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착민 폭력 선 넘었다…서안지구 주택 포위하고 수도·전기 끊어

이스라엘군 미온적 대처 '도마'·정착민과 함께 기도하기도…감금 나흘째 해산 시도 실패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이 며칠째 팔레스타인 주민 가옥을 포위해 사실상 감금하고 있지만 뒤늦게 출동한 이스라엘군(IDF)의 미온적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일부 병사는 정착민과 함께 기도하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12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서안지구 나블루스 남쪽 쿠스라 외곽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주택 입구를 막는 전초기지를 세우고 전기와 수도까지 끊은 채 이들을 감금하고 있는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 해산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9일부터 나흘째 집안에 갇혀 있는 주민들을 구출하지도 못했다. 뒤늦게 출동해 성과 없이 물러난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군이 정착민들에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했지만, 목격자들에 따르면 결국 전초기지 텐트 중 하나의 덮개를 걷어내는 데 그친 뒤 철수했다고 한다. 군이 물러나자 정착민들은 포위한 주택 한 곳의 문을 부수려 시도했다.

한 보안 소식통은 군 라디오에 계획이 언론에 사전에 유출돼 "수십 명의 유대인 폭도들이 현장에 도착할 시간이 생겼다"며 이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해산에 실패했다고 해명했다.

이스라엘군은 12일 성명을 통해 "텐트를 철거했고 그곳에 있는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군이 지칭한 민간인은 불법 정착민을 말한다. 군은 보병 대대를 추가 파견하겠다고 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후 13일 이스라엘군은 밤새 쿠스라 및 인근 잘루드 마을 불법 정착촌 전초기지 구조물을 철거하고 장비를 압수했으며 이스라엘인 용의자 한 명을 구금했다고 밝혔지만, 이날 오전에도 포위됐던 쿠스라 지역 주택들 앞에서 정착민들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지난 8일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이 쿠스라 외곽 팔레스타인 가옥 앞에 들이닥쳐 임시 건물을 짓고 근거 없이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영국 BBC 방송이 확인한 보안 카메라 영상에 따르면 이들은 해당 가옥 담을 부수고 그 돌로 집 앞 도로를 차단했다. 이로 인해 최소 두 채의 가옥과 어린이 2명을 포함한 7명의 가족이 고립됐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2살과 4살 딸을 둔 유세프 하산 가족, 18살 된 아들을 둔 쿠사이 아부 리디 가족이 자택에 갇혔다. 이 집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권을 갖고 이스라엘이 공동 보안 통제권을 갖는 서안지구 B구역에 위치한다.

포위된 집 중 하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아이샤 하산은 <로이터>에 "그들은 집 대문을 부수려 했고 우리에게 돌을 던지며 악담과 모욕을 퍼부었다. 공포에 질려 죽을 지경이다"라고 호소했다.

가족이 포위돼 있는 모습을 보안 카메라로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루이 리디(46)는 "이게 진정한 테러"라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토로했다. 23년전 쿠스라를 떠나 미국 오하이오주에 정착한 리디는 형제 쿠사이 아부 리디와 조카가 감금된 모습을 카메라 영상을 통해 며칠째 보고 있다.

그는 "너무 힘든 경험"이라며 "정착민들이 집에 접근하는 걸 볼 수 있는 순간도 있다. 내 형제와 조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보이는데 그건 악몽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일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없다"며 "이 사람들은 괴물이다. 이게 진짜 테러"라고 비판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집에 11일 팔레스타인 구급차가 겨우 들어가 식량을 전달하고 치료를 위해 아이 한 명을 데리고 떠났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과도 인터뷰한 리디에 따르면 감금된 형제 가족엔 식량 2~3일치만 남아 있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스라엘군이 정착민 행패를 방치하는 듯한 영상도 포착됐다. BBC가 공개한 보안 카메라 영상을 보면 출동한 병사들이 정착민 곁에서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 리디는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이스라엘군이 도착해 정착민들을 껴안았다며 "병사들이 내 형제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위험의 일부가 됐다. 누군가 그들의 뒤를 봐주는 것처럼, 이게 이스라엘 정책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12일 이스라엘군은 사건 발생 초기인 9일 출동해 정착민들과 함께 기도를 한 병사들에 징계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이들을 해당 지역에서 내보내진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이 정착민들의 행위를 "불법적이고 비난 받아 마땅하며 용납할 수 없다"고 규탄했지만 즉시 본격 철거 작업에 나서지 않았다.

지난달 인근 잘루드 마을에서도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의 2주 이상 포위 끝에 집 주인인 팔레스타인 가족이 쫓겨났고 정착민들이 그 집을 차지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그간 소유권 주장이 어려운 임시 거처에 거주하는 베두인족을 주로 표적으로 삼아 왔던 정착민들이 최근 마을에서 오래 주택을 소유하고 살아 온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간주하는 서안지구 정착촌을 수십년 간 확장해 정착민 수가 50만 명을 넘겼다. 정착촌을 감시하는 이스라엘 단체 피스나우(Peace Now) 자료를 보면 2022년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연정 집권 뒤 이스라엘 정부 승인 없이 서안지구에 터를 잡는 전초기지 또한 급증해 이달 1일 기준 390곳에 이른다. 서안지구에 대규모 이스라엘 정착민이 거주하는 것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정착민 폭력도 늘고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을 인용해 이스라엘 보안당국이 올해 상반기 서안지구에서 불법 정착민들이 저지른 폭력으로 팔레스타인인 6명이 숨지고 140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82명이 다치고 사망자는 없었던 것에 비해 피해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공격 건수도 전년 동기 405건에서 올해 상반기 660건으로 뛰었다.

▲10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 북동쪽 타이베 지역 북쪽에 위치한 베두인 공동체 인근에 새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 전초기지가 들어선 가운데 불법 정착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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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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