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지금 자유주의정치세력들에 의해 지배되는 '반MB의 정치'가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먹고 사는 정치, 즉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있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이것은 자본주의사회의 핵심적인 정치원리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망자 노무현을 상품으로 삼아 정치적 재기를 꿈꾸는 자들의 행태는 그 전형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의 역사적 종말과 맞물린 노무현의 죽음이 지니는 의미를 진정으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것은 망자를 또 한 번 더 죽이는 것이 될 것임을 환기시키는 것은("한편의 '희극'이 '비극'으로 끝나다", 2009.05.26) 지금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은 망자 노무현이 "이제 나를 버리라"고 한 최후의 말을 그냥 흘려버리며 자신들의 군주를 또 한 번 소극(笑劇)의 주연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혹시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그 의원을 하면서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997년 집권한 이후, 그리고 노무현 정권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보인 정치행태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삶'을 재구성하기 위한 투쟁의 끝자락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들은 진정 대중의 고통스런 삶을 자기 것으로 삼아 그들과 함께 하고 눈물을 흘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진보좌파'를 자임하는 정당들이 '반신자유주의전선'을 따라 '진보좌파연대'를 건설, 강화하기보다 아직도 '반MB민주연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반신자유주의연대가 추상적인 주장이라는 것에 대해-이 시대 민주연대는 '반신자유주의연대'", 2008.12.09), '반신자유주의연대'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연합 바로 그 자체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문제들을 해소, 극복하고자 하는 크고 작은 모든 움직임 자체가 '더 많은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정치행위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은 것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자유주의정치세력들과 어떻게 '반MB연대'를 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어찌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는데 일조하겠다는 진보좌파가 '대중의 삶과 자기지배 실현', 즉 민주주의를 담보하면서까지 그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려 하는지 그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진정 자유주의정치세력과 그들의 이데올로그들이 설파하고 있는 이분법의 논리, 즉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사고를 믿기에 그러시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한편으로 '정치'는 그들 신자유주의자들과 함께 하고, '신자유주의 문제'는 그저 그들과 협상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정책쯤으로 생각하기에 그런 것입니까. 단언컨대, 그러한 이분법이 보수정치(학)의 기본발상이라는 점에서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이론적, 실천적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결국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서 단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진정 고통 받는 대중의 대표자이기를 원한다면, 자유주의자들의 헤게모니 안에 있던 '5+4 모임'에 참여하여 떡고물이라도 챙기려다 자존을 짓밟히고 수모를 당한 것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당하고 있는 것을 그저 정치를 하다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자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진보좌파의 자립을 희망하는 많은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그렇습니다.
진정 스스로를 진보좌파라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역사적 위상과 그 동안 걸어온 궤적을 다시 한 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비록 많은 오류와 한계를 노정하고 그로 인해 아직도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이 땅의 진보좌파는 군부파시즘의 지배이후 그 어떤 세력보다 민주주의를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 헌신해 온 세력이었습니다. 그 누가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 시대에 대중의 삶의 고통에 눈을 돌리고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한 진보좌파가 없었다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직도 수구정치세력이나 보수자유주의정치세력 가운데도 그 당시의 '진보좌파의 경력'을 매개로 권력의 상층부에서 단맛을 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그것을 반증해 주는 것 아닙니까.
