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앤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오는 10월 시행된다. 여당은 검경 협조체계와 피해자 보호가 더욱 두터워진다고 자찬했지만, 범죄 피해자와 법조인 다수는 '앞으로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프레시안>은 범죄 피해자, 그중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를 대리해 온 법조인들을 만나 형사소송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편집자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폭행하고 CCTV가 없는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폭력을 시도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이모 씨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성폭력 의도가 없었으며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조차 몰랐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 씨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중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경찰과 다르게 판단했다. 수사 검사는 이 씨가 성폭행 및 살인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폭행했다고 판단했다. 이 씨의 혐의를 살인미수로 바꿔 기소했으며 피해자 의류에서 이 씨의 DNA가 발견되면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하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경찰이 자신의 편을 들어줬다는 이 씨에 이렇게 말했다.
"질질 끌고 가다가 피해자의 티셔츠가 말려 올라갔을 수도 있겠다고 말한 경찰관이 누구인데요? 그건 잘못된 수사방식입니다. 아시겠어요? 그걸로 본인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판단은 제가 합니다."
수사 검사의 판단이 옳았다. 항소심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류를 검사한 결과 청바지 안쪽에서 이 씨의 DNA가 발견됐다. 이에 재판부는 이 씨에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이후 피해자가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자 재판부는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며 위자료 1500만 원의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경찰의 부실 수사를 검증·보완할 장치가 없다면 범죄 피해자는 지옥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재명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호소할 정도로 간절한 그였다.
그러자 개정안을 추진한 여당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김 씨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산 돌려차기 사건 재수사의 계기는 검사가 아니라 피해자와 언론이었다"는 글을 올렸으며, 보완수사권 폐지에 찬성하는 법조인들도 '피해자 주장과 달리 보완수사권은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수사 검사였던 김세희 변호사(법무법인 더킴로펌)는 어떤 입장일까. 12일 부산 사무실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그는 "그분들 사건기록은 다 보고 하는 말씀이냐"며 여당 측 주장에 즉각 반문했다. 또한 "이 사건은 경찰과 검찰, 공판에서 각자 역할을 잘 수행해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진 사건"이라며 검찰 및 보완수사의 역할이 당연히 존재했다고 단언했다.
15년간 성폭력 전담 검사로 활동한 기록을 신간 <지키기 위해지지 않기 위해>에 담은 김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관련해서는 "너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평했다. 보완수사요구권, 검사 면담권,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등 여러 대안을 마련해 봐야, 검사가 수사 결과를 책임지고 재판장에서 유죄를 이끌어 내던 기존 체계에 비하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불러올 부작용이 엄청날 것은 자명하다"며 "부작용이 어디에서 어떻게 터질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 대책조차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상생활을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삶이 형사 절차에 잠식당하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보완수사와 무관? 사건기록은 보고 말하나"
프레시안 : 김진주 씨가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자 여당 측 인사들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보완수사와 무관하다'는 반론을 내놨다. 해당 사건 수사 검사 출신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김세희 : 그분들이 사건 기록은 다 보고 하는 말인지 묻고 싶다. 경찰이 송치한 기록과 최종적으로 20년 형이 선고된 기록을 전부 다 보고 하는 말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그렇게 판단하셨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그러나 기록도 안 보고 주워들어서 말하는 것 아닌가. 객관적 사실에 맞지 않는 주장이기에 가타부타 의견을 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사건과 관련해 말씀드리면, 중상해죄로 송치된 기록을 받았을 때 성폭력 정황이 의심되는 지점이 세 곳 있었다. 119 응급상황 기록지에 "(피해자의) 청바지가 내려가 있었다"고 적혀 있었던 점, CCTV 영상이 7분 동안 비어 있었던 점, 가해자가 포털 사이트에 강간, 살인 등을 검색했던 점이다. 나는 해당 기록들을 보고 가해자에게 성폭력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해 이후 수사 방향을 정했다.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 진술과 신체·의류에서 나오는 DNA가 핵심이다. 수사 당시 김진주 씨는 병원에 누워 있어서 진술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속옷 등에 대한 DNA 감정도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에 연락해 신속히 속옷을 찾게 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가해자 DNA 감정을 요청했다.
