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신자유주의의 생체시험장

[메이데이 총파업,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총파업, 노동조합에 맡길 일이 아니다"

총파업은 공장을 정지시키는 일반적인 파업과 다르다. 총파업은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하기 위한 것도, 교섭을 위해 위협하는 전략도 아니다. 오히려 총파업은 현 체제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현 사회 체제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 체제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판단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5월 1일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가자!" 서울광장을 점령한 '서울점령자들'이 제안하고 30여개의 워킹그룹이 달라붙어 메이데이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비정규직, 백수, 실업자, 감정노동자, 예술가, 디자이너, 시인, 작가 등 다양한 목소리와 요구를 가진 이들이 거리로 나올 것이다. 'No Work, No School, No Housework, No Shopping'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5월 1일 하루를 도시를 멈추는 날로 만들기 위함이다. 4일 간 '메이데이 총파업' 연재를 통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 메이데이 총파업 블로그)

신자유주의의 생체시험장

한국사회가 이 지긋지긋한 피폐함을 떨치고 반응하게 되는 역치는 도대체 무엇일까.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의 자살, 무대에 자신의 작품이 올라가는 것을 보지도 못한 작가의 죽음, 아이에게 장애아동 육아수당을 받게 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끊은 아버지, 학벌과 스펙노동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한국사회가 움직이려면 대체 이 이상 어떤 세기의 자극이 주어져야 하는 것일까.

3년간 22명의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넋들을 애도하겠다고 길거리에 친 분향소 천막이 매일같이 경찰에 부서져도, 멀쩡한 강을 뒤집어 시멘트로 채우고, 세계자연유산을 폭약으로 부수고, 이것을 막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폭행하고 연행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한국사회를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마치 신자유주의의 역치를 실험하는 생체실험장 같은 한국사회. 오늘도 우리는 사방에서 우리를 옥죄는 이 자본과 체제의 야바위에 하루하루 '참여'한다. 아침에 일어나 일터와 학교에 가고, 구인 사이트를 뒤지고, 남보다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온갖 야바위를 동원해 경쟁한다. 그렇게 얻은 일자리가 점점 더 짧은 계약기간, 점점 더 낮은 임금과 더 강도 높은 일을 시켜도 묵묵히 이에 참여한다. 경쟁자는 이겨야 하지만 인력시장과 체제에는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2012년의 한국사회다.

역치를 넘기면 무엇을

이렇게 사방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체제에 사방으로 맞설 수 있기는 한 걸까? 총선의 미지근한 결과는 투표라는 신사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이 이 아수라의 세계에 희망이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오히려 선거는 언제나처럼 거대한 쟁점을 내세우느라 주변으로 밀려난 의제를 감춰버렸다. 이번 총선에서도 프레카리아트, 4대강, 청소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문화예술분야, 대학법인화와 학과통폐합 같은 주변화 된 의제가 설 자리는 없었다.
2008년 촛불의 방식은 어떨까. 이에 대한 수많은 평가와 쟁점이 있었지만, 촛불의 새로움을 계승하고 한계를 지양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은, 촛불집회가 그 참가자들이 낮에는 체제에 복무하고 저녁에는 체제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운동이었다는 사실이다. 4년 전 이맘 때 시작해 온 여름을 달궜던 촛불집회의 나날 속에서 우리는 일보일퇴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급박한 퇴보를 막은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촛불집회가 남긴 더욱 중요한 유산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반성일 것이다.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을 지지하는 것은 전통적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다. 게다가 그간 비정규직이라는 핵심적인 문제에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했던 노동조합들이 최근 사활을 걸고 나서고 있다. MBC, KBS, YTN가 총파업에 돌입하는 초유의 사건이 진행 중이고, 철도노조는 조만간 안전사고를 야기할 것이 분명한 KTX 민영화에 반대하며 높은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다. 민주노총도 노조대표자 수련회를 통해 8월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오늘, 22명의 KBS 보직 간부가 사퇴하며 KBS 노조의 총파업에 동참하겠다고 나섰고,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콜로세움의 노동자를 지지하면 되는가?
우리의 삶과 안전을 담보로 한 끝도 없는 시장화를 멈추기 위해, 그 톱니를 멈추는 것만큼 직접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노조에게는 이 모든 것을 짊어질 힘이 없다. 2010년 국내 노동조합 조직률은 9.8%에 그친다. 언론사가 결행한 총파업과 철도노조의 총파업 결의는 중요한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체제의 전면적인 압박에 비하면 작디작은 돌멩이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 계획에 얼마나 많은 개별 단위노조가 참여할 지 알 수 없으나 6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파업 역시 한국사회 전체의 저항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요컨대, 총파업은 노동조합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사실 현재의 위기는 모든 것의 위기이며, 운동의 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폭주하는 사회를 제동해야 할 운동조직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모든 공동체를 원자로 나눠 개인들이 유연화 된 시장의 통제를 받게 함으로써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기초단위를 파괴해버렸고, 서민의 생활을 보편적인 궁핍으로 몰아넣어 진보정당이나 사회운동 단체, 시민운동 단체의 빈곤을 야기했다. 활동가는 프레카리아트 계급 그 자체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권력과 체제는 직접적으로 활동가를 고소하고, 벌금과 소송으로 이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총파업을 결의하고 나선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으로 우리 몫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것은 어쩌면 콜로세움 안의 검투사를 응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행동은 노동자들을 콜로세움 안의 검투사처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폭주하는 시스템을 멈추는 행동에 직접 '참여'하고 함께 그 책임을 지는 일이다.
'사회가 주도하는 총파업'
현재 500일이 넘도록 파업 중인 전주의 전북버스 노조는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을 조롱하는 회사와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는 전북도청에 맞서 싸우고 있다. 노동조합 지부장이 망루에 올라 단식농성을 한 지도 40일이 넘었고, 조합원들이 버스 대신 두 발로 매일같이 시내를 걸으며 시위를 하지만 노사의 원만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렇게 피폐해져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65만 전주시민들과 40만 전주국제영화제 참가자들이 도청과 전북버스에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것, 즉 '동참행동'이 아닐까?

