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맞선 자유인, 약자 품은 수행자" 명진 스님 영결식 엄수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불교계 인사, 세월호 유족 등 추도사

권력의 불의에 맞서고, 사회적 약자들의 곁을 지켰던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이 마지막 길에 올랐다.

대한불교조계종과 시민사회는 25일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명진 스님의 영결식이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엄수했다. 불교, 종교계, 문화예술계, 정치계, 시민사회 인사, 신도 등이 참석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사는 명진스님의 은사인 탄성스님 제자들의 모임인 탄성문도회 회장 도공 스님이 맡았다. 도공 스님은 "그의 삶은 승복의 격식에도, 사찰 건물의 고고함에도 갇히지 않았다”며 “그는 자유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의 탄압과 종단의 만류도 그를 어쩌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힘 없고 기댈 것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들이 믿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의지처가 됐고, 억울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소식이 있으면 지체 없이 그들의 곁으로 달려가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했다"고 말했다.

도공 스님은 "그럴 때마다 그는 망설임이 없었고 거침이 없었으며 두려움조차 없는 듯했다"며 "자기를 내던지는 용기와 헌신을 통해 명진 스님은 석가여래 부처님의 가르침에 누구보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생전 고인과 연을 맺은 이들의 추도사도 이어졌다. 영진 스님은 1994년 종단 개혁에 나선 고인의 모습에 대해 “가사를 벗어 부처님 전에 바치며 종단 개혁을 위해 펼친 사자후는 종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며 “이후 조계종단은 우리 사회 민주화에 발맞추어 민주화와 개혁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를 맡아 당시 정권의 잘못을 꾸짖고 사회의 약자를 더욱 포근히 품어 안으면서도 기도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며 "어두운 거리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현장에, 녹슨 철조망 위에 당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불자이기도 한 세월호 유족 정부자 씨는 "2014년 청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자리를 틀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있을 때 손을 잡아주셨다"며 명진 스님과의 첫만남을 회상했다.

그는 "항상 저희 곁에 계셨던 명진 스님이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돼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며 "명진 스님이 12년 넘도록 주신 사랑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전재수 부산광역시장 등도 추도사와 조사로 고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후 참석자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열린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영결식에 스님들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명진 스님의 법구는 출가 본사인 충북 보은 법주사로 운구되며, 이날 오후 법주사에서 다비식이 진행된다. 49재 후 스님은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묘지 민주열사묘역에서 영면에 든다.

생전 명진 스님은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했고, 약자들과 함께하며 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명박 정부와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간 유착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2009년 용산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고, 사회 원로들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지난 22일 명진 스님은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채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입적했다. 사인은 심정지로 추정된다. 유족은 생전 고인이 수영의 호흡과 참선의 집중을 닮은 과정으로 여기고, 바다에서 하는 호흡을 수행으로 생각했따고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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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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