이 상황에서 혐의 입증을 위해 확인해야 할 건 두 가지, 성폭력 목적이 있었는지와 CCTV상 범행 수법에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다. 성폭력 목적을 직감한 건 피의자 조사에서였다. 피의자가 계속 "(피해자가) 여자인지 몰랐다", "내게 눈을 흘겨 기분 나빠 때렸다"고 주장했는데, 정말 기분 나빠서 때린 것이라면 남녀 구분은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계속 여자인 줄 몰랐다고 주장하는 그의 모습에 '여자여야만 하는 상황(성폭행)이 있었구나' 직감했다.
살인의 고의는 CCTV를 통해 확인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5번 가격했을 때 피해자가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다가 늘어뜨린다. 6번째 가격하기 전에 피해자의 눈을 보고, 기절한 것을 확인한 뒤 눈을 보면서 한 번 더 차버린다. 이에 명백히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수사 결과를 토대로 일단은 가장 형량이 높은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하되, 추후 감정 회신이 오면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하면 된다는 의견을 남겼다.
1심에서는 속옷에서 가해자 DNA가 나오지 않아 살인미수 혐의만 인정됐다. 그러나 이후 김진주 씨가 깨어나 "사건 당시에 입고 있던 청바지를 재감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검찰도 강하게 재감정을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받아들여 진행한 재감정 결과 청바지 안쪽에서 가해자 DNA가 검출됐다. 이는 가해자가 성폭행을 목적으로 청바지를 내려 안쪽까지 손을 집어넣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물론 피해자의 노력, 언론의 관심이 이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경찰은 초동수사를 못 하고, 검사는 손 놓고 있다가 피해자와 언론이 힘을 써 해결했다"고 볼 수는 없다. 경찰은 도망치던 가해자를 추적해 빠르게 신병을 확보했다. 또 속옷 등 의류를 확보해 달라는 요청에 빠르게 움직였다. 검찰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수사 방향을 잘 세웠으며 공판 단계에서 성폭행 목적을 입증해 냈다. 경찰과 검찰, 공판에서 각자 역할을 잘 수행해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진 사건이지 일부 주장처럼 특정 몇몇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보완수사권 폐지, 검경 곡소리 나는 현실 하나도 반영하지 않아"
프레시안 :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완수사권이 폐지됐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처럼 검사가 직접 수사에 참여할 수 없고 보완수사요구만 할 수 있게 됐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김세희 : 현실에 맞지 않는 매우 이상적인 제도다. 이미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부작용을 시정하는 방향이 아니라 가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이 개정안이 굉장히 잘 만들어진 형사소송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찰도 검찰도 곡소리가 나는 현실을 하나도 반영하지 않은 개정안이다.
2021년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졌을 때 보완수사요구는 이미 가능해졌다. 보완수사요구가 가진 가장 여실한 한계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보완수사요구를 주고받는 동안 시간이 지체되면서 경찰이나 검사가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면서 사건은 더욱 적체된다. 그런데 이제는 직접 보완수사를 하던 검사들마저 "너희 직접 수사하지 마"라고 막아버렸다.
지금 개정안은 게으른 검사와 경찰이 법대로 시간만 때우기 좋은 구조다. 게으른 검사는 기록 검사하기 귀찮으니 경미한 보완수사요구를 내리고, 게으른 경찰은 대충 송치하고, 보완수사요구가 내려오면 "이 보완수사는 필요 없다"는 수사보고서 한 장 써서 다시 보낸다. 지금도 10개 요구사항 중 5개만 이행해서 보내거나 "기록 몇 쪽에 다 있다, 필요 없다" 하고 재송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면서 "보완수사요구를 이행했다"며 건수를 채운다.
보완수사요구를 한두 달 안에 끝내라는데, 이건 수사 현장을 너무 모르는 소리다. 경찰관들이 가지고 있는 사건이 100건이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송치되는 사건들에 대해 보완수사요구를 보낸다고 한두 달 안에 끝낼 수 있겠나. 못 끝냈다고 징계한다? 성실한 경찰관일수록 보완수사요구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두 달 안에 끝내라고 하는 개정안은 너무 이율배반적이다.
