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사고의 원인 조사와 개선책을 내놓는 방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두 개의 강연을 마련했다. <프레시안>은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제대로 된 사고조사 제도 및 절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두 강연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한국에서 사고조사를 해온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가 한국의 사고조사 현황과 영국 경험의 시사점을 살폈다.
[사고 원인 조사, 그리고 개선책 上 사회적 참사 사고 조사, 영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1960년 3월 2일 부산 국제고무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공장의 신입직원이 작업대 위에 있던 성냥을 장난삼아 켰다가 동료직원이 제지하자 놀란 나머지 성냥을 연료통에 버려 일어난 화재였다. 52명이 불에 타서 사망하고 39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참사였지만 제대로 된 사고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0년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쿠데타를 지나며 한국 사회는 이 사건을 까맣게 잊었다. 52명의 원통한 죽음의 흔적은 <사백환 인생비극>이라는 노래로만 남아있다.
이후에도 굵직한 참사는 계속됐다. 1971년 166명이 사망한 대연각 화재, 1977년 59명이 사망한 이리역 폭발 사고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산업안전 전반을 관장하는 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산업안전 전반을 관장하는 법은 참사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제정됐다. 1980년 신군부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100대 의제 중 하나로 산업안전보건법 제정을 꼽았다. 그리고 1981년 일본법을 거의 그대로 베껴 산안법을 만들었다.
다시 7년이 지난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국 산업재해사에서 결정적 사건으로 꼽히는 원진레이온 사건이 드러났다.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의 인공 섬유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 대부분이 신경 독성 물질인 이황화탄소에 중독되어 중증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난 사건이었다. 현재까지 이 사건의 피해자로 판명된 사람의 수는 1000여 명에 달한다.
그나마 원진레이온 사건 이후 한국 역사상 최초로 피해자와 가족이 참여한 피해 판정이 이루어졌고, 1990년에는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어 오늘날 산안법체계의 뿌리가 됐다.
그 뒤에도 한국사회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비롯한 숱한 안전사고를 겪어야했다. 2014년 4월 16일에는 모두가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한국 사회는 이에 대응해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특조위는 진상조사는 물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걸음도 준비하고 있다.
강연을 기획한 사회적참사 특조위는 "법률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사고조사론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며 "특조위가 안전사회를 향한 열망으로 만들어진 만큼 재난사고 조사에 대한 사회적 교안을 만드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의 현 주소를 살피고 보완점을 찾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영국에 비해 한국의 안전 관련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국 사회에 안전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한국사회가 한 발 더 앞으로 나가려면 사고조사 제도와 사고조사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역사적 자료 '구의역 사고 조사보고서'
강 교수는 안전 문제에 있어 영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차이를 짚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영국 산재 사망률은 한국의 1/20 정도예요. 안전보건체계도 다르고 사고 양상도 다르죠. 현대사회의 위험을 이야기할 때 다양한 원인에 의해 예측할 수 없이 일어나는 사고를 정상사고라고 합니다. 한국은 정상사고를 이야기하기 힘든 나라예요. 단순한 원인이 치유되지 않고 증폭되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죠. 제가 2015년에 이 말을 했는데 여전히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안전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도 중대재해를 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어요. '위험의 외주화'가 대표적이죠. 옛날에는 안전불감증이라고 해서 개인의 잘못을 강조했잖아요. 이제는 중대재해의 중요한 원인으로 구조와 권력의 문제를 지적하는 여론이 일고 있죠."
'위험의 외주화'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위험한 업무를 하청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2016년 19세 정비공 김 군이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에 끼어 숨진 사고의 여파로 힘을 얻었다. 강 교수는 '구의역 사고 조사보고서'를 역사적 자료로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원진레이온 사태, 씨랜드 참사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그때그때 특별조사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사고조사가 이루어졌었는데요. 특별조사로 작성된 역사적 자료 중 하나로 '구의역 사고 조사보고서'를 들 수 있어요. 서울시가 시민사회 인사를 주축으로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적극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6년 7월 발표된 ‘구의역 사고 조사보고서’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의 원인으로 기술적 요인과 안전불감증 외에도 2인 1조 작업이 불가능한 상황 등 관리운영적 요인, 무분별한 외주화에 따른 안전관리시스템 미작동,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한 잦은 이직 같은 구조적 요인을 지적했다. 2016년 12월 서울시는 지하철 안전 업무를 직영체제로 전환, 연봉 인상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형법적 관행으로 사고를 조사하는 중대재해조사 제도
2017년 7월에는 산안법 시행령으로 중대재해조사 제도가 만들어졌다. 중대재해조사는 산업재해 중 △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에 대해 이루진다.
