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파는 언니를 생각하면 왜 마음이 아플까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11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특별상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1년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을 진행했다. <프레시안>은 당선된 작품을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1.만남

사장님이 순영 언니를 가리킨다. 경력이 많으니까 같이 다니면서 따라하면 된다고 한다. 사장님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럭저럭 면접이란 걸 통과했다. 험한 일인데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술만 마시고, 오빠는 군대에 갔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왔다갔다 버스비 440원, 점심값 2000원을 가지고 출근을 했다. 만두, 햄, 맛살, 참치 같은 걸 파는 대리점이었는데 스물다섯 살 순영 언니는 그곳에서 5년이나 일했단다. 언니 뒤를 쫄래 거리고 따라다니면서 언니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다 보니 그림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몰래 언니 얼굴을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언니가 웃어줘서 마음이 놓였다.

언니가 나를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휴지에 아세톤을 묻혀서 햄이랑 맛살 포장에 찍힌 날짜를 지운다. 유통기한이 하루나 이틀 남은 반품된 물건. 언니는 날짜를 지우고 유통기한을 한참 늘려 새 날짜를 부여한다. 나도 언니를 따라 날짜를 지웠다. 사장님이 순영 언니를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헌 날짜를 지우고, 새 날짜를 찍고, 다시 팔고…. 언니와 유일하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무서워. 들키면 감옥 가는 거 아냐? 하지만 나는 세 달짜리 아르바이트생일 뿐이라서 시키면 해야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물건을 정리 하고, 햄이랑 맛살에 새 날짜를 찍었다. 영업사원이 하루 종일 팔 물건을 차에 실어 주면 슈퍼에 갔다. 순영 언니랑 같이 가고 싶은데 언니는 경력이 많아서 시내에서 가장 큰 슈퍼에 가고 난 그보다 작은 슈퍼다.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언니와 점심을 같이 먹기로 약속했으니까. 슈퍼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사장님 심부름 하고, 사모님 심부름 하고, 손님 심부름을 했다.

그러다 점심이 되면 순영 언니를 만나서 2000원짜리 수제비를 먹었다. 얼른 수제비를 먹고 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돌아다니다 한 시간을 3분 남겨 놓고 슈퍼로 뛰어갔다. 또 사장님 심부름하고, 사모님 심부름 하고, 손님 심부름을 하다가 어두워지면 또 언니를 만났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언니 손을 잡고 잠바 주머니 속에 넣고 돌아 다녔다. 언니 손은 거칠었지만 무척이나 따뜻했는데 언니는 내가 버스 타는 걸 보고서야 혼자 자취방을 향해 걸어갔다.

▲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이 없습니다. ⓒ프레시안(허환주)

2.만두 장사

사장님이 장날이라고 시장에 가서 만두를 팔라고 한다. 무슨 소린지 몰라 가만히 있는 내게 또 말한다. 순영 언니만 따라 하면 된다고. 배가 뚱뚱한 영업사원이 만두 30상자를 싣고, 널찍한 판자도 싣고 시끌시끌한 시장으로 데려간다.

시장 한 복판에 만두를 내리고, 허리 높이에 판자를 걸치고 만두를 쏟아 놓더니 가버렸다 장날이라 사람들은 미어지게 많은데 한겨울 하늘은 '쨍' 소리가 나고 난 여전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시장에 왔다가 엄마를 잃은 아이마냥 만두 옆에 서 있었더니 언니가 말한다.

"장날마다 와서 이거 파는 거야, 빨리 팔면 빨리 갈 수 있어. 가만 있으면 더 추우니까 소리를 질러서 손님을 모으는 거야."

갑자기 언니가 박수를 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만두가 한 봉지 얼마, 두 봉지 얼마, 사은품도 준다고. 지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힐끔 쳐다보고, 어떤 사람은 모른 척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만두를 사러 온다. 내가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언니 따라 소리를 먼저 질렀는지, 계산을 하고 봉지에 담아 주길 먼저 했는지, 새 상자를 뜯어 만두를 다시 쌓았는지 기억이 없다. 하여튼 언니를 따라서 얼른 팔고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창피하다, 춥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만 하는 현실은 또 다른 나를 만들었다.