성실한 경찰이 게으른 공소청 검사가 내린 두 장짜리 요구서를 받으면 한 두 달 안에 못 끝내서 책임을 물어야 하니 억울하고, 게으른 경찰은 대충 튕겨내며 실적을 채우는 상황이 발생할 거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피의자 같은 당사자들은 밖에서 지켜볼 수도 없고 개입할 수도 없다. 수사 현장이 너무 힘들고 사건이 넘쳐나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고 본다.
프레시안 :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당사자는 누구인가.
김세희 : 친족 성폭력 피해자, 장애인 피해자를 비롯해 표현력이 떨어지는 약자들이 가장 걱정된다. 이들은 피해를 당했어도 법조인이나 경찰이 요구하는 요건에 맞게 진술하기를 어려워 한다. 조사 결과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요건에 맞게 진술을 끌어내려면 조사 하나하나 공을 들여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니 현장 수사관들이 사건 처리에 쫓기다 보면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 "(혐의) 특정이 덜 됐으니 수사를 더 해야겠다"며 보완수사요구만 왔다 갔다 하다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것이다.
예시를 들어보겠다. 친족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면서 피해 학생에게 "이 얘기 아무한테도 안 했니"라고 묻자 "너무 답답해서 중학교 때 친구한테 얘기했었다"고 답했다. 수소문해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내일모레 군대 간다"고 하더라. 지금 당장 올 수 있느냐고 묻자 오겠다고 했다. 이 덕분에 결정적이고 객관적인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증거로 사용할 수 있었던 건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보완수사요구만 가능하다면 경찰서에 가서 진술하라고 보내야 한다. 당장 검찰청에 올 수 있는 아이를 경찰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해당 절차를 거치는 사이 그 친구는 군대에 가버려서 적절한 시점에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됐을 거다.
친족 성폭력 사건 예시 하나만 더 들겠다. 피해 아동의 경찰 초기 진술이 법정까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찰에서 진술했다가 엄마가 회유해서 진술이 바뀌고, 합의서를 제출해 검찰에 송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검사가 직접 피해 아동을 불러 "괜찮아, 뭐가 걱정되니" 하고 다독이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한다. 아이의 사정을 파악하고 법정에서도 진술이 유지돼야 함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설사 아이가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더라도 '피해자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개정안대로라면 앞서 설명했던 검사의 역할이 생략된다. 경찰은 법정에 들어가는 당사자가 아닌데, 법원에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고려하면서 초동수사부터 마지막 증언까지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상황적으로 불가능하다. 검찰이 직접 피해자를 조사해야 하는 이유를 개정안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여당 측은 그런 우려를 반영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검사 면담권' 제도를 담았다고 한다.
김세희 : 검사 면담권은 증거능력이 없다. 앞서 말한 대로 피해자가 마음을 열고 검사에게 진실을 말했더라도, 검사가 이를 조서로 남겨 법정 증거로 쓸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피해자에게 "내게 이야기한 거 경찰 가서 다시 이야기하라"라고 해야 하는데, 마음을 겨우 연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서에 다시 가서 선뜻 말할 수 있겠나. 검사가 피해자의 마음이 열렸을 때 바로 영상녹화 조사를 하는 등 시의적절하게 수사권을 행사해야 실효성이 있는 거지, 증거능력이 부여되지 않는 면담권은 아무런 대안이 되지 못한다.
프레시안 : 사회적 약자 피해자에 대해 국선변호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했다는 여당 설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세희 : 지금도 국선 변호사들이 봉사활동에 가깝게 일하고 있는데 사건을 더 챙기라고? 시간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한계가 있어 완벽한 수준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애초에 약자 대상 범죄들은 국선변호사 조력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고사리손이라도 보태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을 재판장 앞까지 도달하게 해야 하는데, 중간 역할을 하던 사람들(검사)를 빼버리겠다고 하니 안전하게 도달할 수 없어질 거라 우려하는 거다.
프레시안 :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7대 범죄(아동학대·가정폭력·성범죄 등)에 한해 검찰에 전건 송치, 중수청 전담 부서에 보완수사를 맡기는 대안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김세희 : 중수청 수사관도 결국 법정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검사가 "이렇게 수사해 오라"고 요구했을 때, 중수청이나 경찰이 "내가 왜?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라며 대립하기 시작하면 사건은 답이 없어진다. 서로 잘났다고 싸우다가 사건은 방치되고 피해만 커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폭력 사건에서 수사관이 피해자 진술을 믿지 않아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고 치자. 검사가 보완수사요구를 내리며 "다시 믿고 조사하라"고 하면 수사관 입장에서는 '자기 부정'이 된다. 자기를 부정해 가며 "피해자 말이 맞다" 하고 재수사할 수사관이 얼마나 있겠나. 당연히 이중 절차가 발생하고 수사 효율성은 극도로 떨어지게 된다.
