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일 파업 이후…자살과 고통의 은폐, 그리고 치유

[노동자에게 파업권을 許하라·④] 끝나지 않은 상처: 파업, 폭력, 그리고 상흔<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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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쌍용차 노동자의 정리해고 반대를 위한 파업은 뜨거운 여름 내내 77일간 계속되었다. 그동안 노동자와 가족 등 6명이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 뇌졸중,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었고, 파업 뒤에 노동자 2명이 자살을 시도했다. 심지어 진압에 참가했던 의경조차 9월 9일 "세상이 역겹다"라며 자살했다.

사례1: 노조 간부 부인 P씨(28세)의 자살

2009년 7월 20일 평택 공장에서 농성 파업 중이던 노조 간부 부인 P씨가 자택에서 자살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 관리인이 수차례 남편 파업을 말리라며 부인을 압박했고, 파업 농성장에 공권력이 투입되자 자살을 감행한 것이다.

이는 좌절과 항거의 이중적 의미를 띤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삶의 가치관, 근면하고 성실히 살면 언젠가 인간답게 살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 회사와 한국 경제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적절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 등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폭력적 경험은 P씨에게 심대한 상흔을 남겼을 것이다.

그 이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게다가 회사와 경찰의 대응 방식은 더욱 가혹한 폭력을 반복하는 셈이었다. 자신의 존재감, 친밀한 관계의 지속가능성이나 삶에 대한 믿음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절망감이 엄습했다. P씨는 '자살'을 통해 극도의 좌절감, 배신감과 분노를 드러냄과 동시에 회사와 국가에 항거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P. 레비가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고 싶은 근원적 자기존중감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남편 L씨는 "60여 일 간 투쟁 속에서도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믿고 따라주던 아내였습니다. 회사 쪽에서 소환장이며 손해배상청구 관련 서류고 하면서 회사 쪽 동료 가족을 만나 '그런 식으로 하면 남편 감옥 간다'는 얘기를 듣고는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부인 P씨가 자살하기 직전 "우리 집도 다 빼앗기고 오빠(남편)는 감옥에 가고 회사도 다시는 다닐 수 없게 된다는데 정말이냐"라고 울먹였다는 것이다. "밥 잘 먹고, 힘내라"라는 말이 마지막 통화였다.

사례2: 자살을 시도했던 C씨(39세)

"머리가 멍하고 심장이 두근거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선풍기 덜덜대는 소리도 헬기 소리같이 들리고 에어컨 소리도 헬기 소리처럼 들립니다. 밥맛도 모르고 잠도 새벽에 2~3번 정도 깨고 무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유서의 첫머리다. 파업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공권력의 폭력은 성실한 노동 속에 삶의 희망을 찾던 노동자에게 되돌리기 어려운 상흔을 남겼다. 두려움과 무력감이 몰려온다. 폭력적 경험이 일상생활에 반복 재현된다. '정상적' 생활이 어렵다. 게다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동지를 팔아먹은 나쁜 놈"이기에 죄책감과 수치심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다.

조사하던 형사가 "살려준다", "복직 시켜준다", "너만큼은 내가 빼줄 수 있다"라는 말로 꼬드기는 바람에 속아서 "동료를 팔아먹었다". 다시 말해 "(동료가) 대포 쏘는 걸 보지도 않은 내가 보았다는 거짓 진술을 한 것"이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고통을 참다못해 8월 20일 자살을 결행하기 직전에 쓴 유서에서 "내 진술서에 3명의 진술은 거짓 진술"이라 고백했다.

사례3: 파업 후 자살을 시도한 L씨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77일 파업에 참여한 L씨는 9월 14일 새벽 2시경 자택 2층 베란다에서 고무호스에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했다. 파업이 끝난 뒤 이어지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괴로웠던 그는 동료,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입에서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갈수록 말이 없어졌다.