만두 팔기가 익숙해졌다. 소리도 잘 지르게 되었고, 계산도 잘해서 돈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정확하다고 사장님한테 칭찬도 들었다. 또 장날이다. 사장님이 명절 전이라 더 많이 팔아야 한다고 해서 50상자나 가지고 갔다. 하지만 장에 사람이 없다. 추위 탓이다. 그러니 소리를 질러봐야 소용없고, 나도 모르게 콧물만 나왔다. 장사 잘하는 순영 언니도 마찬가지다.

새파랗게 젊은 아가씨 둘이 새파랗게 얼어서 시장 한복판에 만두를 쌓아 놓고 발을 동동거렸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고 멀리서 두 명이 다가온다. 어떻게든 한 개라도 더 팔겠다고 언니가 소리치는데… 내 친구다. 순옥이가 나를 보더니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 아르바이트 하는 거라고, 만두 좀 사가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나를 보는 순옥이 눈이 토끼가 되었다.

이 순간이 빨리 좀 가라, 그리고 기억나지 마라, 너도 나도 다 잊어 버려라.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던 나는 웃고 있었나, 울고 있었나. 만약 눈물이 났다면 너무 추워서였을 것이다. 콧물이 저절로 나온 것처럼 눈물도 그렇게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었을 것이다. 그 날은 만두를 반도 못 팔았다.

구정을 앞 둔 마지막 대목장. 날이 아무리 추워도 사람이 많을 것을 안다. 순영 언니와 나는 또 만두 50상자와 함께 시장에 내 던져졌다. 배가 뚱뚱한 영업사원은 어떻게 해서든 다 팔아야 한다고 협박조로 말하고 또 가 버렸다.

'엿 먹어라! 재수 없는 새끼! 이 날씨에 니가 나와서 한 번 팔아 봐. 사장 처남이라고 뭣도 모르면서 나대기나 하는 꼴이라니.'

욕이 나오게 춥다. 양말을 두개나 껴 신고, 모자에 목도리까지 했는데, 지난달 월급 탄 돈 아껴서 큰맘 먹고 오리털 잠바도 사 입었는데 그래도 소용이 없다. 속이라도 든든하면 한결 나을 텐데 다 못 팔면 데리러 안 오겠다는 영업 사원 말에 점심도 못 먹고 만두를 팔았다. 뜨거운 커피는 빈속만 훑을 뿐이다. 징그럽게 춥다. 하지만 대목장이었다. 대목장을 보려고 젊은이부터 중늙은이, 완전 늙은이까지 장에서 함께 얼어갔다. 나도 순영 언니도 그 틈바구니 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함께 얼었다.

어둑해질 무렵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못 본 척 지나가도 서운하다 안 할 테니까 제발 그냥 좀 지나가라. 아, 씨, 이모다. 나를 알아본 이모가 눈물 바람을 하며 달려온다. 어린 것이 어미가 죽으니까 시장 바닥에서 만두나 팔고 있다고, 금방이라도 땅에 주저앉을 기세다.

"이모, 그냥 아르바이트예요. 장 보러 왔어요? 만두 좀 사 가요. 얼마 안 남았는데 몇 개
드릴까?"


나는 기대했다. 몇 개 남지도 않았으니 이모가 저걸 다 팔아 주기를. 빨리 다 팔고 집에 가서 이불 속에 기어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을 차린 이모가 만두를 산다. '딱 한 봉지' 한 봉지 사 가면서 두 봉지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쟁반을 달라고 해서 두 개나 가져간다.

