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협한 대이란 '경제적 디데이(D-Day)'가 경고 사격에 그쳤다. 이란과 경제 거래를 갖는 국가에 대한 2차 제재가 핵심이지만 이란 원유 대부분이 향하는 중국은 언급조차 안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앞두고 강경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란은 경제 제재에 대비돼 있다고 주장하고 호르무즈 통항 규정 위반 선박 명단을 공개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24일(현지시간) 미 재무부는 이란과 그 조력자들에 대한 '경제적 추방 작전' 개시를 발표하며 이란 관련 가상자산, 기술, 금, 항공, 해운 부문에서 활동하거나 이를 지원할 땐 경제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각 부문별로 보면 가상화폐는 제재 회피, 첨단기술은 무기 생산, 금은 환율 안정, 상업 항공사를 포함한 항공은 무기 수송 및 대리세력에 대한 자금 지원, 해운은 무기 부품 및 불법 원유 운송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를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승리 기반을 마련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유했지만, 관련한 구체적 제재 대상 행위 및 제재 대상 국가를 명시하지 않았고 제재 시간표도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및 3자에 대한 2차 제재 경고 연장선에 머문 셈이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왜 지금 당장 제재를 가하지 않느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고 "왜 내가 세계 금융 체계를 폭파하길 원하겠나"라며 "우린 모든 이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을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2차 제재는 매우 강력한 도구"라며 "경고 사격과 기대치를 명확히 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조치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달러 체계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우선 이란과 거래하는 나라들에 "조용한 외교"를 통해 조치 참여를 촉구할 예정이다. 베선트 장관은 회견에서 "각국과 협력하는 가장 좋은 길은 조용한 외교를 통한 것이라고 보고 모든 나라와 입장을 조율하며 우리가 기대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고 그들도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다"며 "미 재무부의 강력 조치가 내려지면 그들은 그들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 원유 90% 향하는 중국 언급 안해…전문가 "미 제재, 주요 국가 실제 조치 전엔 '말'에 불과"
이란 경제 고립 목적 달성을 위해선 이란 원유 대부분이 향하는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베선트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관련 질문을 받고 "누구도 미국의 제재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일반적 답변을 내놨다. 미 의회 자문기구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의 지난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이란 원유 수출분의 거의 90%를 구매한다.
미국은 앞서 이란산 원유의 주요 구매자인 중국 산둥성 소규모 정유업체 여러 곳을 제재했고 이날 홍콩에 기반을 둔 몇몇 업체를 물류·금융 측면에서 이란 핵·미사일 기술 조달을 지원한다는 혐의로 신규 제재 목록에 올렸지만, 중국 정유·금융기관 등에 광범위한 제재를 부과하진 않았다.
다음 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할 예정인 가운데 미국이 중국을 자극하는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대니얼 태너바움은 "이란과 교역을 지속하는 더 의미 있는 국가와 기업들에 대한 조치를 보기 전까지 이번 발표는 말에 그친다"며 "이상적으론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중국을 이란에서 떨어뜨리는 합의를 위한 조용한 외교가 진행돼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큰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린젠 중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중국에 2차 제재를 가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제재와 압박 전술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중국은 관련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우리의 정당한 권익 수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중국 외에도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튀르키예(터키) 등 이란의 다른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해서도 직접 경고를 발신하지 않았다. 이번 전쟁에서 이란 공격 대상이 된 걸프국 중 하나인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지난주 미국과 보조를 맞추듯 이란과의 무역 금수 조치를 발표했다. 베선트 장관은 회견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조치가 "단순 우연은 아니고 (미국 기조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었다고 본다"며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했다.
이란, '통항 위반' 선박 명단 공개로 위협 수위 높여…호르무즈·홍해 선박 피격도 발생
이란은 경제 제재에 대비돼 있다고 주장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알리 마다니자데 이란 재무장관은 24일 이란 국영방송에 미국의 '경제적 디데이' 관련 "우린 오랫동안 이런 날을 예상해 왔고 그들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잇는지도 잘 알고 있다. 정부는 2개년 계획을 수립해 이러한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 왔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특히 인접국에 대해 미국에 협력 땐 페르시아만 전체의 원유 수출을 틀어 막겠다고 경고 중이다.
이란의 경제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미국이 경제 압박 일환으로 이란 해상봉쇄를 지속 중인 가운데 지난주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원유를 거의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인플레이션도 심각한 수준으로 7월 기준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87.9%에 달했다. 생활비에 직접 타격을 주는 식품값은 전년 대비 두 배 넘게(128%)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란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5.4% 감소할 것으로 전망 중이다.
<AP> 통신은 그러나 "경제적 압박이 정치적 압박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미국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 장악을 과시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를 위해 설립한 페르시아만해협관리청(PGSA)은 24일 호르무즈 해협 통과 규정 위반 유조선 45척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 기구는 위반 선박에 대해 벌금, 억류, 압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호르무즈 해협 선박 피격도 계속됐다.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는 24일 오만 아쉬 시샤에서 북동쪽으로 17킬로미터(km) 떨어진 해상에서 유조선 한 대가 정체불명의 발사체에 맞아 기관실이 손상되고 운항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기구에 따르면 같은 날 홍해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에서 서쪽으로 117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서도 유조선이 정체불명의 발사체에 맞아 갑판에 화재가 발생했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이란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24일 얀부항 인근에서 사우디 유조선을 탄도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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