"왜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이렇게 싸워야 하는지. 같은 노동자끼리 왜 새총을 겨눠야 하는지. 아무리 그 사람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지만 너무 비참했고 감당이 안 됐어요. 같이 일하던 사람이 적이 된다는 게……. 그래도 같이 살자고 열심히 싸웠죠. 마음을 다치고 난 순간부터 모든 걸 혼자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오토바이 소리와 냉장고 소리는 파업 당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댔던 경찰 헬기와 회사 측의 선무방송에 비하면 사람의 신경을 덜 자극했지만 그조차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잠이 안 와 술 먹고 잘 때도 있었어요.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도 환청이 들려 잠에서 깼어요.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하룻밤을 꼬박 새는 거죠. 낮에 꾸벅 꾸벅 졸 때가 있는데 그때 단잠을 자는 거죠. 혼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죠. 집에 냉장고 소리가 거슬려 꺼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내가 냉장고를 밖에다 내놓기도 했었어요. 가는 귀 먹었다고 하나? 사람 얘기가 잘 안 들렸어요. 얘기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는 데도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밖에 안 들리더라고요. 비오는 날 빗소리도 신경 쓰이고……."

L씨는 15일간 집을 나왔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한 번도 욕을 한 적이 없었던 L씨가 어느 날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아이들에게 한 번도 욕을 한 적이 없었는데……. 한 번 말을 했는데 아이들이 안 듣고 방안을 돌아다니니까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오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내 자신의 모습을 참지 못해서 집을 나와 버렸어요.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아빠 다시는 욕하지 않을게'라며 약속했죠. 답답한 날의 연속이었죠."

고통의 은폐 - 강자와의 동일시

1930년대의 심리학자들은 가정 폭력에 반복 노출되었던 아동들이 도망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적해 싸울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공격자와의 동일시'를 하는 걸 발견했다. 자신을 공격했던 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숙이고 마치 공동운명체가 된 듯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 개인의 행위에서만이 아니라 한 조직 또는 한 나라가 행위하는 과정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당사자가 직접적으로 폭력적 공격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동일시는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를 '강자와의 동일시'라 부른다.

'살인'을 뜻하는 정리해고, 그 이후 다양하면서도 막대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노동자와 가족들은 두려움과 무력감에 젖어 고통스런 삶을 살면서도 모두가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자살은 한편으로 삶의 절망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의미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자신의 존재, 즉 자신이 자기 운명의 주인임을 새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극단적인 형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부 사람들은 더 이상 공장 노동 또는 자본가 통제 아래의 노동을 거부하면서 다른 삶의 활동을 찾아 나섰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노동자'로서의 삶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박수정 작가에 따르면(2010. 3. 15. <참세상>), 파업 종료 이후 쌍용차 공장 컨베이어 라인의 가동률은 예전의 60~80퍼센트 수준에서 무려 98퍼센트 수준까지 올라갔다. 라인이 거의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 강도도 높아졌는데, 예전엔 1시간에 17대를 조립했으나 이제는 22대를 조립할 정도다. 예전엔 차 한 대 조립하는 데 3분40초가 걸렸다면 지금은 2분40초만에 끝낸다. 숨 돌릴 틈, 여유 시간이 사라졌다. 퇴근 후엔 파김치가 된다.

이렇게 자본은 산 노동의 싱싱한 생명력을 무한정 빨아들인다. 그래야 자신의 몸집을 불리기 때문이다. 최후의 빈틈까지도 메워나가면서 산 노동을 옹골차게 뽑아간다. 이런 조건 속에서 산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저항하거나 떠나거나' 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저항해봐야 패배'라는 공식이 처절한 교훈이 되어 머리 위에 걸려 있다. 그렇다고 '떠나봐야 별 수는 없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는 '적응과 순응'만이 살 길이다. '강자와의 동일시'는 이렇게 해서 발생한다. 밉긴 하지만 내가 강자의 지휘와 명령에 복종해야지만 내 생존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강자와의 동일시'가 이뤄지면 이제 노동자 스스로가 강자처럼 느끼고 강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몸이 아파도 스스로에게 "아프면 안 돼. 아프다고 결근하면 가차 없이 잘려!"라고 명령한다.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만 삭인다.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쉿!' 숨을 죽여 가며 부지런히 일만 하는 기계(로봇)가 되어야 한다.

