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북한이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부동산 조사를 마친 31일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해 금강산 관광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 성명이 "사실상 금강산 회담 제의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남북간의 실제 회담에 필요한 구체적인 조치가 누락된 채 '대화 용의' 표명에만 그친 것이어서 정부의 소극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 개최할 용의 있어"
통일부 천해성 대변인은 성명에서 "금강산 조사와 관련한 북한의 위협과 일방적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는 금강산 관광 사업자인 현대-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간 계약서 및 남북 당국간의 합의서 위반이며, 국제규범과 관례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일방적 조치와 위협이란 북한이 지난 25일부터 일주일간 금강산 관광지구 내에서 진행한 남측 부동산 조사와 "4월 1일까지 관광 재개를 하지 않으면 관광 계약 파기, 부동산 동결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을 말한다. 이런 조치가 이행될 경우 이 지역 내 부동산을 소유·임대한 업체들의 재산권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있다.
성명은 이와 관련해 "우리 기업의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떠한 남북 협력사업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며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 달 8일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 이후에도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으며, 언제든 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며 북한에 당국간 대화를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협의하는데 호응해 줄 것을 요구했다.
천해성 대변인은 이번 성명을 "사실상 회담 제의와 다르지 않다"면서 "지난 4일 아태 대변인 담화가 발표됐을 때도 우리는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덧붙였다.
"구체성 부족, 진정성 의심, 적극성 유감"
그러나 남북대화의 관행상 회담 제의란 구체적인 의제와 날짜, 장소를 명기하고 수신자를 지정한 전화통지문(전통문)을 북측에 보내는 것을 말한다. 성명을 통해 '대화 용의'를 밝히는 것은 대화 제의가 아닌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는 통일부 장관 등에 의해 여러 차례 표명되어 왔지만 구체적인 대화 제의는 실무급 접촉 몇 차례 외엔 사실상 없었다. 현 정부는 이런 의사 표명을 대화 제의라고 강변함으로써 '기다리는 전략'을 취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성명도 그러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봤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회담 제의를 하려면 날짜든 의제든 정식으로 내놔야 하는데, 성명으로 대화 용의를 표명하는 수준으로는 회담 제의라고 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부터 북측에 '조건 없이 만난다', '대화로 문제 풀 수 있다'는 얘기는 계속 해왔는데 늘 공을 상대편 코트로 넘기는데 그쳤다"며 "이번에도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부가 대화 현장에서 '국제적 수준과 국민 정서에 맞는 신변안전 보장'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회담이 진전되기 곤란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대화 용의가 있다는 말로는 이제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그러나 "현재 남북관계로 볼 때 남측이 먼저 구체적인 회담 제의를 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이 성명에 대해 북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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