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걷고싶은 거리, 밀려난 그들 ☞①막창집 주인 이씨는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②"홍대 앞에는 왜 '부비부비' 클럽만 남게 됐나" ☞③"돈 냄새와 정욕에 질식한 예술의 거리" ('종로→명동→신촌→홍대→?'…청년문화 잔혹사) |
서울지하철 홍대입구역 8번 출구로 나와 '걷고 싶은 거리'로 가다보면,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대형 커피점들이 즐비하다. 이곳을 지나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가로지르면 차 한 대가 지나갈 폭의 작은 골목길이 나타난다. 홍대 중심가와는 달리 5~6평의 소규모 가게들이 줄지어 차려져 있다. 다세대주택을 개조해 만들어진 옷 가게, 커피점, 와인바 등이다.
"하루 10만 원어치도 팔고, 어떤 날은 아예 공치기도 하죠.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다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려고 해요. 이젠 달리 물러날 곳도 없어요."
이 곳 골목길에서 막창 구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주(46) 씨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지난 6월 17일, 가게 문을 열었다. 한 달 조금 넘게 운영을 했지만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골목이라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지리적 조건이 한몫했다.
오후 5시쯤 출근해서는 답답한 마음에 냉장고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의자 배치도 바꾼다. 이 씨는 "손님이 없으니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다"며 "뭐라도 해야 불안한 마음이 없어지기에 이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홍대 걷고싶은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음악가들. ⓒ프레시안(최형락) |
한 달에 350만 원이었던 월세가 1500만 원으로
이 씨가 홍대 앞에서 장사를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씨가 처음 장사를 한 건 27살 때다. 현재 홍익대학교 인근 놀이터 앞에 위치한 건물 1층에서 김밥 집을 했다. 장사는 잘됐다. 그렇게 2년 정도 장사를 했을까. 건물 주인은 자신이 장사를 하겠다고 나가라고 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해서 그 곳을 나왔다.
고민을 하다 칼국수 집을 하기로 했다. 음식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장소를 물색하다 현재 '수' 노래방 맞은편 단층 건물에서 의자와 탁자 몇 개를 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인근에는 '수' 노래방도, 대형 포장마차 등 주점도 없었다. 17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장사는 '대박'이었다. 메뉴는 버섯을 넣어 즉석으로 끓여먹는 '버섯칼국수'. 이것은 홍대 명물이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가격은 1인당 4500원. 부담이 없어 사람들이 더 찾았다. 가게 위치가 당시로 따지면 홍대 중심가에서 외곽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저녁 7시가 되면 가게 입구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가게가 너무나 유명해져 운영하는 동안 방송, 신문 등에 인터뷰만 150여 회를 했다. 한 달 매출은 2000만 원이 넘었다. 그렇게 홍대 명물로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했다. 가격은 한 푼도 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상황이 달라졌다. 2000년, 가게 맞은편에 '수' 노래방이 생기고 부터다. '수' 노래방은 명품 노래방이라는 개념으로 호화스럽게 방을 디자인하고 철저한 직원 서비스 교육, 최신 음향 설비 준비 등으로 많은 손님들이 찾는 노래방이다. 2004년에는 고객 만족도 1위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수' 노래방이 생기면서 이 씨가 장사를 하던 서교 365-12번지 일대에는 우후죽순 대형 가맹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장사도 예전만큼 되지는 않았다. 조미료를 쓰지 않는 칼국수 맛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 장사를 했다.
"여기가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건물 주인이 갑자기 이 씨에게 월세를 올려달라고 한 것. 한 달에 1500만 원을 내라고 했다. 이 씨가 한 달에 내는 월세는 350만 원. 5배 가까이 올려달라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주의 완강한 입장에 '600만 원까지 맞춰보겠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월세를 맞추지 못해 계약이 만료된 2008년 5월 20일, 가게를 접었다. 새로 들어오는 가게에게 넘겨주는 방식도 아니라서 권리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에는 유명 대형 떡볶이점이 들어왔다.
