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의 우익 활동가 찰리 커크(31)를 암살한 혐의를 받는 타일러 로빈슨(22)이 커크가 증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커크 살해를 계기로 좌파몰이에 치중하며 위협을 느낀 시민단체들은 변호사 고용 등 대비에 나섰다.
16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미 CNN 방송 등을 보면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기소 문서엔 용의자 로빈슨이 동거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범행 동기를 시사하는 내용이 담겼다.
용의자는 총격 직후 동거인에게 "하던 일을 멈추고 내 키보드 밑을 확인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 장소엔 "찰리 커크를 제거할 기회가 있고 그걸 잡겠다"는 내용의 쪽지가 있었다고 한다. 쪽지를 확인한 동거인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네가 그걸(커크 암살) 한 사람은 아니지?"라고 묻자 용의자는 "나야. 미안해"라고 답하기도 했다.
동거인이 이어 문자 메시지를 통해 왜 범행을 저질렀냐고 묻자 용의자는 "그(커크)의 증오에 질렸다. 어떤 증오는 대화로 해결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범행을 언제부터 계획했냐는 질문엔 "일주일이 좀 넘은 것 같다"고 답했다. 용의자는 그러면서 동거인에게 이 대화가 담긴 문자 메시지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문서에 따르면 용의자는 부모에게 커크가 "너무 많은 혐오를 퍼뜨린다"고 비판했다. 용의자의 어머니는 수사관들에게 용의자가 최근 1년여간 "더 정치적이 됐고 좌파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 인권 지향적이 됐다"고 진술했다. 용의자는 부모와 정치적 견해가 달랐고 동거인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아버지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열렬한 마가(MAGA·트럼프 열성 지지층)"가 됐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다만 용의자는 특정 정당 소속은 아니었다.
기소 문서에 의하면 용의자는 사건 발생 약 33시간 만에 자수했는데 이는 가족의 설득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용의자의 어머니가 뉴스에 나온 보안카메라 이미지를 통해 아들을 알아봤고 용의자의 아버지는 경찰이 묘사한 범행 도구가 "아들에게 선물로 준 소총과 일치한다"고 증언했다. 용의자는 부모와의 대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암시를 남겼고 부모는 은퇴한 부보안관 친구와 함께 용의자가 자수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제프 그레이 유타 카운티 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커크 살해에 사용된 총기 방아쇠에서 용의자의 DN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그레이 검사는 용의자가 "찰리 커크의 정치적 표현을 이유로 그를 표적으로 삼았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그레이 검사는 용의자에 중대 살인, 총기 발사 중범죄, 사법 방해, 증인 매수 등 혐의를 적용했고 사형을 구형하겠다고 했다. 그는 기소 전 주지사 사무실 및 트럼프 행정부와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사형 구형 방침은 자신의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용의자의 어머니가 용의자가 "성전환 중"인 동거인과 사귀었다고 진술한 가운데 그레이 검사는 회견에서 취재진에 트랜스젠더 문제가 이번 사건과 직접 연관이 있냐는 질문을 받자 기소장에 "대부분 제시돼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사건 당시 커크는 트랜스젠더가 벌인 총격 사건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고 한다.
대학에 보수 학생 조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 커크는 지난 10일 유타주 유타밸리대 행사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는 다양성 프로그램 및 트랜스젠더 권리에 반대했고 총기 소유를 지지하며 보수적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이를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표현해 비판 또한 받았다.
커크는 지난달 미 유명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결혼을 발표하자 "남편에게 복종하라. 당신은 책임자가 아니다" 등 성차별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스위프트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공개 지지했다.
커크 암살은 정치적 폭력 확산 경각심을 크게 키웠다. 최근 미국에선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여러 정치인들이 공격의 표적이 됐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두 차례 있었고 지난 6월엔 민주당 소속 미네소타주 주의원 부부가 총격 살해됐다. 2021년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미 의사당 폭동은 미국을 넘어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다만 트럼프 정부는 커크 암살 책임을 "급진 좌파"에 돌리며 이념 몰이에 나서는 모양새다.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영국 국빈방문을 위해 출국하며 취재진에 "급진 좌파가 이 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며 "우린 이를 고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커크 암살을 애도하며 곧바로 "급진 좌파"를 배후로 지목했다.
수사당국이 커크 암살 용의자가 단독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팸 본디 미 법무장관은 15일 미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누가 찰리(커크)를 죽였나? 좌익 급진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5일 커크가 진행했던 온라인 라디오 방송을 대신 맡아 진행한 JD 밴스 미 부통령은 "폭력을 조장·촉진하고 이에 가담하는 네트워크를 추적할 것"이라며 비정부기구(NGO) 단속을 예고했다. 그는 "이는 양쪽(보수와 진보) 모두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양쪽 모두에 문제가 있다면 한쪽이 훨씬 더 크고 악의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방송에 함께 출연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도 "이 암살로 이어진 조직적 운동에 대한 모든 분노를 모아 테러 네트워크를 뿌리 뽑고 해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밀러는 특정 집단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지난달 미 폭스뉴스에서 민주당을 "국내 극단주의 조직"이라고 칭한 바 있다.
<AP>는 시민단체들이 정부 탄압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비영리단체들이 변호사를 모집하고 사무실과 직원 보안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감시단체 퍼블릭시티즌 공동 대표 리사 길버트는 "정치적 폭력 뒤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부당하게 표적이 될 것을 두려워하는 단체들이 대비 태세를 갖추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소속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찰리 커크 살해 뒤 트럼프는 정치적 폭력에 맞서 나라를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며 "그는 대신 이 총격 사건을 정치적 반대자를 파괴하고 권력을 강화할 구실로 사용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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