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정상회담 "듣기 연습"? 기대 낮추는 백악관…러우 전쟁 휴전 합의 도출 어려울듯

트럼프 "영토 교환" 시사에 젤렌스키 "돈바스서 안 물러나"…유럽, 트럼프가 푸틴에 끌려갈까 노심초사

우크라이나전 휴전 협상에 진전을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을 모은 미·러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가 낮아지고 있다.

캐롤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언론 브리핑에서 오는 15일(이하 현지시간) 열릴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듣기 연습(listening exercise)"으로 규정했다. 그는 미·러 정상회담이 "대통령에게 듣기 연습이다. 이 전쟁에 연루된 한 당사자만 참석한다"며 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가 이 전쟁 종식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더 많은, 확고한 이해"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빗 대변인은 "전화 통화보다 얼굴을 보고 마주 앉는 게 대통령에게 이 전쟁이 어디로 향하는지와 어떻게 끝날지에 대한 가장 좋은 지표를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악관이 이번 정상회담을 "듣기 연습", "이해" 수준으로 표현하며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옅어졌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도 취재진에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이 "의향을 떠보기 위함(feel-out)"이라며 "난 협상을 타결하지 않을 거다. 협상 타결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에게 회의 뒤 내용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영토 교환"이 있을 수 있다고 거듭 시사하고 있는 것도 기대를 낮추는 요인 중 하나다. '영토 교환'이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 러시아는 침공 명분 중 하나였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넘길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구상을 완강히 거부 중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 미 CNN 방송을 보면 12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영토 교환은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과 뗄 수 없는 매우 복잡한 문제"라며 "우리는 돈바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러시아에 돈바스는 향후 새 침략을 위한 발판"이라며 러시아가 돈바스를 차지한 뒤 "내일 새 전쟁이 시작되지 않을 것이며 푸틴이 드니프로, 자포리지아, 하르키우를 점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에 대한 제안은 단 한 가지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2022년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이어 일어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연합(EU)이 평화 회담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유럽 외엔 우리에게 안보 보장을 해주는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13일 미국, 우크라이나, 유럽 간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미·러 정상회담 전 이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미국에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견에서 지난주 푸틴 대통령을 만난 스티브 윗코프 백악관 특사와의 통화 내용을 전하며 "윗코프는 양쪽 모두 영토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들렸다. 또 푸틴이 우리가 돈바스를 떠나길 원할 거라고 했다. 미국이 우리가 (돈바스를) 떠나길 바라고 있는 걸로 들리진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난 푸틴의 제안이 트럼프의 제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미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중재자로서 행동하고, 러시아 편이 아닌 중립"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러시아군은 전쟁을 끝낼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새 공세 작전 준비를 시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과 통화 뒤엔 대체로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대면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 끌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여전하다. 12일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푸틴을 만나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첫 공식 정상회담 뒤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을 받은 러시아 편에 서 미 정보당국 판단과 상반되는 입장을 내 놓은 예를 들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럴(러시아 개입) 이유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안감을 느낀 유럽국가들은 잇단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 영토 획득 및 우크라 비무장화 주장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강조 중이다. 헝가리를 제외한 EU 지도자들은 12일 성명을 통해 "국제 국경은 무력으로 변경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향후 안보 보장의 필수 요소"이며 미국과 유럽이 협력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및 러시아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날 유럽의회 및 유럽 26개국 의회 외교위원회 의장들도 공동성명을 내 "러시아가 잔혹하고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대가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얻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결정돼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성립된 시점에 이미 이득을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했던 러시아 관세 및 2차 제재가 정상회담이 발표되며 사실상 흐지부지 됐다.

이에 더해 대부분 서방 지도자들이 푸틴 대통령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있고 2023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까지 발부한 상황에서 미국 정상과의 공식 회담은 그 자체로 푸틴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ICC 회원국은 영장 집행에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그간 국제적 운신에 다소 제약을 받아 왔다. 미국은 ICC 회원국이 아니다.

▲ 1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기념품 상점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의 이미지가 묘사된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가 진열돼 있다. ⓒAP=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효진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