뚱뚱한 이모 뒤통수에 대고 눈을 흘겼다. 그래, 그거나 한 봉지 먹고 떨어져라. 그리고 천년, 만년 잘 살아라. 그 날은 만두를 다 팔았다. 대목장이었다. 영업사원이 데리러 오는 사이 순영 언니가 사 준 뜨끈뜨끈한 어묵 한 그릇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3개월의 반을 순영 언니 따라서 만두 장사를 했고, 언니 손잡고 다니며 수제비를 먹었고, 시장을 누볐다.

3.헤어짐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 사장님이 회식을 시켜줬다. 사장님이 곱창 집에 데리고 가는데 언니가 살살 말한다. 사장님은 회식할 때마다 곱창 집엘 가는데 그 이유가 사장님 이빨이 틀니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난 언니 얘기를 듣고서야 유난히 희고 고른 사장님 이빨이 틀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언니와 난 틀니 뺀 사장님 오글거리는 입술을 상상하며 몰래 웃었다. 고무줄 같은 곱창을 열심히 씹고 있는데 사장님이 졸업하고 취직할 데 없으면 다시 오라고 한다.

언니는 곧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둘이 열심히 모아서 조그만 가게 하나 차리면 길거리에서 만두 장사 안 해도 되고, 남의 슈퍼에서 심부름 안 해도 되니까 자기는 꼭 가게를 차릴 거라면서 곧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누구? 그 사람 나도 아는데? 내가 보기에는 개갈 안 나는 사람 같은데 그 사람이랑 결혼을 한다고? 언니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언니 꿈이 꼭 이뤄져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영 언니는 내가 스무 해 동안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예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내 보기엔 예쁘고 날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맘이 더 예뻤다. 손 시리다고 목장갑 속에 얇은 속 장갑 하나 더 챙겨줄 줄 아는 사람. 양말을 두개 신으라고 당부하던 사람도 언니였고, 시장에서 제일 싸고 맛있는 수제비 집을 가르쳐 준 사람도 언니였고, 사은품으로 나눠 주는 쟁반을 챙겨 주고, 날짜 지난 햄이랑 맛살일망정 반찬 해 먹으라고 슬쩍 넣어 주던 사람도 언니였다.

점심도 굶고 만두를 팔던 저녁 뜨끈한 어묵을 사 주고, 언제나 차가운 내손 위에 따뜻한 손을 포개주던 사람도 언니였다. 헤어지는 게 싫다. 계속 언니만 따라다니면 그렇게 언니가 다 챙겨줄 것 같은데. 언니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다.

4.싸움에서 져서 싸움에서 이기다

겨울 방학 3개월을 슈퍼에서 일하고 장날마다 만두를 팔았더니 학교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학비가 없으니 장학금을 받아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데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만두 장사는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돈도 훨씬 많이 주니까 그냥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도 다시 오라고 했고, 무엇보다 순영 언니도 다시 만나고 좋지 뭐. 오빠한테 학교 그만 두고 만두 장사하겠다고 얘기했더니 욕을 욕을 하며 안 된다고 펄펄 뛴다.

"그럼 오빠가 학비 줄 거야?"
"장학금 타면 되잖아!"
"생활비는?"
"아르바이트 하면 되잖아!"
"아르바이트 하면서 어떻게 장학금을 타?"
"그 동안 잘했잖아!"
"이제 못 할 거 같다고, 죽을 거 같다고, 그냥 만두 장사가 속 편하다니까!"
"나도 하는데 왜 못 해?"
"내가 너냐? 오빠나 해! 내가 돈 벌어서 오빠 학비 주면 오빠도 좋지 뭘 그러냐?"
"너 죽을래?"


오빠를 이길 수가 없다. 오빠가 울 것 같은데 오빠 말을 안 들으면 오빠가 더 이상 내 오빠 안 하겠다고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내가 딴 데로 튈 것 같았나보다. 2학년이 시작되자 오빠는 나를 앞세우고 이불 보따리, 책 보따리를 지고 학교에 왔다. '뚱땡이' 영업사원이 만두 50상자와 함께 시장에 내던지고 가던 날처럼 오빠가 나를 기숙사에 던져 놓고 갔다.