돌이켜 보면, 자유주의 좌파의 수장 김대중이 71년 대선을 앞두고 '전태일의 뜻을 실현하겠다'고 말하였지만, 진정 그들이 집권한 이후의 실상은 어땠습니까. 그들의 집권 이후 전태일이 함께 하고자 한 그 '시다'의 후예들, 즉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어떤 몰골을 하고 있었으며 71년 광주대단지사건의 후예들인 철거민들은 또 어떤 삶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 시기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감옥에 갇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또 얼마나 많은 가난한 이들이 삶의 근거지를 빼앗겼습니까. 진정 그러한 현실이 지금 수구 이명박정권의 책임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지금 그들은 '선거연대'를 하자고 하면서도 과거 자신들의 정책에 대해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이명박 정권이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의 성과를 파괴하고 있다며 '반MB몰이'에만 거품을 뭅니다. 대중이 쌓아올린 그 민주주의의 토양을 자신들 스스로가 해체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된 망자 노무현이 남긴 말, 즉 '조직화된 시민만이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언술이 결국 집권 이후 대중들을 객체화시킨 자신의 정치행보에 대한 '피눈물의 자기비판'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 버립니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이벤트를 열어 '시민주권' 운운하면서도 그 시민에게 행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라는 양식 있는 자들의 최소한의 지적조차도 그저 현실정치를 모르는 몽상가들의 비난쯤으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생각하는 시민은, 그들이 토대를 놓은 '삼성공화국'의 멤버들, 즉 주체할 수 없는 재산과 권력을 지닌 '특별시민들'이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들이 신자유주의가 자신들이 그토록 큰 성과로 자랑하는 남북관계의 단절을 가져온 중대 원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그로 인한 대중의 고통이 '북한 퍼주기'라는 수구정치세력의 데마고기에 눈을 돌리게 한 결정적 원인이라는 점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왜 지금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 원인에 대해 사유할 수 없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식하고 인정할 경우,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그들의 오랜 궤변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고 그 순간 자신들의 정치적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집착하는 유일한 해소책은 그 모든 탓을 '이명박 정권의 비합리성과 대북호전성'으로 돌리는 것뿐입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사화관계들 속에서 객관화시키기보다 오직 거울 속에 비친 상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이들이, 그리하여 자신을 성찰할 수 없는 자들이 어찌 저 밑바닥 대중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이 시대의 정치를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또 이들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시민사회의 이런저런 조직들, 이른바 명망가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기본적으로 70년대식 재야정치를 복사하고 있는 그 분들은 그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항상 개혁자유주의자들의 후원세력으로 존재하였기에 '민주주의는 외부의 반민주적인 적에 의해 죽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내부에서 민주주의의 완성을 말하는 자들에 의해 죽는다.'는 언술의 의미를 자기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자기 자신들을 향한 절절한 비판이라는 것을 숙고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이미 보수정치세력, 보수주의자가 되어 있는 현실을 모르고 민주주의를 위한 자신들의 노력과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일 뿐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이런 분들이 주도하는 '5+4 모임'이 어떻게 새로운 정치의 동력을, 그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5+4 모임', 아니 지금 '4+4 모임'은 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정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을 지닌 분들, 혹은 그들로 상징되는 조직들이 선거 시기에 자신들의 몸값을 가늠해 보기 위해 만든, 이른바 중립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는 내부협의체 이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안 되면 말고!'라는 구호가 이 조직의 기본모토라는 세간의 풍자를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과 비교하여 진보좌파를 자임하는 정치세력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자유주의자들이 도대체 대중과 함께 할 그 어떤 새로운 헤게모니플랜을 제시하고 있기에 그렇게 그들을 못 잊어 하는 것입니까. 역사상 초유의 다수의석을 가지고도 개혁입법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그들이, 그리하여 그 변명으로 수구정치세력들을 가리키며 '정치에는 상대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던 그들이, 정작 '정치의 주인'이라고 말하였던 그 대중들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대중의 한 표를 얻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곤 하였지만, 이른바 주권자로서의 그 대중보다는 수구정치세력을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해 줄 '정치적 파트너'로 간주해 왔고, 그러한 인식과 행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단지 한 표가 중요한 그들은 과거를 반성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진보좌파세력들이 대중의 삶의 개선을 위해 만든 정책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베끼고 변조합니다. 나아가 '노무현의 적자'라는 경기도의 한 예비 도지사후보는 같은 지역 '진보교육감'을 만나 그와 함께 일해 보는 것이 영광이라는 립서비스를 던집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들도 포함된 '진보의 범주'에 진보좌파를 집어넣고 마치 진보좌파가 분열되고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아 자신들이 실패한 것인 양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지금 우리정치는 노무현 대통령이 좌절했던 그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역설하기도 합니다. 그리곤 이렇게 대미를 장식합니다. "국민참여당의 탄생이 진보진영 분열의 끝이자 연대와 통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요. 어디선가 들었던, 아주 낯익은 언사 아니던가요.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에 '구시대를 마무리하고 새 시대를 여는 세력'이라고 자신들을 규정했던 그 언술이 상기되어 겹쳐지며 현기증이 밀려오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아직도 자신들을 '민주주의와 진보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생기발랄함'은, 아니 이 얄팍하고 명민한 정치적 언술과 행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어떻게 독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언술을 접하면서 진정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노무현정권 시기, 그가 진보좌파정치세력에 모멸감을 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기에, 이제 그의 그런 말은 '동네 개 짓는 소리'려니 하며 무시하는 것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왜 '반MB연대'에 미련을 두고, 아니 목을 매고 진보좌파정치에게 주어진 역사적 임무를 이미 파산된 보수자유주의자들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아직도 그런 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업자득 아닙니까.