'중대재해조사 처리 흐름도'를 보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외부전문가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아 현장 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이 위법 여부를 판단해 사건을 송치하게 되어있다.
강 교수는 중대재해조사 시행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했다. 대부분은 수사와 조사의 분리 없이 형법적 수사 관행이 사고조사 과정에 그대로 적용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첫 번째는 조사내용, 판례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사고조사 관련 정보가 유통돼야 사고 방지 대책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고조사 관련 정보는 수사 자료라는 이유로 대부분 비공개된다.
"중대재해조사하면 정보가 대단히 많습니다. 한 명이 사망해도 책 두세 권이 나와요.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 같은 경우는 트럭 반차 정도 분량이 나옵니다. 거기서 나오는 막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수사는 비공개라면서 전부 비밀에 부쳐요. 형법상 범인도 공익 목적상 공개가 논의되는데 이런 논의가 없어요. 수사보고서 두세 페이지 남기고 수사 자료를 전부 검찰로 송치해서 법원 기록물 창고로 보냅니다. 저는 합법적인 증거 인멸이라고 생각해요"
유족의 참여가 배제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사망 사고의 경우 피해자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중대재해조사는 사업주 혹은 직장 동료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면 피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이 많이 나온다. 조사 당국도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사고 원인이 피해자의 실수로 귀결된다.
"제가 사고조사를 하면서 들은 많은 사고 원인이 뭐였냐면 개인의 잘못이에요. '왜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다',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부터 해서 '자살했다'는 표현을 들은 적도 있어요. 이런 현상을 막으려면 피해자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유족이 조사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법기관의 산업안전 분야에 대한 이해 부족도 걸림돌이다. 이로 인해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경향은 더 강화된다. 그러면서도 사업주의 잘못은 중하게 다루지 않는다.
"검찰과 법원도 주로 개인의 책임에 집중해요. 형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관행 때문 아닐까 생각하는데, 형법으로 처리하는 걸 선호하면서도 법인의 처벌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형벌도 낮고요."
"한국에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사고조사기관이 없다"
강 교수는 중대재해조사의 문제 외에도 사고조사기관의 독립성 부족, 사고조사 전반의 전문성 미비 등을 한국 사고조사의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한국에도 산업별로 사고조사기관이 있다. 2005년 설립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2012년 설립된 의료분쟁조정위원회, 2014년 설립된 건설사고조사위원회 등이다. 문제는 이들 기관에 독립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사고조사기관은 대부분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의 소속기관으로 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 독립성이 없는 것도 그렇고, 사고에 즉시 대응하는 능력이나 권위도 떨어지죠."
전문성의 바탕인 방법론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다. 강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사고조사는 주로 도미노 이론을 따른다. 도미노 이론은 '유전적 요인과 사회적 환경이 개인적 결함으로 이어지고, 이런 결함이 불안전한 행동 및 불안전한 환경을 만나면 사고가 일어나 상해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5가지 요인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도미노가 쓰러지듯 재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별도로 정립된 사고조사 방법론이 없어요. 1920년대에 나온 도미노 이론 정도를 여전히 단순 원인에 따른 사고에 활용하는데, 특히 개인의 불완전한 행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요. 그나마 사고의 원인을 복합적으로 보는 4M(Man(인간), Machine(기계), Media(작업), Management(관리))모델을 쓰고 있지만 조사자마다 정의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 표준화돼 있다고 보기 힘들어요."
강 교수는 이외에도 대립적인 이해관계자를 동수 추천하는 방식으로 전문가 집단이 꾸려진다는 점, 조사가 주로 비상근위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 등을 한국의 사고조사 전문성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런 식의 체계로는 전문가로 이루어진 상근 집단이 사고조사를 진행하는 영국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포함됨에 따라 업무 외적인 에너지 소모도 크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런 점들을 보면) 영국 사회에 비해 한국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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