제주 강정마을은 어떠한가. 세계적인 자연유산과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의식이 폭력적으로 유린되고 있는 강정은 더 이상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의 손만으로 막기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와 해군은 대선이 가까워지기 전에 서둘러 강정 구럼비 해안의 공사를 강행하려고 할 것이고, 강정의 평화와 자연을 그대로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한 위협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제 강정의 문제는 강정마을의 주민 뿐 아니라 제주도의 시민사회와 강정을 지켜보는 전국의 힘이 모이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전주와 강정을 비롯한 저항의 현장은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99%"라는 표현은 이제 이 체제의 피해자가 거의 모두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리 중 대부분은 97년 외환위기, 2007년 금융위기의 피해자다. 미리 지급된 정규직 노동자의 퇴직금은 주식과 부동산 거품과 함께 증발했고, 이들의 자녀들은 수 천 만원의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하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실업자가 되었다. IMF 직후 우리는 보험금 지급을 노린 가장의 자살과 생활고로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 그 충격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청년, 청소년들의 죽음은 이들에게 멀디먼 뉴스가 아니라 우리에게 들이닥칠 문제,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풀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된 것이다.

'사회가 주도하는 총파업'은 더 이상 이러한 체제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사회가 선포하는 것이다. '총파업'은 제동장치를 잃고 아수라장이 된 현실을 폭로하고, 순서를 가릴 수 없는 여러 의제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 체제를 한 날 한시에 멈추는 것. 이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동시에 움직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구상이다. 이것은 하나의 요구조건으로 단결할 수 없는 현재 상황, 즉 각자의 문제와 요구가 모두 시급을 다투고 있으며,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을 드러낼 것이다. 이 요구들의 선후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 요구들이 한꺼번에 표출되지 않고서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릴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를, 사회를, 99%를 위하지 않는 이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다. 모든 것의 핵심이 되는 원리에 구체적으로 충격을 주는 방법이다. 즉 '사회'를 위하지 않는 체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가 다시 '사회'를 위하게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 요컨대 하루 동안 현재의 체제에 대한 모든 행위를 '철회'하는 것이다.
전주와 제주의 주민들, 그리고 전주와 제주를 찾는 모든 분께 부탁드린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단 하루 동안 멈추고, 이 일이 우리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하루 동안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계속되는 지금의 체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총파업 선언에 동참해주시기 바란다. 이 선언으로 버스노동자들과 강정마을의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을 나누겠다고 표현해주시기 바란다.

또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메이데이 총파업 행동의 참여자들께 부탁드린다. 당장이라도 이 체제를 뒤바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절박함을 표현하면서도, 그 표현을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 우리를 위하는 체제가 사회에 정착된 미래의 모습으로 표현하자. 현재의 체제가 멈추더라도 우리의 사회는 더 나은 모습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본과 권력에도 메이데이 총파업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지금 자본과 권력이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문제를 만들고, 사회를 붕괴시키는 것이 여러분의 일 아닌가? 여러분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일을 멈춰라. 우리를 착취하는 일을 멈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와 그 동료들을 위로하는 분향소를 침범하는 일을 멈춰라.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농성장을 파괴하는 일을 멈춰라. 구럼비를 파괴하는 일을 멈춰라. 강을 파괴하는 일을 멈춰라. 모든 파괴를 멈추고, 우리의 멈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라.

메이데이 총파업 행동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 힘이 아주 작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작은 것에 동참하지 않는 한 우리가 기다리는 스펙터클한 광장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시작하자. 2012년 5월 1일, 우리가 먼저 일을 멈추고, 학교를 멈추고, 소비를 멈추자. 그리고 서로에게 응원과 지지를 넘어 동참을 부탁하자. 어쩌면 이것이 2012년 한국사회를 그 전과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만들 무언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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