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자살·사고사…'건 바이 건' 기사들, 이렇게 삽니다

[비정규 노동자의 얼굴] <1> 전동열 유선티비 AS 노동자

한국에서 비정규직이 널리 퍼진 것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입니다. 마치 경영의 기본처럼 여겨지며 빠르게 자리잡은 이 시스템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폐해를 만들어 왔습니다.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건강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답을 구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비정규 노동자의 얼굴을 봅니다. 얼굴로 정규와 비정규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누구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이전에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들이 다른 존재가 아님을 아는 과정이며, 차별이 어디에서 발생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수순입니다. 또한,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기회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이기도 한 이상엽 기획위원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 보내왔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자의 이야기를 사진과 음성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상엽 기획위원의 사진과 이혜정 <비정규노동> 편집장의 글이 어우러지는 이 연재는 매주 본지의 지면과 이미지프레시안을 통해 발행됩니다. <편집자>

▲ 전동열 유선티비 AS 노동자 ⓒ이상엽

나는 올해 서른일곱입니다. 일한 지는 19년 정도 되었네요. 중3 때부터 일을 배우고,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기사 일을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건 바이 건' 기사라고 해서 설치 건이나 AS 한 건당 수수료를 받아요. 그런데 본사에서 돈을 기사에게 바로 주는 게 아니라 센터에 돈을 주고 과도한 영업 실적을 요구해요. 영업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지역을 뺏거나, 페널티를 적용해서 금전적으로 빼앗죠. 씨앤앰에는 검수라는 게 있어요. 본사에서 기사가 일한 곳을 도는 거죠. 기준에 맞지 않게 설치했을 경우, 본사에서 페널티를 적용해요. 이 검수라는 제도 때문에 기사는 급여를 두 달 후에 받아요. 당장 돈을 못 받으니까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현금 서비스나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건 바이 건' 기사에게는 기본급이 없거든요. 퇴직금도 없고요.

일요일이나 명절도 쉴 수가 없어요. 설치 기사들은 한 달 동안 그 집 AS를 봐야 하거든요. 전화 오면 무조건 가야 해요. 기사가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은행 계좌 이체도 받아야 하고, 신분증 본인 확인에 연세 많으신 분에게는 보증인 서명까지 받아야죠.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는 곳은 사업자 등록증, 직인, 명판 다 받아야 하거든요. 그거 다 못 받으면 설치 수수료가 안 나와요. 그런 일들을 하루 30건, 40건씩 가지고 나가요. 마음이 급하니까 양질의 서비스를 하기도 힘이 들죠. 그날 받은 오더를 다 처리하고 퇴근해야 하니까요.

사고도 많아요. 과도한 영업 요구 때문에 한 사람은 자살했고요. 한 사람은 옥상에서 일하다가 떨어져서 머리를 다쳤어요. 또 한 사람은 설치를 갔는데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날 접수 건을 조회해서 찾아가봤더니 집과 집의 담 사이에서 죽어 있었어요. 과로사였죠. 야간에 지하에서 지중화 작업을 하다가 변압기 폭발로 기사들이 죽기도 했어요. 감전 사고도 많아요. 저도 전기를 많이 먹었는데, 비 오는 날 어느 업체 사장은 "고무장갑 줄 테니까 전주 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대요. 3년 전,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린 적이 있어요. 그때도 삽 하나 받아 가지고 나갔어요. 차가 안 움직이면 삽으로 눈을 퍼내고 일을 하라는 거였어요. 이렇게 늘 사고에 노출되어 있지만 기사들은 산재 처리가 되지 않아요. 모두 개인 사업자 등록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치료비도, 유지비도 모두 기사가 부담해야 해요. 이런 이야기들을 하려고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과로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면서 일하고 싶어요.


*이 글은 격월간 <비정규노동> 5-6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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