'자기 배신'이 일어난다. 자기가 자신에게 강자 행세를 하며 일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동시에 자신이 약자가 되어 말없이 순종적으로 일만 한다. '알아서 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이 다쳐도 다치지 않은 것처럼,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다.'며 노동의욕과 노동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 옆의 동료들이 굼뜨게 일을 하면 "그렇게 일하다간 형편없는 점수를 받을 걸. 조심해!"라며 경고까지 한다. 자신보다 나약한 타자에게 마침내 강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옆 사람조차 '알아서 기게'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 내면의 두려움은 '강자와의 동일시'로 변형되고 이것은 또다시 자기 내면의 두려움을 은폐하면서도 타인에게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전염시킨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인간관계는 '불신'으로 변한다. 기업도, 정부도, 심지어 노조도, 동료도 믿기 어렵다. 충분히 속았고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믿을 놈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의 생존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기가 믿는 자신마저도 이미 원래의 자신이 아니다. 일하는 기계에 불과한 존재로 변했기 때문이다. 일반 기계와 다른 점은 항상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생존의 두려움'이야말로 자본이 산 노동을 효과적으로 흡입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된다. 노동자들이 생존의 두려움에 절어 '눈가리개'를 쓴 채 오로지 노동에만 몰입할 때 자본은 가장 큰 이윤을 길어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돈벌이 경제는 '두려움의 사회'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내며 그에 기초해 성장하고 발전하려 한다.

치유의 끈 - 사랑과 연대

<트라우마>의 저자 J. 허먼은 심대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 PTSD를 보이는 경우, 올바른 치유는 크게 3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것은 △안전과 보호 △기억과 애도 △연결의 복구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우선적으로 '안전과 보호'는 일단 상처받은 자들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함을 뜻한다. 예컨대, 노동 관련 단체나 의사들이 PTSD에 노출된 사람들을 인간적인 공간으로 초대해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실제로 노동건강연대는 2009년 9월 5일부터 파업 참가 조합원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집단치유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스트레스 감소, 이완 프로그램, 웃음치료, 마술치료 등 심리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평택시 통복동 골목의 모퉁이 건물 2층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특별위원회(정특위) 사무실은 9월 초 일요일 아침 9시부터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참의료실천청년한의사협회, 민중과함께하는한의계진료모임의 한의사들이 광양과 서울에서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평택으로 가 주말 무료 진료소를 차린 것이다.

다음 단계는 '기억과 애도'다. 안전한 보호막을 느끼면서 환자들은 자신의 폭력적 경험을 차분하게 기억하고 자신의 상처를 하나씩 짚어낼 수 있게 된다.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해서 보는 눈도 기르게 된다. 가족과 함께 진료소를 찾은 A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파업기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경찰이 서 있기만 했는데도 화가 났으니까요. 5살짜리 현아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쌍용자동차 기사만 나오면 '모두 봐야 한다'라며 TV로 온 가족을 불러 모았대요. 파업 기간 동안 할머니 댁에 있었는데 할머니, 고모 모두 불러내서 안달을 했대요. 정신적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애들한테 미안하죠. 성격도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짜증을 많이 내요. 가끔씩 변비도……."

한의사가 손에 침을 놓자 목 놓아 울어버린 6살짜리 주강이도 파업기간 뒤에 성격이 예민해졌다.

"진료를 받아보니 주강이가 심장과 담이 안 좋대요. 예전에 배 아프다고 한 적이 없는데, 경찰 진압을 본 뒤에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어요. 국수, 과자를 먹어도 '배 아프다'고 하고. 예민해졌죠. 충격을 받아서 심장이 안 좋아졌다고 하네요."

진료를 받은 노동자와 가족의 대부분은 분노, 좌절, 공포, 불안, 초조, 불면증, 우울증 등을 앓고 있다.

