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문재인 정부, 재벌의 미끼 물면 안 돼"

"개혁 막으려는 '자본의 파업' 주의…경제부처 장관 바꿔야"

진보적 경제학자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쓴소리를 내놨다. 전 교수는 지난달 18일 "촛불시민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 사회·경제정책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지식인 선언'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전 교수는 1일 문화방송(MBC) 라디오에서 먼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간의 회동 계획,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완화, 전반적 '규제 혁신' 등 현안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인도 방문 당시 이재용 부회장을 현지에서 만난 데 이어, 이달 6일 김 부총리가 평택공장을 방문해 이 부회장을 만날 예정인 데 대해 "국민들한테는 자칫하면 '재벌개혁을 포기한 것 아니냐'라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삼성은 그냥 일반적인 대기업이 아니고 이 부회장 역시 평범한 대기업 경영자라고 보긴 어렵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연루자로 성격을 규정해야 될 것"이라며 "이 정부를 촛불정부라고 하는데 촛불정부는 그런 국정농단 사건과의 단절을 표방하고 집권한 정부다. 그런데 그 정부가 국정농단 세력으로 혐의를 받고 있는 분을 만나서 이러저러한 부탁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등이 잇달아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날선 언급이 나왔다. 특히 지난달 30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같은 달 24일 국무회의 당시 "은산분리 완화, 이번에는 되는 거죠"라며 "나도 매달 규제개혁 회의를 주재하며 직접 챙기겠다. 각 부 장관들도 규제혁신을 직접 챙겨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 교수는 이에 대해 "인터넷전문은행을 해야 된다는 논거가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처음에는 '중금리 대출을 위해서' 또는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한다고 하다가, 최근에는 '그런 것들 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했던 얘기고 너희들(집권세력)이 반대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으니 새로 들고 나온 게, 홍영표 원내대표가 '벤처' 말씀을 했다"고 했다. 대기업이 사내유보금으로 벤처캐피털을 설립·소유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내유보금 축적이 문제가 있다는 말에는 많이 동의한다"며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그것(사내유보금)이 중소기업·하청기업에 대한 기술 탈취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통해 조성한 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강제적 낙수효과 같은 것을 세제 개편안에 넣어서 처리해야 될 문제이지 우리가 가서 규제 완화를 해주고 '제발 이것 좀 해주세요' 부탁하자? 이건 마치 남의 물건을 빼앗아간 사람에게 '내 거니까 돌려줘' 하는 게 아니라 '제가 그 물건 써야 되는데 쓸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하고 비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집권세력 내에서 점차 목소리가 커지는 이른바 '규제 혁신' 즉 규제 완화 방안에 대해서도 그는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가 실을 당겨서 물건을 움직일 수도 있고. 실을 밀어서 물건을 움직이려고 시도할 수도 있는데, 실을 당길 때는 물건이 잘 따라오지만 실을 민다고 해서 물건이 움직이는 게 아니다"라며 "규제 완화는 일종의 '실을 미는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저쪽에서 원래 당기고 있던 힘이 있을 때 실을 놓으면 물건이 그리 가겠지만, 물건은 가만히 있는데 실을 민다고 해서 물건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즉) 물적 투자를 하려는 유인이 많을 때 규제 완화를 해주면 물적 투자가 막 일어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돈을 쌓아놓고 '투자할 곳이 없다'고 그러는데 규제 완화를 해봐야 별로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박정희 때, 개발연대 시절 자본이 부족할 그때를 자꾸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최근 경제 지표 악화에 대처하는 방식을 두고 "조급하다"며 "일부 장관 같은 경우 언론 인터뷰에 나와서 '굉장히 조급하다'는 표현을 실제로 썼고 '6개월 또는 1년 안에 고용수치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얘기도 했는데, 이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이고 또다른 모래지옥으로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이라는 것은 경기동행지표 또는 후행지표다. 예를 들어서 지금 당장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사람을 뽑지는 않지 않느냐"며 "그러면 6개월 뒤에 고용지표가 좋아지려면 지금이 호황이어야 되는 것인데 지금이 호황이 아니잖나. 그런데 6개월 뒤에 어떻게 고용지표가 올라가겠는가? (그러면) 이것은 정상적 방법이 아니라 인위적인 방법밖에 안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재벌 찾아가서 빌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은 성장과 상충되지 않아"