기우에서 말합니다. 그들과 '선거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핵심은 애초 그들의 헤게모니플랜의 상징이었던 '비판적 지지'를 이제 그 진짜 주인인 보수자유주의정치세력에게,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그토록 권력에 목말라하는 그들이, 진보좌파의 도움이 없으면 그 알량한 서울시장, 경기도 도지사 하나 취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그들이, 이러한 객관적인 현실을 깨닫고 진보좌파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것인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난 집권 시기 신자유주의 우파인 수구정치세력들과 연대해 이 사회를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천국, 이른바 '삼성공화국'으로 만든 그들이 진정 진보좌파세력들과 연대할 수 있는지를 그들의 입으로 말하게 하고 그들의 발로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진정성을 대중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만이 지금 대중을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도상에서 진보좌파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선택이며, 나아가 그토록 '진보'이고 싶어 하는 그들 자유주의정치세력에게 '진보'로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역사적 임무가 마감된 그들의 논리를 가지고 그들의 사랑을 구하고, 겉으로는 그들과 단절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옆에서 미련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고통 받는 대중의 저 건너편에서 그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을 뿐인데, 왜 그런 추한 몰골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그들이 진보좌파의 존재와 대의, 최소한의 연대의 요구조차 거절하고 있는데, 이제는 혼자 행복하게 잘 살아보라고 기원하며 떠나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 정도 짝사랑을 했는데, 떠나보낸다고 그 누가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어림잡아 4반세기 이상을 그렇게 흠모해 왔는데요.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움으로,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정치에서의 짝사랑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추해진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입니까. 그 추함이 진보좌파의 지도자들로서 간주되고 있는 당신들만이 아니라, 결국 당신들이 대변한다는 그 대중의 존재와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정말 모르시는 것입니까. 그렇기에 지금은 저들이 섬뜩해 할 만큼 냉정하게, 자존과 품위를 지키면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진보좌파가 취해야 할 행보라는 것을 진정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까.
그래서 묻습니다. 혹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이 진보좌파에게 돌아올 것이 두렵습니까. '캐스팅보트를 쥔 너희가 후보단일화에만 동조했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라는, 이제는 너무 들어서 물릴 정도인 그 소리가 그렇게 고민됩니까. 하지만 그 비난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가슴에 손을 얻고 차분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비난은 자유주의정치세력이나 그들의 이데올로그들이 하는 말 아닙니까.
이제 거리에 나서면 밟힐 정도가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용산에서 학살당한 버림받은 이들이, 구조조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쌍용차노동자들이, 오늘도 이동권을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 등 사회정치적 약자들이, '삼성공화국'으로부터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저 백혈병의 여성노동자들이, 그리고 시퍼런 삽질에 여린 속살을 드러내는 푸르른 4대강이, 그래도 자신들과 함께 해 온 진보좌파를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비난하겠습니까. 진보좌파정치의 존재이유이기도 한 그들이 '5+4 모임'을 좌초시켰다고 지금 진보좌파를 성토하기라도 하던가요. 그렇기에 만일 그러한 시대착오적 비난 때문에 망설이고 눈치를 본다면, 그것은 오직 자본과 권력만이 존재 이유를 가진 이 신자유주의 지구화시대에, 진보좌파를 자임하면서도 대중의 고통을 좀 더 자기화하여 나누지 못한 치부를 가리는 것 이상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이 아니라 오히려 선거 후를 생각하면 더욱 두렵습니다. 왜냐구요.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은 것에 대해, 그리하여 노동자, 대중의 삶에 고통을 준 것에 대해 반성하라는 요구를 '중앙정치의 의제'와 '지방정치의 의제'가 다르다는 얄팍한 궤변으로 거부한 보수자유주의자들이 선거가 끝나면 또 어떻게 나올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진정 한국사회에서 중앙의 의제와 분리된, 그 어떤 지방의 독자적인 의제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입니까. '영/호남의 지역주의'를 말하니까 진정 영/호남이라는 그 두 지역이 마치 어떤 독자적인 물적 구조와 사회관계를, 정치시스템을 지니고 있는 그런 지역들이라고 믿는 것입니까.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까.