법정에 들어가 공소유지를 하는 검사가 "어떻게 해야 공소유지를 잘할 것인가", "피고인 측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증거를 다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개정안대로면 검사가 판사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수사관을 먼저 설득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된다.
"약자 피해자들에게 펼쳐질 '지옥' 우려돼…오해 풀지 못한 검찰 잘못도 있다"
프레시안 : 김진주 씨를 비롯한 일부 범죄 피해자들은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고까지 우려한다. 김 변호사도 이런 우려에 동의하나.
김세희 : 피해자 입장에서는 "내가 피해자다"라는 사실이 법원 판결로 공식 확인될 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이다. 그 지연되는 시간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의자 역시 마찬가지다.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무원 시험 준비, 취업, 이민, 출국 등 일상생활에 엄청난 제약이 생긴다. 빠르게 무혐의를 확인받든 재판을 받든 해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사건이 적체되고 지연되면서 일상이 파괴된다. 일상생활을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삶이 형사 절차에 잠식당하는 상태가 바로 '지옥'이다. 결과적으로 악질 가해자들만 시간을 벌며 이득을 볼 것이다.
프레시안 : 범죄 피해자들을 비롯해 각계에서 우려가 쏟아지는데, 예상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은 없나.
김세희 : 솔직히 현재로서는 답이 마땅치 않다. 부작용이 일어날 것은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어느 법조인도 예상할 수 없어서 대책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유하자면, 태풍이 오키나와 근처에서 한국을 향해 접근하고 있고 10월 2일에 상륙해 피해를 입힐 것까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정확히 어느 지역에 어떻게 강타해서 무슨 피해를 입히지는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니 막을 방법도 떠오르지 않고 추상적으로만 엉망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총체적 난국이라는 소리로 들린다. 이번 검찰개혁이 갑자기 나온 방안도 아닌데 검찰은 왜 막아내지 못했나.
김세희 : 내가 검찰을 전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형사부 검사의 시각에서 보면 검찰이 '공정해 보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경험했던 분들(검사)을 보면 그분들의 수사에 사적인 목적이 있지 않았고 당위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네가 지금 공정하게 수사하고 있느냐'는 문제제기에 검찰은 설명도 설득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거기다 몇몇 (문제적) 검사들이 모든 검사와 검찰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다 보니 오해와 반발심만 커졌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안 될 수 있었는데, 경고가 여러 번 들어왔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계속 같은 행동을 해온 걸까 싶은 마음이 있다. 형사부 검사들은 내부에서 계속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검찰이 그들 목소리를 경청하고 좀더 존중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반부패수사, 특수수사, 인지수사 때문에 막싸움을 하다 집을 다 불태운 셈이 됐다.
책에 썼듯 검찰 8할을 차지하는, 매일 미제사건에 치여서 불쌍하게 살고 있는 검사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국민들한테 설명하고 우리의 역할이 이런 거라고 했다면, 지금 이렇게 됐을 때 국민들이 좀더 도와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검찰이 양치기 소년이 됐다'고 비유한다. 계속 안 좋은 모습만 보여 왔으니, 진짜 양들이 다 잡아먹히고 있을 때 국민들이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세희 : 신간 <지키기 위해지지 않기 위해>를 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집이 불타게 됐을 때 내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웃음) 책을 내자마자 기록해 놓은 이야기들이 역사 속 이야기가 돼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무척 안타깝기도 하다. 책을 통해 풀고 싶었던 건 검사에 대한 오해다. 미디어나 뉴스에 나오는 검사들이 아니라 아주 평범하게 일하는 검사들 말이다. 검사들이 반부패 수사만 하고 인지수사만 하면 매일 오는 절도, 장애인 피해자 진술 이런 일들을 어떻게 처리했겠나. 특별히 관심받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살림하듯 보이지 않게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 위에서 지지고 볶고 하더라도 무탈하게 사법체계가 굴러갈 수 있었다는 점을 국민들이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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