다(2003년 1월)" 등이다. 김 의원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국정원 2차장을 지냈다.

특위 여야 간사는 오후 브리핑에서 "김 의원의 보도자료 배포는 여야 간사 합의 위반이라는 점을 민주당에서 강력히 지적했다"며 "민주당이 강력히 항의했고, 새누리당 김재원 간사가 사과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오후에 비공개로 이어진 특위 회의에서 남 원장은 내부고발자 보호 문제와 관련해 "현재 공익신고자 보호 제도가 있고 관련 법률이 있기 때문에 그 법률에 의하면 충분하다"고 했고, 불법 직무집행 거부권 보장 문제에 대해선 "현재 국정원 (자체) 개혁안에 나와 있는 자체 시스템을 갖추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여야 간사는 전했다.

또 국정원 직원의 정치관여죄에 대한 형량과 공소시효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선 "지금도 일반직 공무원은 1년인데 국정원 직원은 5년"이라며 "국정원만 늘리는 건 너무하다. 사기 문제가 잇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개혁에 대한 자체 구상은 '여야 협상을 앞두고 있다'며 비공개 방침을 밝혔으나, 국회·정당·언론사가 아닌 행정부 각 부처에 대한 IO 출입 폐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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