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였던 미 유명 보수 활동가가 대중 행사 중 총에 맞아 숨졌다. 미국에서 정치 폭력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급진 좌파"를 탓하며 분열을 조장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인들 사이 정치 폭력에 대한 용인이 급증했다며 정치인들의 사소한 암시도 촉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P>,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10일(이하 현지시간) 정오께 미 보수단체 '터닝포인트USA'의 창립자 찰리 커크(31)가 유타주 오렘 유타밸리대에서 열린 이 단체 행사 중 총격 피살됐다. 이날 오후까지 용의자가 붙잡히지 않아 범행 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화당 소속 스펜서 콕스 유타 주지사는 이를 "정치적 암살"이라고 단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한 영상 연설을 통해 커크의 죽음이 "급진 좌파" 탓이라고 주장했다.
18살 때인 2012년 고등학생 및 대학생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 보수 메시지를 전파하고 이들을 활동가로 조직하는 데 중점을 둔 단체인 터닝포인트를 설립한 영향력 있는 우익 활동가인 커크는 2016년 대선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 왔다. 커크는 성소수자 권리, 다양성 프로그램에 반대해 왔고 2020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쓰레기"로 칭하기도 했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인종 평등을 요구하는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촉발했다.
커크는 2023년 한 행사에서 총기 소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매년 일어나는 총기로 인한 사망 비용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밝힐 만큼 확고한 총기 권리 지지자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젊은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커크가 트럼프 대통령 뿐 아니라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도 가까운 사이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커크는 3000명이 몰린 야외 행사에서 참석자로부터 총기 폭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에 답하던 순간 총에 맞았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정치 폭력 확산 우려를 키웠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두 건의 암살 미수 사건을 비롯해 지난 6월엔 미네소타주 주의원 부부가 총격 살해됐고 다른 주의원 한 명은 부상 당하는 등 최근 미국에선 정치인 대상 혹은 정치적 동기에 의한 폭력이 격화 중이다. 지난 4월엔 민주당 유력 정치인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관저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2022년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 자택에 괴한이 침입해 펠로시의 배우자가 부상을 입었고 같은 해 보수 성향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집 근처에서 무장한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사건 뒤 소셜미디어에서 커크가 대가를 치렀다는 취지의 좌파 성향의 게시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우파 쪽 게시글도 애도에서 보복으로 방향을 바꾼 상황이라며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인의 정치적 동기에 의한 공격에 대한 용인이 눈에 띄게 증가 중이라고 우려 중이다. <뉴욕타임스>는 미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 로버트 페이프가 "이 나라는 화약고와 같다"며 "지난 4년간 연구를 수행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급진화된 정치와 폭력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것을 목도 중"이라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페이프 교수는 2021년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미 의사당 폭동 사건 뒤 정치적 폭력에 대한 정기적 조사를 진행해 왔다.
페이프 교수의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원 39%가 트럼프 대통령을 무력으로 해임하는 구상이 정당하다고 생각했고 공화당원 4분의 1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을 사용하는 게 정당하다고 봤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 폭력의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미 존스홉킨스대 사회학 교수 루스 브라운스타인은 "우파는 민병대 조직을 포함해 잘 조직되고 훈련된 집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국가로 여기는 것을 수호하기 위해 행동에 나설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이 행동하기 위해선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 혹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지금이 바로 그들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매우 작은 암시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커크 사망 관련 발언은 우려를 낳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엔 소셜미디어를 통해 "찰리(커크)보다 미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이는 없었다"며 비교적 차분하게 애도를 표명하며 조기 게양을 명했다. 그러나 수 시간 뒤 영상 연설을 통해 "수년 간 급진 좌파는 찰리와 같은 멋진 미국인들을 나치, 대량 살인자, 범죄자에 비유해 왔다"며 "이러한 수사는 오늘 우리나라에서 목도한 테러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며 호전적 태도를 보였다. 영국 BBC 방송은 "이러한 발언은 커크 총격 뒤 좌파 단체에 대한 단속을 촉구하고 있는 우파들에게 환영 받을 게 분명하다"고 짚었다.
공화당 최대 기부자 중 하나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좌파는 살인 정당"이라는 폭언을 쏟아냈다.
페이프 교수는 지난 6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서로를 부추기는 트럼프 정책 및 민주당 정책에 대한 폭력, 트럼프 정부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대한 주방위군 및 군 투입, 양당 정치인들의 공격적 언어 사용 등이 현재 정치 폭력 격화를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상황 완화를 위해 양당 정치인들이 분열을 극복하고 정치 폭력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당 유력 정치인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해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섬 주지사는 10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커크에 대한 공격은 "역겹고 부도덕하며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우린 모든 형태의 정치적 폭력을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