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보다 배꼽이 커졌다...노동권 무력화하는 이것

[토론회] 필수유지업무제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모색

ILO 주요협약 비준은 한국 사회의 불완전한 노동3권을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노동자로 분류조차 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와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수 없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조합원 중 해고자가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판결을 받은 전교조, 교원, 공무원 등의 불완전한 노동3권도 이슈화됐다.

ILO 주요협약 비준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노동3권을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이들 이외에도 존재한다. 단체행동권을 제약받고 있는 필수유지업무 종사 노동자들이다.

필수유지업무제도는 공공 이익과 노동3권을 조화시킨다는 목적하에 필수공익업무 종사 노동자의 파업권을 일정 부분 제약하는 제도다. 노조법상 철도, 수도, 전기, 가스, 석유, 병원, 한국은행, 통신 사업 등이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필수공익사업 업무 중 '공중의 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 중 대통령령이 정한 업무'는 필수유지업무로 분류된다. 노사는 이러한 필수유지업무의 유지와 운영을 위해 파업 참가를 제한하는 업무와 해당 업무의 최소 유지 인원 등을 명시한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필수유지업무제도는 직권중재제도의 폐지와 함께 그 보완책으로 2008년 시행됐다. 노동계는 현행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국제기준에 비해 노동3권을 지나치게 제약한다고 비판해왔다. 실제 ILO는 2009년과 2013년 한국의 필수유지업무 범위가 너무 넓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제도가 도입된 지 12년이 지난 필수유지업무제도.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1일 이정미 정의당 국회의원,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노동조합 등의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필수유지업무제도가 필수공익사업 종사 노동자의 노동3권을 삼중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는 필수공익업무의 범위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정할 수 있고 노동위원회에 맡겨져 있는 필수유지업무 협정의 최종결정 권한도 노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현장 사례 발표자들은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공공의 이익이 아닌 사용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프레시안(최용락)

"필수유지업무제도, 노동자의 노동3권을 삼중으로 제한"


권 변호사는 "필수유지업무제도가 필수공익사업 종사 노동자의 노동3권을 삼중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는 필수유지업무제도의 범위에 의해서다. ILO도 필수서비스(essential service)라는 이름으로 파업 제한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직무를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필수유지업무 범위가 국제기준에 비해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다. 일례로 ILO는 한국이 필수유지업무로 분류한 철도 사업 관련 업무를 필수서비스로 분류하지 않는다. 다른 교통·운송 수단에 대한 대체가 가능하다는 점 등을 고려한 까닭이다.

두 번째는 대체근로 허용을 통해서다. 노사 간 필수유지업무 협정으로 결정된 파업 가능 인원의 파업에 대해서도 사용자는 파업 참가 인원의 50%를 대체인력으로 채울 수 있다. 예컨대 100명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협정상 70명은 파업 때도 근무해야 한다고 정했고 나머지 30명 중 20명이 파업에 참가했다면, 사용자는 10명의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실질적으로 노사가 아니라 노동위원회가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해당 산업에 대한 전문성 없는 노동위원회의 위원들이 시일에 쫓겨 필수유지업무 및 해당 업무의 최소 유지 인원 등을 결정한다"며 "그러다 보니 사용자의 주장에 따르는 경우가 많고 최소 인원 유지율이 70~100% 정도로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필수유지업무 협정의 유효기간이 없는 것도 문제다. 단체협약이 2년에 한 번 갱신되는 것과 달리 필수유지업무 협정은 한번 결정되면 바뀌지 않는다. 김용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은 "항공 산업이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될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그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저가항공이 많이 생겨 특정 항공사 노동자가 파업을 해도 대체가 가능한데도 필수공익사업 협정을 바꿀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

▲ ILO가 제시한 필수서비스(essential service) 목록. 권두섭 변호사 자료.

"사용자들이 필수유지업무제도의 맹점을 이용하고 있다"


필수유지업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이 빠져 있어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공공 이익이 아닌 사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행 필수유지업무제도는 협정을 통한 필수유지업무의 최소 인원 보장과 대체인력 투입 등을 통해 사업의 운영을 보장한다. 그러면서도 필수유지업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필수유지업무제도로 확보된 최소 인원과 대체 인력을 어떤 분야에 투입할지는 전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이다. 해당 인력은 주로 이윤을 최대화하는 분야에 투입된다.

서상훈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조종사노조 부위원장은 "파업을 하면 회사는 평소 적자를 보는 국내선과 화물 노선을 감축한다"며 "회사는 겉으로는 울상이지만 속으로는 이익을 보고 그런 사정을 아는 노동자들은 파업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고 전했다.

철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권 변호사는 "KTX를 제외한 화물, 새마을, 무궁화 등은 운영할수록 적자가 발생함에도 공적 이유로 유지하는 노선이다"며 "파업이 일어나면 코레일이 KTX를 제외한 나머지 노선의 운영률을 확 떨어뜨리면서 적자가 아닌 흑자가 생긴다"고 말했다.

사용자가 부수적인 업무라고 주장하며 도급 운영하던 업무를 필수유지업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종삼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 한마음지부 지부장은 "LG유플러스는 노동조합이 없던 2016년에 망 관리 업무를 도급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인력도 50%나 줄였다"며 "노동조합이 생기고 불법 파견 판정을 받으면서 망 관리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나서는 회사가 망 관리 업무가 필수유지업무라면서 파업 시에도 인력의 83%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수유지업무제도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선할 수 있다"


권 변호사는 필수유지업무제도의 문제점 중 상당수는 정부 의지로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필수유지업무 범위는 노동법 시행령으로 규정되어 있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대폭 개정할 수 있다"며 "70~100%로 높게 결정되는 최소 인원 유지 비율도 시행령에서 유지비율의 상한과 하한을 설정하는 방법을 통해 정부가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필수유지업무 협정의 실질적 결정 권한을 노동위원회에서 노사 협상으로 이관해야 하며 이 역시 운영의 묘를 발휘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가 가장 높은 것은 결국 노사"라며 "가능하다면 필수유지업무 협정 범위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고 불가피하게 노동위원회로 가는 경우에도 양자의 자율적 합의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필수유지업무에 대한 사용자 책임 규정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권 변호사는 "사용자가 필수유지업무라고 주장한다면 중요한 업무라는 뜻이니 최소한 정규직 직접 고용을 해야 한다"며 "파업 시 공공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적자가 나는 업무를 운영하지 않는 문제도 사용자에게 필수 유지 업무 준수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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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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