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에 인생이 멈춰버렸어요"…계엄군 성폭행 그후 38년

정부 공동조사단, 5.18 당시 계엄군 등 성폭력범죄 첫 공식 확인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범죄 행위가 정부 차원의 조사에서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정부 조사 결과, 최소 17명이 계엄군 등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중 대다수는 2인 이상에 의한 집단성폭행이었다고 한다. 17건의 성폭행 사례 외에도 성고문·성추행 등 행위도 다수 존재했다고 정부는 밝혔다.

국방부·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5월부터 공동으로 운영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31일 활동을 종료하며 지난 6개월 간의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내용 총 17건과 이외 연행·구금된 피해자 및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 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정부 조사단이 밝힌 당시의 참상은 충격적이다. 조사단은 "성폭행의 경우, 시민군이 조직화되기 전인 민주화운동 초기(5월 19일~21일) 광주 시내에서 대다수 발생했다"며 "피해자 나이는 10대~30대였으며 직업은 학생·주부·생업종사 등 다양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피해자 대다수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착용한 다수(2명 이상)의 군인들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며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기억 속에 갇혀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채 당시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고통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은 조사단과의 면담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어요."
"나는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춰버렸어요."

피해자들을 괴롭힌 것은 "육체적 고통보다 성폭행당한 정신적인 상처가 더 컸다"고 한다. 이들은 "가족에게도,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는 고립감과 함께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성폭행당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고통에 시달렸다.

정부 조사단은 17건의 성폭행 사건과는 별개로 "연행·구금된 여성 피해자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성고문을 비롯한 각종 폭력행위에 노출됐다"는 점도 밝혀냈다.

조사단은 또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학생, 임산부 등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 등 여성인권 침해 행위도 다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각종 자료와 문헌 조사를 통해서도 입증된 내용으로, 당시 "속옷 차림 여성을 대검으로 상해·위협·희롱 및 성고문"했다는 자료(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와 함께, 광주지검의 검시조서와 의료활동 기록을 통해서는 일부 여성 피해자의 부상 부위가 "유방 또는 성기"로, 부상 형태는 "자창(刺創. 찔린 상처)"라는 기록을 발견했다고 조사단은 밝혔다.

정부 공동조사단 구성은 올해 5.18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이들은 피해 접수 면담, 문서자료 검토 등의 방법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피해 사례 조사는 피해자 진술과 당시 작전상황(계엄군 상황일지에 나타난 병력배치 및 부대이동 경로)과 비교분석해 진술 신빙성을 높였고, 이런 분석을 통해 일부 피해 사례의 경우 가해자 또는 그 소속부대를 추정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정부 공동조사단은 조사 결과를 향후 구성될 '5.18 진상규명위원회'에 이관해 추가 조사가 진행되게 할 예정이라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국가 공식 사과 표명 및 재발방지 약속 포함) △가해자 조사 △5.18 진상조사위 내 별도의 성폭력 소위원회 설치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동조사단은 특히 이번 조사 결과 밝혀진 '집단성폭행 등 성폭행 17건과 그외 다수의 성고문·성추행'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 제약 등으로 당시 일어난 성폭력 전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며 "앞으로 지속적 홍보와 신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공동 조사단장인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은 "이번 조사는 그간 사회적 논의의 범주에서 소외됐던 5.18 관련 여성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확인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조사단은 용기를 내어 신고해주신 신고자 분들뿐 아니라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기억 속에서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모든 피해자들께 위로와 사과를 드리며, 앞으로도 진실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조사단의 공식 발표가 있던 이날, 광주 5.18 관련 단체들은 국회를 찾아 조속한 진상규명위 가동을 촉구했다. 이들의 회견에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소속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이날 평화당 정동영,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차례로 예방하고 진상규명과 우익 일각의 광주민주화운동 폄하·왜곡행위에 대한 대처 방안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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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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