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면서 "지금은 어떻게 하다 보니 사람별로, (즉) '공정경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하고, '소득주도성장'은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하다가 홍 수석이 실각하게 되니까 장하성 정책실장이 떠맡는 꼴이 됐고, '혁신경제'는 규제완화라고 하는 굉장히 작은 윈도우 하에서 김동연 부총리가 하는 식으로 돼 있다"며 "원래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은 그렇게 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에서 최저임금 올리는 것도 '노동자들의 삶이 너무 어려우니까 올리자'라는 정의로움의 관점에서도 얘기할 수 있지만 '새로운 인적 자본 투자의 초기 조건을 만들자'(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혁신도 지금 말하는 규제 완화에 의한 혁신이 아니라 재벌 개혁을 하고, 대기업 영향력을 밀어낸 뒤에 벤처기업 등 신생기업들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거기서 혁신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이런 식의 시각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교수는 이같은 현안에서 나아가 좀더 근본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경제민주화나 재벌 개혁은 성장과는 상충된다', '재벌 개혁 하면 성장률 떨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경제민주화는 성장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데 이 정부는 '재벌(개혁)정책은 성장률이 좋을 때나 하는 한가한 정책이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고용지표가 좀 안 나오니까 바로 방향을 전환한 것 같은데, (이는) '고용지표 올리려면 경제민주화 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용은 기업이 하는 것이고, 기업이 하려면 규제 완화를 해야 되는 것이고, 성장은 재벌이 하는 것이고, 성장률 나쁠 때는 재벌 개혁은 조금 뒤로 미루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 보수주의 정권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생각"이라며 "'성장이 나쁘니까 재벌 개혁을 접자'가 아니라 '성장을 해야 되니까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하자' 이렇게 가야 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또 "재벌에 의존했다가 (경제정책을) 망친 사례가 많이 있다"며 "예를 들면 김영삼 정부 초기 '신경제 100일 계획' 때는 재벌과 꽤 긴장관계였다가 지방선거 패하고 정치적 위기가 오니까 결국은 재벌을 찾게 되었던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 때 재벌총수 20명을 모셔다가 좁은 방에서 삼계탕을 드시게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가 재벌 권력을 압도했다'는 평가도 했지만 사실은 그 뒤에서 이미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핵심 세력들이 거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게 적나라한 게 나타난 게 2005년 금산법 파동"이라며 과거 정부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재벌도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제 (정권) 초기에 약간 개혁적인 정책이 나오면 '너희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결국은 경제지표 때문에 나한테 항복하러 올 걸?' 이러면서 일부러 투자를 미루는 면도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것을 '자본이 파업한다'고 하는데, 이번 대통령을 포함해서 역대 대통령이 단기 성과에 연연하면 결국 이런 미끼를 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법도 제안했다. 그는 "국민을 믿어야 한다"며 "지도자라면 국민에게 '우리가 어려운 일을 하려는 거다. 이게 마약을 끊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금단증상도 있을 수 있고, 구조 개혁을 하다 보면 아픔을 느끼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 대신 최선을 다해서 정부 재정을 가지고 아픔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안 하면 망하고. 하면 잘살 수 있는 가능성을 노려볼 수 있다. 그러니까 다 같이 가보자'고 호소할 수 있어야 되는데, 마치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6개월~1년 내 고용지표 개선' 등의 단기 성과 위주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 구조개혁을 유권자들에게 설득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또 "가능하면 증세를 통해 재정 적자를 줄이는 게 마땅하다"며 "지금 1년 반 남은 시간이 일할 수 있는 기간이고, 정치 일정 하나 큰 것(6.13 지방선거) 끝냈지 않느냐. 여태까지는 그것 때문에 못했다는 핑계를 대도 이해하지만,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그게 들어갔어야 한다. 이번 개편안에 보유세 증세라든지 초과이윤 공유세제 등이 다 빠졌다.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지금 일이 안 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면 세법 개정안 등이 제대로 안 나오고 있고, 금융 쪽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 등이 제대로 해결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제 부처 장관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이 난국을 풀어야 된다"고 개각도 제안했다. 그는 '김동연 부총리도 개각에 포함시키자는 말이냐'는 라디오 진행자의 질문에 "제가 특정인을 거론하긴 그렇지만 신중하게 범위를 생각해 봐야 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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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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