기억을 '객관화'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노동자역사 한내가 함께 펴낸 77일 옥쇄파업 투쟁백서 <해고는 살인이다>가 일례다. 나아가 77일간 연두색 티셔츠를 입고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로 뭉쳐 투쟁한 가족들은 소설가 홍새라 씨와 함께 <연두색 여름 -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 이야기>를 엮었다.

인터넷 언론 <미디어충청>에서는 파업 투쟁 과정을 <77일>이라는 사진 화보집으로 엮어냈다. 또 따미픽처스에서는 <저 달이 차기 전에>라는 다큐 영화를 만들어 상영했고, 미행 등은 <당신과 나의 전쟁>이라는 다큐 영화를 만들었다.

파업 투쟁으로 옥에 갇힌 한상균 지부장(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은 9월 16일의 옥중편지에서 "어떻게 해야만 동지들의 가슴에 박힌 대못을 뽑아낼 수 있을까 각인하고 있습니다. 힘이 들수록 체념하지 마시고 질기게 이겨냅시다. 작은 문제라도 서로 보듬어주면서 뜨거운 동지애로 함께 한다면 아무리 억압하더라도 반드시 현장으로 복귀할 것이고 잘 견디어 준 가족들 손잡고 고난의 시간들을 회상할 날들이 멀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동지들! 쌍용차 투쟁 함께 하러 왔다가 구속된 동지들이 오히려 쌍용차지부를 걱정하며 우리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결단하지 못하고 있었던 조합원을 이끌어 주었던 위대한 우리들의 아내 가족대책위 동지들이 어머니의 힘을 다시금 모으면서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지겠다고 힘내라고 합니다"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위로와 격려를 한다.

치유는 마침내 '연결의 복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진전된다.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들은 단순한 의학 전문가가 아니라 인간적인 연결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의사들이 진료를 하는 날 노동자와 가족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들은 한의사 앞에서 "쌍용차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움을 느꼈다. 정재은 기자는 "손목의 맥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상대방의 손가락 끝에 닿아 사람 간의 또 다른 소통을 만들어냈듯이, '연대'가 서로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2009. 10. 19. <미디어충청>)라고 썼다.

그렇다. 인간적 연결의 복구는 진정성을 갖고 공감하며 함께 삶의 과정에 동참하려는 이들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기초는 역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폭력 앞의 패배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희망의 철학'이 새삼 부각된다.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희망을 버리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희망을 절대 버리지 말아야한다. 우리에게 닥친 고통과 난관, 가슴 한편의 분노와 절망을 이겨내야 한다. (…) 지금은 암흑의 터널을 걸어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동지들과 손을 잡고 부단히 가다보면 밝은 빛이 보일 것이라 확신한다."(이영호 정특위 의장, 2009. 11. 27. <참세상>)

한편, 정리해고 된 한 노동자는 "예전 함께 일했던 비정규직 동료들이 해고될 때 함께 싸우지 못해 이제 우리들 차례가 되었다"라며 지난 과오를 뒤늦게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무급휴직'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해고된 동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하는 노동자에게서 노동자의 사상, 연대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 노동자의 찢겨진 가슴은 결코 회사나 국가가 치유해줄 수 없다. 노동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연대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깊은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의 치유책은 진실한 사랑과 연대뿐이다. 바로 이것이, 폭력 뒤에 좌절을 겪으며 PTSD를 앓고 있는 노동자나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이런 화두도 던지고 있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 자체가 이미 폭력일 수 있다. 그런 운명을 갖게 된 것 또한 국가와 자본이 함께 행사한 폭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임금제도 자체가 폭력을 내장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적 선택은 폭력을 내장한 임금제도 속에서 비교적 나은 삶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폭력이 없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갈림길 위에 있다. 우리 아이들 세대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상처투성이인 채로 또다시 상처받을 걸 두려워하면서 그저 임금노예로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삶의 구조를 근원적으로 바꾸어낼 것인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시급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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