눈에 힘 팍 주고, 입을 꾹 다물고,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죽어가는 전우를 옆에 둔 병사처럼 전의를 다졌다. 학기 중에는 손바닥이 말 발바닥이 되도록 도서관에 대걸레질을 했고, 여름방학에는 은행 문 앞에 마네킹처럼 서서 인사를 했고, 겨울방학에는 만두를 팔았다. 그리고 나는 졸업을 했다. 내가 졸업한 건 내 덕이냐, 오빠 덕이냐. 졸업식 날 오빠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왔다. 왠지 이긴 것 같았다.

5.다시 만남

헤어지고 나서 간간히 언니에게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 개갈 안 나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둘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가게를 하게 됐다고 해서 좋았다. 대리점에서 같이 일하던 영업사원이 자기 가게에 물건을 갖다 준다고 흐뭇해하는 어엿한 사장님이 된 거였다.

그리고 나도 결혼을 했고, 쌍둥이를 낳았고, 지지고 볶으며 사느라 언제 어떻게 연락이 끊어지게 됐는지 기억이 없다. 쌍둥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그나마 꼴 같지도 않은 대학 졸업장이 취업문을 넓혔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났다.

집에 오다가 마트에 들렀다. 이제 동네 구멍가게는 없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슈퍼, 편의점, 그리고 전국에 다 있는 아주 큰 마트만 있다. 이 마트, 롯데 마트, 그리고 중국산 올갱이와 이란산 무화과를 파는 농민의 하나로 마트. 하나로 마트에 갔다.

만두를 사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딘지 귀에 익다. 만두를 사러 온 것도 아니면서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가고 있다. 순영 언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하고 옛날 생각이 나면서 막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어떻게 된 거지? 아는 척을 해야 하나? 울 것 같아. 그냥 지나가야 하나? 망설임 없이 그냥 지나쳤다거나 인사했다면 십 수 년 만의 만남이 기뻤을까?

멀찍이서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하지만 언니는 아주 환하게 웃는다. 다행이다. 언니가 옛날처럼 용감해 보였다. 대형 마트가 여기저기 들어서면서 언니가 하던 가게는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애들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남편도 열심히 일 하고 아픈 사람 없으니까 걱정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언니는 다시 만두를 판다. 다시 만두를 팔 수 밖에 없었던 거다. 언니가 게으르게 산 것이 결코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을 것을 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고단한 삶일 수밖에 없는 이 상황. 누군가 샘이 나서 흔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도 않은 그렇고 그런 삶이 화가 났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어슬렁거리며 시장을 보는 일. 무겁다고 배달까지 시키는 편리한 일상이란 것이 누군가에게 굉장히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난 왠지 언니에게 계속 미안했다.

만두를 많이 샀다. 만두 판돈이 언니에게 가는 것은 아니지만 빨리 다 팔고 집에 가서 푹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언니가 일을 아주 잘 한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서 11개월마다 계약서를 다시 쓰는 일 없이 퇴직금도 있고, 상여금도 있고, 보험도 다 되는 그런 자리에서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 다 그럴 수 있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많은 말을 했다. 오랜 시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때문인지 뭔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같은 처지였으니까. 우린 그 때 그 겨울에 잘 살기 위해 함께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은 결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보탠 서로의 힘은 우릴 강하게 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걸 우린 진즉에 알고 있었다. 고단한 언니 삶이 안쓰럽지만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언니가 이긴 거다. 내가 언니 편이고 또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망쳐 버린 그 사람들을 이미 이긴 거 맞다.

순영 언니가 내게 따뜻함을 가르쳐 준 것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돼야지. 언니한테 만두를 사러 하나로 마트에 또 가야지. 그런데 왜 자꾸 맘이 아프고 눈물이 날 것 같은 걸까? 중국산 올갱이와 이란산 무화과를 파는 농민의 하나로 마트에서 만두를 파는 언니의 고단함이 나는 속상하다.

* 이 글의 원제는 <순영 언니>입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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