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그야말로 '비정상'의 상징 아닌가?

[장석준 칼럼] 정상 정치를 뒤흔들어라! : 이재영을 읽는다

숨 가쁜 한 달이었다. 철도노조 파업,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운동, 한반도 북쪽 정권의 숙청극, 이에 대한 화답과도 같았던 남쪽 정권의 민주노총 침탈, 점점 더 퍼져가는 "박근혜 퇴진"의 외침…. 이 모든 일들이 불과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펼쳐졌다. 후대 역사가들을 흥분시킬만한 한 달이었지만, 막상 이런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은 힘겹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어지러운 몇 주 동안을 나는 두 권의 책과 대화하며 버텼다. 재작년 12월 작고한 전 진보신당(노동당의 전신) 정책위원회 의장 이재영의 유고집 두 권이었다. 이재영추모사업회는 이재영의 1주기에 맞춰 그가 남긴 글들을 <이재영의 눈으로 본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역사>), <비판으로 세상을 사랑하다>(<비판>)(레디앙·해피스토리 펴냄)라는 두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나 자신 이 책들의 편집 작업에 부족하나마 일손을 보탠 바 있지만, 마침 요즘 같은 때에 이재영의 글들을 활자로 마주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재영의 언어가 지닌 힘 때문이다. 그의 언어는 직절하다. 돌려 말하는 법 없이 단박에 핵심을 찌른다. 누구나 다 변죽만 울리는 시대에 이것은 참으로 낯선 화법이다. 하지만 이야말로 해방의 화법이기도 하다. 읽는 이에게 현실과 당당히 대면할 힘을 준다. 가령 이런 문장이다.

"마은혁 판사를 공박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옛 조직들, 인민노련과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와 진보정당추진위원회는 부끄러운 과거인가? 그 조직과 함께 젊음을 보낸 많은 이들은 그늘진 어느 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가?

일본 천황에게, 박정희 총통에게 머리털을 뽑아 짚신을 삼을 만큼 견마지로를 다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자들이 아니라,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나치 부역자 1만 명을 총살, 교수형 시킨 드골 같은 우익을 만나지 못한 죄밖에 없다." (<비판>, 13쪽)

젊은 시절 사회주의 정치 조직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현역 판사를 난도질한 극우 신문들에게 돌려준 말이다. 그런데 이재영의 서슬 퍼런 글들이 조준한 상대가 이들 극우파만은 아니다. 자유파 역시 과녁에서 비껴나지 못한다. "민주당은 반동 정당"(<비판>, 93쪽)이고 "유시민은 이명박"(89쪽)이라고 일갈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재영 자신이 속한 진영 안의 낡은 요소들도 망치질을 피해갈 수 없다. 노동조합도, 시민운동도, 진보 정당도 어느 것 하나 비판에서 면제될 수 없다.

유고집 안의 살아 펄펄 뛰는 문장들을 접하니 새삼 이재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새겨보게 된다. 유고집 표지에는 "진보 정책의 아이콘 이재영"이라 박혀 있다. 재작년 갑자기 그의 부음을 전하게 된 언론들도 하나같이 다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통"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그러나 이재영은 단순한 정책가만은 아니었다. 그렇게만 본다면 정작 그가 생전에 진보 정당 운동에 그토록 소중한 인물이었던 이유를 놓치게 된다. 그는 정책보다 좀 더 높은 고도에서 앞길을 내다보고 그 길을 뚫고 나가는 데 앞장선 사람이었다. 역사의 큰 줄기를 간파하고 그에 따른 기획을 내놓으며 그 실현을 책임지려 한 사람이었다.

유고집의 첫째 책(<역사>)을 통해서 우리는 이재영의 이런 면모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 누구나 위기와 혼란에 있다고 말하는 진보 정당 운동의 출발점과 궤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역사>가 시작하는 시점은 1990년대다. 당시는 현실 사회주의권이 자체 모순으로 붕괴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바로 이런 정세에서 이재영은 이후 민주노동당으로 결실을 맺게 되는 진보 정당 건설을 처음 제기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단지 국회의원 몇 명 확보하자는 게 아니었다.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유일한 무대, 즉 "계급 운동과의 부단한 교호 작용"(<역사>, 66쪽)의 마당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민중과 결합"함으로써 지식인 담론 수준을 넘어선 진짜 현실 변혁 운동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이념은 민중을 만들지 못하지만, 민중은 이념을 만들 수도 있는 것"(<역사>, 491쪽)이기 때문이었다.

목표가 이러했기에 이재영은 어떤 이들처럼 샛길로 빠지거나 당장의 장애물을 빌미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그러했기에 민주노동당이 주체 사상 고수파에 점령돼 더 이상 "계급 운동과의 부단한 교호 작용"의 무대가 될 수 없게 됐을 때의 판단과 선택도 간명할 수 있었다. 고립된 요새를 떠나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야 할 일이었다. "새 과제를 찾으려면 다시 갈라서야 한다. 분열만이 발전이다"(<비판>, 58쪽).

마찬가지 맥락에서, 2011년 말 이재영과 가장 가까웠다고 할 수 있는 옛 동지들이 통합진보당 창당에 합류하기 위해 진보신당을 박차고 나갈 때에도 한창 병석에서 사투하던 이재영의 이성은 그들 누구보다 명쾌했다. 지금 읽어도 심장 한 구석을 베어내는 듯 서늘한 명문 "노회찬과 주대환을 보내며"(<역사>, 464~466쪽)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몇 달 후 통합진보당이 분열하자 이재영은 진보신당을 포함한 비주체 사상 진보파 전체의 통합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단서는 더없이 엄중하고 명확했다. 연말 대선에서 독자 후보 운동을 벌이고 그에 기반을 두고 진보 정당 운동을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이재영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의 큰 줄기였고, 그 줄기를 따르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이런 그의 마지막 희망조차 무산되고 만 지난 대선 와중에 그는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가 남아 있다. 이재영을 그리워하면서, 남은 이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그의 미덕을 아쉬워하면서 이렇게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넋조차 우리를 버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의 책들이 있다. 지난 며칠간 나는 유고집 문구들 사이에서 오늘의 형세를 따지고 답을 찾아보려 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선 자리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 "김대중 퇴진" 구호가 돌출하자 이재영은 지금 "박근혜 퇴진"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것과 비슷한 논지에서 이를 비판했다(<역사>, 134~136쪽). 그러나 2008년 촛불 항쟁 와중에 그는 "이명박 퇴진" 투쟁을 역설했다. 서로 다른 두 입장 사이에는 1987년으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진 한국 사회의 관성과 퇴보가 자리했다.

"우리가 '명박 퇴진'으로 나아가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신자유주의로 수렴된 정상 정치를 흔들어 놓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1987년의 영광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곰곰이 되짚어 보면 1960년 이후 48년 동안 단 한 명의 대통령도 물러나지 않았다. 간헐적 선거에서 포섭된 투표를 하고, 인민으로부터 격리된 장에서 사회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정상 정치가 너무 오래 유지되지 않았을까." (<비판>, 269쪽)

"정상 정치를 흔들어 놓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대통령 연두 기자 회견의 주제어가 다름 아닌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사회를 온통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 일색으로 만들겠다는 정치 대 그 정상 정치를 통째로 뒤흔들겠다는 정치. 전체 구도가 이제야 눈에 잡히는 듯하다.

역시 그와의 대화는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다. 마냥 이어질 것만 같았던 생전 술자리 대화 못지않다. 그래서 주저 없이 권한다. 지난 몇 주 동안 잠 못 이는 밤을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지금이야말로 이재영 유고집과 만나 우리의 대화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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