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서울 답방, 해 넘기나?

북미 협상 지연 맞물려 고민 깊어가는 청와대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해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고빗사위가 될 북미 고위급 회담을 놓고 북미 간 신경전이 길어지는데 따른 여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여러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이전이 좋을지, 후가 좋을지 어떤 것이 한반도에 평화번영을 가져오는데 효과적일지 생각과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청와대가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 가능성에 무게를 뒀던 것과는 달라진 태도다. 앞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일 "저희는 김정은 위원장이 연내에 답방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만나 "연내에 이뤄진다는 것을 가정하고 준비한다"고 했다.

하지만 11월 중 이뤄질 것으로 기대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간의 고위급 회담이 지연되면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통한 4차 남북 정상회담도 연쇄 지연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많아졌다.

물론 김 위원장의 답방이 해를 넘기더라도 '평양 선언' 합의 불발로 보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명한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만 돼 있다.

문 대통령이 합의서 서명 뒤 기자회견에서 '가까운 시일'과 관련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올해 안을 의미한다"고 부연해 연내 답방이 기정사실화 됐던 것이다. 평양선언 당시만하더라도 '2차 북미 정상회담 →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시나리오가 부각되면서 연내 종전선언도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했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겠다"며 속도조절을 공식화한 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고위급 협상과 실무협상도 다시금 교착에 빠졌다. 여기에 한미 워킹그룹 협상 등을 통해 남북관계 진전을 비핵화 협상의 틀 내로 가두려는 트럼프 정부의 견제도 분명해졌다.

청와대와 정부로서는 김 위원장 답방을 서두르기 어려운 제약 조건이 등장한 것이고, 북미협상 교착 속에 북한으로서도 성과와 의미를 담보하기 어려운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집착할 동기가 약해진 셈이다.

이에 따라 북미 협상에 극적인 진전이 없는 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통해 연내 종전선언까지도 내심 희망했던 문재인 정부의 구상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앞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6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정부는 가급적 판문점선언의 약속처럼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가능하도록 관련 국가와 협의하고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26일 김의겸 대변인은 종전선언 문제에 대해 "여전히 논의 중"이라면서도 "우리 정부만의 결정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남과 북의 결정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북미 3자가 합의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내 종전선언에 대한 의지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뉘앙스다.

물론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에도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과 종전선언이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27일 아르헨티나로 출국하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다시 한 번 중재자 역할을 할 기회가 남아있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비핵화 문제와 상응조치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의견을 나눌 것으로 예상된다.

미 일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종전선언 카드를 활용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미 국가이익센터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은 25일(현지시간) <더힐>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제스쳐와 한국전쟁 종전 선언을 서로 교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수 주 내에 북한을 핵전쟁 위협으로 되돌릴 것인지 데탕트로 진전을 이룰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종전선언과 북한 비핵화 조치의 빅딜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에 대해 진지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김 위원장이 말을 바꾸거나 변심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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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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