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중원시민분향소 옆 유족이 머물던 천막이 강제 철거됐다. 고 문중원 기수가 조교사의 부정 경마 지시와 공기업 한국마사회의 불공정한 마방배정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91일이 되는 날이었다. 문 기수 부인 오은주 씨는 철거에 저항한 뒤 탈진해 119로 후송됐다. 유족과 함께 천막을 지키던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부상을 입어 응급실로 실려 갔다.
종로구청은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 위치한 문중원분향소 천막을 포함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탈북단체 등의 천막 7개 동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진행했다. 구청 직원과 용역이 문중원분향소 천막을 철거하려 하자 다수 시민이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하고, 5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문중원시민대책위는 이번 철거에는 청와대의 뜻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시민대책위 관계자는 철거 결정에 항의하자 "종로구청 관계자가 '청와대가 철거하라는 입장이 강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구청 직원과 용역 300여 명, 경찰 12개 중대 동원된 문중원 천막 철거
유족과 시민대책위 등은 철거 전날 분향소 천막과 옆에 친 텐트에서 밤을 샜다. 철거 전 약식집회에서 장인 오준식 씨는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한잠 못 자던 딸이 눈을 붙이다 차 소리가 날 때마다 눈을 벌떡 뜨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살이 떨렸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중원이의 죽음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이날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정말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상진 문중원열사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산재로 2400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죽고 한해에 자살로 죽는 노동자가 1만 3000명"이라며 "자살자 중 70%는 직장 내 갑질이나 스트레스로 돌아가시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이 죽음은 무섭지 않나"라고 물으며 "이런 죽음을 막기 위해 차린 분향소를 문재인 정부가 침탈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전 7시 10분경 300여 명의 구청 직원과 용역으로 구성된 철거반이 하얀 헬멧과 목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20대로 보이는 앳된 얼굴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철거반이 나타나자 천막을 지키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천막 주위에 팔짱을 끼고 둘러앉았다. 천막 안에는 유족과 김미숙 이사장이 들어가 앉았다. 12개 중대가 투입된 경찰이 그 주변을 에워쌌다.
철거반이 천막에 도착하자 경찰이 길을 텄다. 철거반은 팔짱을 낀 시민을 뚫고 들어가 유족이 앉아있는 천막을 잡아 뜯었다. 천막 안에서는 유족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과정에서 철거반에 의해 시민 한 명이 바닥에 대자로 내동댕이쳐져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등 부상자가 발생했다.
오전 9시 30분경 문중원분향소 천막이 철거됐다. 부인 오은주 씨는 남편의 시신이 실린 운구차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오열했다.
"며칠 있으면 옮기든지 대책을 마련할 거라고 했는데도"
잠시 뒤 천막이 철거된 자리에서 시민대책위가 문재인 정부의 천막 철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과 함께 서있던 오은주 씨는 곧 탈진해 응급실로 실려 갔다. 아버지 문군옥 씨는 "저희가 사정을 했다"며 "며칠 있으면 옮기든지 대책을 마련할 테니 그러지 말아달라고 했는데도 이렇게 끌어냈다"며 울분을 토했다.
시민대책위는 "정부는 그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그 어떤 진지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며 "유족의 애끓는 호소에 강제 철거로 답하는 정권은 더 이상 국민을 위한 정권이 아니고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문 기수의 헛상여를 메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한편, 이날 생전 문 기수가 가입했던 공공운수노조 임원 8명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사무실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이 위원장은 2017년 총리로 일하던 당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공공운수노조와의 간담회에서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죽음에 대해 "한국마사회 문제를 직접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의 발언 뒤에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3년여 간 3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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