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풍자 영화 사실상 '상영 금지'…이유는?

영등위, 독립영화 <자가당착> 연이어 '제한상영가' 부여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비롯한 정치인을 풍자한 영화가 사실상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아 논란이다.

문제의 영화는 2010년에 제작된 독립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치와 현실 참여>(이하 <자가당착>, 감독 김선)이다. <자가당착>은 포돌이를 주인공으로 한 정치 풍자 영화로, 2010년 인디포럼(7월)과 서울독립영화제(12월)에서 상영되고 2011년에는 베를린영화제(2월)와 전주국제영화제(5월)에 초청됐다.

영화계에선 인정을 받았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판단은 달랐다. 영등위는 2011년 6월 14일 <자가당착>에 대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폭력적·선정적이고, 대사와 주제에서 특정 계층에 대한 경멸적 또는 모욕적 표현을 사용해 개인의 존엄을 해치는 내용의 표현 수위가 극심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선 감독은 영등위가 문제 삼은 장면을 수정하지 않고, 올해 8월 등급 재분류 신청을 했다. 9월 22일, 영등위는 다시 '제한상영가' 결정을 내렸다.

영등위 "폭력성 때문" - 영화계 "정치적 판단"

이 영화에서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박근혜 후보를 떠올리게 하는 마네킹이 나오는 장면이다. <자가당착>에는 이 마네킹의 목이 잘리고 피가 치솟는 장면이 나온다.

영등위는 "살아 있는 사람을 해친다는 상징적인 내용의 폭력성이 문제"라고 밝혔다. 정치적 내용 때문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MB의 추억>(김재환 감독)이 얼마 전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것도 영등위 주장의 근거 중 하나다. 영등위가 정치적 판단을 했다면 <MB의 추억>도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설명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영화계에선 <자가당착> '제한상영가' 판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인디포럼,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비롯한 16개 단체는 4일 공동 성명을 내고 "영등위가 명백히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들은 <자가당착>이 독립영화의 기발한 상상력과 비판 정신이 돋보이는 "수작"이라며, 문제의 "핵심은 사실 특정 정치인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등위가 폭력성이라는 미명 하에 <자가당착>의 정치적 표현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로써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는 독립영화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단체들은 "만인의 공인인 정치인에 대해서 그것이 개인이든, 영화든 누구나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음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고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영등위가 그러한 기본권을 짓밟았다는 비판이다.

영등위와 독립영화계는 오래 전부터 갈등을 빚어왔다. 성적 표현 수위도 양쪽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사안이었다. 그간 성적 표현 문제와 관련해 양측이 충돌한 작품으로는 <둘 하나 섹스>, <죽어도 좋아>, <고갈>, <줄탁동시>, <친구 사이?> 등이 있다. 16개 단체는 이 영화들을 거론한 후 "영등위가 변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며, "<자가당착>의 두 차례에 걸친 '제한상영가' 판정은 성적 표현의 수위를 넘어 영화의 정치적 자유의지를 구속하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화인들이 반발하는 까닭은 '영등위가 과도한 검열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한상영가' 영화 전용 극장이 없는 한국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은 사실상 '상영 금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16개 단체는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자가당착>을 어떤 상영 공간에서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라며 "영등위는 실질적으로 영화로서 <자가당착>에 대한 죽음을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1차 회의록에 따르면 폭력성이 아니라 주제 때문에 '제한상영가'"

이런 상황에서, 영등위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자가당착>에 '제한상영가' 등급이 부여된 이유가 폭력성이 아니라 정치적 주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영등위의 <자가당착> 관련 등급 분류 1차 회의록(2011년)에는 폭력성과 관련해 심사위원 중 1명이 '15세 이상가', 7명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매겼다. '제한상영가' 판정이 나온 건 주제에 관해서다. 주제와 관련, 심사위원 중 1명이 '청소년 관람 불가', 7명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유 의원은 이를 근거로 "폭력성이 아니라 정치적 풍자라는 주제에 대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 유 의원은 '정치 심의' 논란이 불거진 후 올해 이뤄진 2차 심의에서는 주제보다 폭력성과 관련해 더 많은 '제한상영가' 판정이 나왔지만, 그 회의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치적 내용에 대해 거론한 사항이 1차 때보다 더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함의와 상징이 가득한 이미지들이 과격하고…."
"국민적 정서를 현저히 손상할 우려가 높다."
"특정 정치 인물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필두로 한 집권 여당을 비판한 정치적인 영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담긴 영상."

유 의원은 주제에 대해 상영 등급을 매기는 목적이 "정치적 주제를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라며, "(<자가당착>의) 주제를 '제한상영가'로 판정한 것은 성인을 포함한 전 국민이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이해·수용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또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정치의 신념에 대해 국가가 등급을 매긴 것"이라고 규정하고 "영등위가 마치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처럼 독립영화를 재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자가당착>에 대한 '제한상영가' 판정을 당장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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