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이나 기업들이 퇴직한 공직자에게 이제까지 사회적 기여를 많이 했으니 감사하다는 의미로 많은 급여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퇴직 공직자의 전문성이 이유일까? 전직관료의 전문성은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 봤을 때도 큰 자산이다. 그런데 전관에게 주는 높은 연봉이 전문성에 대한 대가이기만 할까? 그렇다 하더라도 공직자는 국가가 부여한 직위를 통해 전문성을 쌓았고,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으며 전문성을 쌓았다. 이것이 사익을 위해 사용되고 그 대가를 퇴직 공직자가 받는 것이 옮은 일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더구나 전문성보다는 공직에서 맺었던 인간관계, 특히나 소속했던 기관의 현직 공직자와의 인간관계에 높은 가치가 매겨진다면 분명 잘못된 일이다.
여기에 더 문제가 되는 경우는 퇴직 공직자가 민간에 갔다가, 다시 원 소속 기관의 고위공직자로 돌아오는 소위 '회전문 인사'다. 공정한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더욱 증폭된다. 현직의 공직자에게 자신이 감독하거나 자신의 업무에 따라 영향을 받는 기업에 전 상관이나 동료가 취업했을 때 그렇지 않을 때와 똑같이 그 기업에 대하여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해당 기업에 취업한 상관이나 동료가 자신이 속한 기업이나, '사주'를 위해 일하다 보면 현직의 공직자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할 것이다. 어떨 때는 현직의 공직자들에게 단순히 의견이나 정보를 구하는 정도겠지만, 어떨 때는 불법적인 청탁을 할 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어떤 공직자들은 퇴직 공직자의 소위 '로비'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업무수행을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공직자가 그렇게 올바른 업무수행을 할 수 있을까? 만약 회전문 인사를 통해 로비를 거절한 퇴직 공직자가 상관으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공정했던 공직자는 미운털이 박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회전문 인사로 돌아와 상관이 될지 모르는 퇴직 공직자의 로비를 거절하는 공직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사익과 공익이 서로 배치되는 이해충돌 상황에서 공익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공직자 또는 퇴직공직자 각 개인이 공익을 선택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미리미리 이해충돌을 해소해야 한다. 예상되는 공직자의 여러 이해충돌 행위 가운데 퇴직 공직자의 취업으로 인한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는 공직자윤리법에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를 두고 있다. 현재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한 '부서'와 '밀접한 업무 연관성'을 가진 일정규모 이상의 사기업체 등에 취업하는 것을 2년간 금지한다. 퇴직 공직자의 취업으로 인한 이해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퇴직 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은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된 1983년 당시부터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선언적인 것에 불과했다. 대상 기업의 범위가 너무 좁고, 업무 연관성이 밀접한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하는 주체가 분명하지 않아 실제로 취업제한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후 몇 번의 제도 변화가 있었으나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게 된 것은 2005년 법령 개정으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취업제한 여부를 판단하게 된 이후다.
참여연대는 2006년부터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 운영 모니터 보고서'를 매년 발표해 왔다. 취업제한 대상이 되는 퇴직 공직자가 밀접한 업무 연관성이 있음에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제대로 판단하지 않아 취업한 사례를 지적했다. 더불어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 강화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후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판단도 상당한 개선이 있었다. 2011년 국회의 법 개정으로 제도도 일부 강화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개선할 점이 많다. 참여연대가 지난 10월 1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246명의 퇴직 후 취업한 공직자 가운데 25명이 공직자윤리법에서 금지하는 퇴직 전 근무했던 부서와 밀접한 업무 연관성을 가진 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의심된다. 이는 참여연대가 언론기사나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자료와 같이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한 결과로 실제로 업무 연관성이 밀접한데도 조사방법의 한계로 찾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온정적으로 판단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공직자의 퇴직 후 취업으로 인한 이해충돌을 보다 근본적으로 방지하려면 법 제도를 더 보완해야 한다.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퇴직 공직자가 법무법인에 취업하는 것은 제한되지만, 제한대상인 퇴직 공직자가 변호사인 경우에는 법무법인취업에 제한이 없어 법무법인에 취업하고도 업무 연관성 여부를 심사받지 않았다. 전직 검찰과 법관의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무법인에 변호사가 취업하는 경우에도 밀접한 업무 연관성이 있다면 제한하도록 해야 한다.
앞서 참여연대 보고서를 보면 법에서는 업무 연관성을 퇴직 전 근무했던 부처가 아닌 부서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취업제한 대상은 아니지만, 현직에 있을 때 일했던 부처와 밀접한 업무 연관성을 가진 업체에 취업한 경우는 절반이 넘는 128명이나 된다. 128명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고위직인 경우는 꼭 자신의 부서의 업무와 관련 있는 기업이 아니더라도 취업으로 인해 이해충돌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행령이나 법을 개정해 '과' 단위로 업무 연관성을 판단하고 있는 것을 좀 더 범위를 넓혀야 한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온정적으로 판단한 이유 중의 하나는 관료조직의 이해관계와 배치될 수 있는 공직윤리 업무를 전형적인 관료조직인 '안전행정부'의 한 부서가 맡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공직자윤리위원회를 사무국을 둔 독립적인 위원회로 만들거나,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반부패기구를 만들고 공직윤리 업무를 반부패업무와 같이 맡는다면 퇴직 공직자에 대한 온정적인 판단은 줄어들 것이다.
공직자의 퇴직 후 벌어지는 이해충돌의 문제는 퇴직공직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현직의 공직자와 연결고리를 통해 이해충돌의 '가능성'은 부패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부패' 또는 '부패의 가능성'은 공직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이는 신뢰도 회복을 위한 또 다른 비용의 지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나서서 이해충돌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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