이 씨는 "들리는 바로는 대형 떡볶이점이 들어와 임대료를 한 달에 1500만 원씩 내고 있다고 들었다"며 "결국 건물주인은 떡볶이점에서 1500만 원의 임대료를 내겠다고 하자 나를 쫓아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간 이곳에서 장사한 덕분에 식구들이 잘 살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편히 가졌다. 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를 하면 잘 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상수역 쪽에 권리금 2억에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 1억2000만 원을 투자해 다시 칼국수 집을 열었다. 하지만 2년 4개월 만에 손해만 보고 장사를 접었다.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사람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히 가게를 떠난지라 단골손님에게 이전하는 식당을 알리지도 못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난 6월, 막창 집을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 차렸다. 이 씨는 "이게 얼마나 유지될지 모르겠다"며 "이젠 여기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 서교 365번지 건물 앞 도로. ⓒ프레시안(최형락) |
또 다시 거리로 내몰린 칼국수집 사장
하지만 이 씨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씨가 자리 잡은 '홍대 걷고 싶은 거리'는 마포구청에서 지하주차장과 지하상가를 만들기 위해 지하3층 규모의 대규모 개발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마포구청에서 7월 발표한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지하주차장 건설 민간투자사업 계획서'를 보면 공사비 556억 원을 들여 지하1층에 상가, 2층에 281대와 3층에 319대의 주차장을 만든다. 경의선 지하철역에서부터 서교로까지 약 520미터 거리다.
마포구청은 주차장 거리를 따라 당인리발전소까지 지하 주차장 및 상가 건설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한 마디로 홍대 일대가 모두 개발된다는 의미다.
이번 사업은 BTO(Build Transfer Operate·수익형 민자 사업) 방식으로 시설 준공과 동시에 시설물 소유권이 마포구청에 귀속되며 사업시행자에게 일정기간의 시설관리운영권을 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2월, 우선협상 대상자로 지정된 마포하이브로드파킹주식회사(포스코건설 출자회사)는 22년 동안 주차장 및 상가 운영권을 소유한다.
마포구청은 오는 8월부터 10월까지 실시계획 승인을 준비한 뒤 11월께 실시계획을 인가하고 고시한다는 계획이다. 12월에는 공사에 착공한다. 공사는 약 30개월 걸릴 예정이다.
계속 밀려나는 영세 상인들
마포구청이 표면에 내세우는 사업 배경은 두 가지다. △부족한 주차 공간과 △대규모 상권 조성이 그것. 지하에 주차장과 상가를 조성해 이를 일시에 해결하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실효성이다. 오진아 진보신당 마포구의원은 지하 주차장 건립을 두고 "홍익대 주변 부설 주차장이 모두 1856대를 수용할 수 있다"며 "하지만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피크타임인 저녁 8시나 오후 2시에 이곳 주차장의 점유율은 50%로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오진아 의원은 "불법 주차를 하는 이들은 주차비를 내기 싫어서 불법 주차를 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주차장이 건립된다고 해서 합법적인 장소에 주차를 할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주차장 시설 확충은 말이 안 된다는 것.
상가 건립을 두고도 반발 여론이 거세다. 최주근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지하상가 주차장 공사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단 한 차례의 공청회도 없이 주차장과 상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며 "포스코건설에서 건립하는 상가는 필히 대형 가맹점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결국 대형 가맹점들이 들어와 대규모의 상권이 형성되면 이곳 걷고 싶은 거리에서 10년 가까이 상권을 형성하며 장사를 해온 영세 상인들은 다른 곳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며 "이 곳에는 200여 개의 점포가 있는데,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장사를 할 수 있겠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최형락) |
어렵게 막창 집을 낸 이 씨는 이 곳에서 정착할 수 있을까
임대료 인상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홍대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박인수 씨는 "이 곳에 지하주차장과 대형 상권이 형성된다는 소식에 기존 땅값과 건물 값이 오르고 있다"며 "평당 1000만 원이면 팔리던 건물들이 이젠 1200만 원을 줘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대규모로 상가가 들어올 경우 이곳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될 것"이라며 "그러면 기존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리는 게 기정사실"이라고 밝혔다. 하루아침에 임대료를 곱 갑절로 올리는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것.
김상철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국장은 "홍대에 지하상권이 들어서면 결국 지상에 있는 건물 주인들도 임대료를 인상하려고 할 것"이라며 "대형 자본이 들어오면 영세 상인들은 결국 밀려나는 게 기정사실이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 및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유명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브랜드 점포들이 대거 젊은이 거리에 진출, 점포의 대형화, 전문화, 이미지화를 추구하며 중심상권에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기존 상권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소규모, 중·저가 상품을 취급하는 영세 상인들은 고가의 임대료를 감당키 어려워, 자연 도태적으로 중심상권에서 밀려났다. 강서북 지역에서 젊은 계층이 모이는 대표적인 상권인 홍대 상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과다하고 원칙과 기준이 없는 임대료 인상으로 많은 선의의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임대 시장의 교란을 초래하는 왜곡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막는 제도적 장치는 요원하다. 되레 관에서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추세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마포구청은 12월부터 공사를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어렵게 막창 집을 연 이영주 씨는 이곳에서 정착할 수 있을까.
(☞이어지는 기사 보기: "홍대 앞에는 왜 '부비부비' 클럽만 남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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