진정 신자유주의는 추상적인 거대담론이기에 중앙정치와 관계된 의제들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키는 노동자구조조정, 생태파괴, 농촌몰락,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생기를 말살하는 경쟁교육, 신자유주의 버블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되는 부동산정책, 그리고 문화다양성 파괴 등이 정말 중앙정치에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그 수탈과 억압, 배제와 차별이 이른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와 수도권'에만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로 인해 이미 다른 지역들이 내부식민지(internal colony)로 전락했다는 것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그 '반MB연대'가 무엇이기에 거기에 그렇게 미련을 두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스스로 진보좌파정치 자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아직도 어느 시사평론가가 '양념정치인'이라고 딱지를 붙여 내심 화가 납니까. 그리하여 소수정당으로서 비애를 느낍니까. 그래서 만일 '반MB연대'를 하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까.
하지만 원래 진보좌파는 양념정치를 하는 세력이고 그렇기에 문제의 핵심은 무엇을 위한, 누구의 양념이 되느냐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수구, 보수자유주의정치세력들은 권력을 잡아 자본과 자신의 배를 살찌우는 세력들이기에 양념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입니다. 진보좌파정치는 어떻습니까. 고통 받는 대중을 중심에 놓고 '더 많은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양념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 더 나아가 결국 없어도 그만인 고명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진정 저들과 다른 '진보좌파정치'만이 지니고 있는, 지닐 수 있는 힘 아니었던가요.
진보좌파가 멋있게, 돋보이게 해야 할 대상은 배제와 차별, 억압과 수탈을 받고 있는 대중들입니다. 그들이 먹는, 그들의 땀과 눈물이 섞인 수제비, 칼국수, 비빔밥 한 그릇에, 그리고 삼겹살 한 점을 위한 양념, 고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양념이 되고 고명이 된다 한들, 그 누가 무엇이라 비아냥거리든 뭐 그리 큰 문제란 말입니까. 오히려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 아닙니까.
미래가 불투명하여 그렇게 할 자신이 없기에 주저하는 것입니까.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으면서 고민하고 성찰해 왔습니까. 그리하여 이제 남북문제를 좀 더 객관화시켜 볼 수 있게 되었고 젠더, 환경생태, 평화, 장애인 등 소수자, 이주노동자 문제 등이 바로 진보좌파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자기화하는 단계에 들어서 있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에 대한 발본적인 성찰도 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수구정치세력들이, 보수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이 문제들을 진정 자신의 문제로 삼아 성찰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아직 더 많은 사색과 성찰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가요. 물론 더 깊은 사색과 성찰, 논의는 계속 되어야 하지만, 이제는 그와 더불어 진보좌파의 정치적 결단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의 성찰을 근거로 그것에 동의하는 모든 진보좌파세력이 바로 '삶의 정치'를 꾸려야 할 때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러한 삶의 정치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연대와 결의, 서로간의 깊은 이해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씨앗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하는 여성을 이중, 삼중으로 착취하고 젊은이들의 삶과 꿈을 빼앗고 환경과 생태를 파괴하는, 나아가 인간의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저 거대자본과 권력의 지배체제에 맞서 '더 많은 민주주의 사회', 따라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보좌파의 꿈이고 그것을 위해 변함없이 걸어갈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호소해야 합니다.
몇 년 후에 집권하겠다는 '장밋빛 꿈'을 말하기보다 오히려 그 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크고 작은 힘을 보태 함께 갈 사람들의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인간 존재와 호혜적 관계의 구축을 정치의 전략적 과제로 삼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그런 힘의 결집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진심으로 속삭이고 외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익숙한 삶의 방식들과 거리를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짧지 않은 금단현상, 아니 더 심한 고통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성세대는 거름이 될 뿐, 그 직접적인 성과의 수혜를 받지 못할 수도 있음 또한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진보좌파정치세력이 이런저런 고통에 처한 대중에게 말할 수 있는 대안이자 해법입니다.
그렇기에 지방선거 한 달이 채 안 남은 지금, 아직도 '반MB전선'에 대한 '짝사랑', '혹시나 하는 눈치 보기'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한 '진보좌파의 대중적 지도자들'에게 또 다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 진보좌파의 지도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되고 싶다면,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진보좌파연대의 길에 동참해 달라고요. 아니 그것을 추동하는데 일익을 담당해 달라고요. 이것이 필부인 저만의 바램입니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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