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이 있는 한 입시 문제 해결은 불가능"

교육 관계자 1492명 4일 시국선언..."수능 정시 확대 즉각 취소해야"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 관계자와 시민·사회단체, 학계, 언론·정치·문화·종교계 1492명이 문재인 정부로 하여금 대입 정시 확대 개편 계획을 중단하고 대학 서열 철폐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시국 선언에 나섰다.

4일 대학 서열 특권 대물림을 강화하는 교육 중단을 촉구한 서명자들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시국선언에 나서 “대학 서열을 타파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제도 도입에 나설”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조국 사태 이후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공론화 한 대입 정시 확대 개편안을 두고 “한국 교육 문제를 정부가 단지 수능 정시확대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고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수능을 통한 선발이든 학생부종합전형이든 현행 입시 방식을 조금 고치는 것으로는 교육을 통한 특권 대물림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절망감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선언문 서명자들은 특히 수능 정시 확대안은 “5지선다 객관식 정답 찾기 교육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미래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정책이므로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명자들은 현 입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학 서열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지금처럼 뾰족한 삼각형 모양으로 솟은 서열체제가 넓적한 사다리꼴로 바뀌기만 해도 입시경쟁의 압력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학생이 굳이 대학에 오지 않아도 좋을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전문계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 청소년에게 대학이 아닌 다른 선택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눈부시게 발전시킨 교육이 오늘날 모든 면에서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걸림돌이 된 까닭은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 장치가 되고 특권의 대물림 통로가 됐기 때문”이라며 그 사례로 조국 사태로 폭발한 민심을 꼽았다.

이어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역대 정부가 “공교육 정상화나 공정한 입시경쟁 또는 다양한 선발 등 온갖 개선”을 해 왔으나 “그 모든 방안이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경험이 분명히 말해주는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대학 서열을 철폐하지 않는 한 교육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단언이다.

서명자들은 특히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대학 서열 철폐 공약을 이행하지는 않고, 수능 정시 확대 방안을 내건 것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국·공립 대학 공동학위제를 통한 평준화, 대입 전형 시 논술 전형과 특기자 전형 폐지,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등의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공동학위제는 정부 취임 후 논의의 장에서 사라졌고, 문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정시 확대는 당장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공약과 정면 배치된다.

이들은 “대학 서열 타파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관련 공약을 발표”했으나 “그 후 지금까지 어떤 공식적인 해명도 없이 공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집권 이후 그 공약(대학 평준화)의 이행을 추진해왔다면 오늘의 사태가 도리어 제도 완성에 발판이 되었을 것”이라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관련 공약에 따라 대학 서열을 타파하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제도 도입에 나서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정시 확대라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 교육 역사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절망스럽기까지 하다”며 “대학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한, 무한경쟁으로 인한 아이들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30여 년 전 자녀의 입시 경험을 거론하며 “손아래 세대에 와서 입시지옥이 더 넓고 깊어져서 이제 아이들을 죽이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이어 “대학 서열의 철폐로 기득권 세력이 가진 강고한 성을 허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며 “우리 세대의 신분과 부와 지위의 대물림에 활용되는 대학 서열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대입제도를 변혁해 후손 세대에게 기회와 과정과 결과가 공평한 사회를 물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아울러 취업 단계에서 출신학교로 지원자를 차별하는 제도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모든 민간 기업으로 확대하고, 특권적 지위로 인식되는 모든 영역에서 대물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시국선언문은 최현섭 전 강원대 총장과 김명신 서울교육청 청렴 시민감사관, 심성보 부산교대 명예교수, 최병성 초록별생명평화연구소 소장, 강혜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부회장이 나눠 읽었다. 선언문 초안은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작성했다. 시국선언 실무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맡았다.

이들은 시국선언에 나선 이들의 서명을 청와대와 교육 당국에 전달키로 했다. 아울러 앞으로도 정부에 대학 서열 철폐 이행을 촉구하는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송인수 사걱세 공동대표는 “오늘 시국 선언은 출발점”이라고 전했다.

▲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1일 앞둔 3일 서울 강북구 도선사에서 열린 수능 법회에서 수험생을 둔 신도들이 자식과 손자 등의 고득점을 기원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