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쌍용차 파업…파업 67일에서 기억 멈춘 노동자

파업 중 자진 퇴거 했지만 홀로 '옥쇄 투쟁'…결국 정신병원에

반평생을 몸 바쳐 일해 온 직장에서 한순간에 쫓겨난다면 어떨까. 생활도 생활이지만 무엇보다 믿었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을 견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계영대(38) 씨도 마찬가지였다. 쌍용자동차에서 15년 동안 일해 온 노동자였다. 94년에 입사한 이후로 쭉 평택 공장에서 일해 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 12일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극도의 정서 불안이 이유였다. 그가 병원까지 입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계영대 씨의 사정을 형인 계영휘 씨와 쌍용차 노조 관계자들의 말을 통해 종합했다.

이야기는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옥쇄파업을 벌이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계영대 씨는 동료들과 함께 도장1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는 정리해고 대상자였다.

ⓒ프레시안(최형락)

"형, 미안해" 문자 남기고 파업 67일 만에 나온 계 씨

페인트, 시너 같은 발화성 물질이 가득한 도장 공장은 늘 폭발 위험성이 있었다. 담배조차 편히 피울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회사가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되레 도장 공장에 불을 낼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회자됐다. 회사에서 소화전까지 끊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계 씨는 옆 동료가 회사 '프락치'로 포섭돼 일부러 불을 내지 않을까 의심의 눈초리도 점점 커져갔다.

거기에다 각종 화공약품 냄새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만들었다. 곳곳에 배치된 요철은 걸어 다닐 때도 늘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회사의 선무방송도 계 씨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파업을 철회한 조합원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고 바로 귀가 시킬테니 파업을 풀라는 스피커 속 목소리는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7월 16일부터 끊긴 음식과 식수는 그를 육체적으로 힘들게 했다.

견디다 못한 계 씨는 결국 파업 67일째인 7월 27일 자진해서 공장을 나왔다. 함께 옥쇄 파업에 참여했던 자신의 친형에게 '형 미안해, 먼저 나갈께'라는 짧은 문자만 남기고 조용히 나왔다.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서에서는 쌍용자동차 관계자들이 계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경찰조사를 받은 뒤 계 씨는 회사 관계자들에게 넘겨졌다. 그들은 계 씨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했다.

회사 관계자들은 손배가압류 통지서를 흔들면서 명예퇴직금으로 월급 7개월 분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협박과 회유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 억류된 상태로 희망 퇴직서에 서명을 했다. 압박감에 못 이겨 서명은 했지만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파업 때는 복직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사인을 하는 순간 그런 희망조차도 날라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혼 후, 가족과도 연락도 끊고 혼자 두문불출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계 씨가 찾은 곳은 어머니 집이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고 했나. 이후 8월 중순께 아내와 이혼을 했다. 회사에서 건 손해배상 때문에 압류가 들어오니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계 씨는 이 때문에 상당히 힘들어했다.

결국 어머니집 근처에 전셋집을 구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계 씨는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어머니가 반찬 등을 준비해 계 씨의 집을 찾아가도 문을 잠근채 열어주지도 않았다. "나 혼자 살수있다. 신경쓰지 마라"는 말만 문을 마주하고 내던졌다. 몇 차례 자식을 찾은 어머니는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두문분출하며 1년 가까이 지냈다. 형인 계영휘 씨도 몇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던 지난 7월 12일, 밤 9시께 형은 동생인 계영대 씨가 술집에서 난동을 피우다 경찰에 연행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달려 가보니 동생이 수갑을 찬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랜 만에 보는 동생은 예전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항상 숫기가 없어 남 앞에서 말도 잘 못하던 동생이, 그리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형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눈도 못 마주치던 동생이 이날은 형에게 육두문자를 쓰며 안하무인으로 덤볐다. 자신을 형으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듯 했다.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계 씨의 형은 곧바로 안산병원에 동생을 입원시켰다. 담당의사는 6개월 입원을 진단했다.

여전히 파업 중인 계 씨

그간 한 번도 동생의 집을 가보지 못한 계영휘 씨는 동생을 입원시키고 그의 집을 찾았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동생이 이렇게 변했는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13일 동생의 집을 찾은 계 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트북이 거실에 2대, 안방에 4대 등 6대를 비롯해, 집 곳곳에는 비디오, 녹음기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베란다에는 대형 망원경이 설치돼 있었고 부엌에는 생수 1.8리터 80박스, 쌀 20Kg 4가마, 라면 50박스 등이 있었다.

▲ 계 씨의 거실에 놓여 있는 노트북과 카메라들. ⓒ쌍용자동차노동조합

냉장고에는 떡갈비 등 냉동식품 등이 빼곡히 차 있었다. 훈제로 된 닭도 30여 마리나 있었다. 또한 담배 50보루, 뜯지도 않은 속옷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모두가 집을 나가지 않고도 상당 기간 살 수 있는 물량이었다.

계 씨는 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열흘 넘게 밥을 먹지 않았다. 의사에게는 자신이 아직 쌍용자동차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의사는 파업스트레스증후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파업이 끝났지만 계영대 씨는 여전히 파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었다.

"쌍차는 아직 종결된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

형 계영휘 씨는 "동생은 파업 후 대인기피증을 심하게 앓았다"며 "솔직히 파업 과정에서 동료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으로 한 가정이, 한 개인이 망가져버렸다"며 "문제는 이런 이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파업에 참여한 뒤 해산한 쌍용차 노동자 중 내 동생처럼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는 사람들이 많다"며 "쌍용차는 아직 종결된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밝혔다.

이창근 쌍용자동차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지수는 갈수록 가속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대표적으로 우울증 및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자살시도나 생계비관형 사망자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계 씨의 방에 쌓여 있는 생수와 비상식량들. ⓒ쌍용자동차노동조합
이창근 정책실장은 "계영대 씨와 같은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며 또 다른 극단적 형태를 보이고 있는 사례"라며 "그동안 자살과 공황장애, 우울증으로 나타나던 패턴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창근 정책실장은 "해고가 장기화 되고 무급자 문제가 장기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방치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이와 같은 현상과 형태가 도처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오는 8월 5일이면 쌍용차 파업 77일 만에 극적 타결을 본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노사는 농성 참여 인원의 48%를 무급순환휴직에, 나머지 52%는 희망 퇴직하는 걸로 합의했었다. 양 측은 무급휴직자에 대해서 1년이 지난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뤄질 수 있도록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 무급순환유직자에 대해 노사 간 논의된 바는 전혀 없다. 제 2의, 제 3의 계영대 씨가 나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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