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의 미식과 지역 이야기] ②'그곳에서만'의 경제학

테루아와 로컬리티가 만드는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

지난 글에서 나는 '식당이 많은 도시'와 '미식 도시'는 다르며 미식관광이 성립하려면 그곳에 가야만 하는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대체 불가능함은 어디서 오는가? 왜 어떤 음식은 다른 곳에서 아무리 흉내 내도 '그 지역의 그 맛'이 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열쇠가 바로 '테루아'와 '로컬리티'라는 개념이다. 오늘은 지역 미식의 경쟁력이 태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자리를 들여다본다.

테루아, 땅이 만드는 맛

먼저 '테루아(terroir)'라는 말을 짚자. 본래 와인에서 온 개념으로 프랑스어에서 '땅'을 뜻하는 말에 뿌리를 둔다. 국제와인기구(OIV)의 정의를 빌리면 테루아란 특정 공간의 토양과 기후, 지형, 그리고 그 땅에서 살아온 생물과 사람의 손길이 함께 빚어내는 '총체적 결과물'이다. 쉽게 말해 같은 포도 품종을 심어도 어느 땅에서 길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와인이 나온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테루아가 자연만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도와 고도, 토양과 기후 같은 자연 조건에 그 땅에서 오랜 세월 쌓인 재배 방식과 가공의 지혜, 곧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 완성된다.

그래서 테루아는 돈으로 살 수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수도 없다. 이 개념은 이제 와인을 넘어 모든 지역 먹거리로 확장된다. 특정 갯벌에서만 나는 특유의 짭짤함, 특정 산자락의 안개가 키운 차의 향, 특정 지역의 물과 기후가 있어야 제맛이 나는 발효 음식. 이 모두가 그 지역의 테루아다. 지역 미식의 경쟁력은 바로 이 '옮길 수 없음'에서 시작된다.

▲이탈라아 남부 레몬밭. 이탈리아의 남부 지역의 레몬은 풍부한 일조량과 기후호 인해 단맛이 감도는 고품질의 레몬이 생산된다. 이를 음식, 음료 등 다양한 먹거리에 이용하며 특히 레몬을 이용한 음료와 디저트는 이 지역의 대표 관광 먹거리이다. ⓒ프레시안(문상윤)

'옮길 수 없음'이 곧 경쟁력이다

경제학의 언어로 바꿔 말하면 테루아는 완벽한 차별화의 원천이다.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남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인데 특정 장소에 묶인 미식이야말로 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기 때문이다.

공산품은 어디서든 똑같이 만들 수 있어 결국 가격 경쟁으로 치닫는다. 프랜차이즈의 균질한 맛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편리함이지만 동시에 '굳이 거기까지 갈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지역의 땅과 물, 기후와 역사가 응축된 음식은 다르다.

아무리 유명한 셰프가 서울 한복판에서 똑같은 재료로 흉내 내도 그 지역에서 먹는 그 맛과 그 경험은 재현되지 않는다. 음식을 둘러싼 풍경과 공기, 그것을 만든 사람과 이야기까지가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여행자가 '먹으러' 온다고 했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으러 오는 것이다. 이 대체 불가능성이야말로 지역이 가진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

장소성을 '자산'으로 만드는 제도, 지리적표시제

문제는 이 '옮길 수 없는 가치'를 어떻게 지키고 눈에 보이게 만드느냐다. 좋은 것일수록 이름을 도둑맞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도가 '지리적표시제(GI)'다.

지리적표시제는 특정 지역에서 그 지역의 특성을 살려 생산·가공된 상품에 국가가 그 지역 이름을 붙일 권리를 법으로 보증해 주는 제도다. 유럽이 원산지명칭보호 제도로 파르마 햄이나 샴페인 같은 이름을 엄격히 지켜 온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2002년 '보성 녹차'를 제1호로 시작해 지금은 이천 쌀, 횡성 한우, 순창 고추장 등 수십 개 품목이 등록되어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보성'이나 '횡성'이라는 지역 이름 자체가 아무나 쓸 수 없는 하나의 브랜드 자산이 된다는 데 있다.

그 효과는 실제 숫자로 확인된다. 지리적표시 등록 상품은 그렇지 않은 같은 품목보다 더 높은 값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보성 녹차의 경우 등록 이후 이미지와 품질이 함께 올라가면서 차밭이 다시 관리되고 재배 면적과 농가가 늘었으며 나아가 녹차를 앞세운 관광산업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장소의 이름이 프리미엄이 되고 그 프리미엄이 다시 생산과 관광을 키우는 선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지리적표시제는 눈에 보이지 않던 테루아를 눈에 보이는 자산으로 바꾸는 장치인 셈이다.

'진짜'일 때만 작동한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경계할 것이 있다. 테루아도 지리적표시도 그 바탕에 '진짜'가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장소의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저절로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이름에 걸맞은 실제 품질과 고유성,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직한 관리가 없다면 지역 이름은 금세 공허한 껍데기가 된다. 오히려 이름값만 앞세워 실속 없는 상품을 비싸게 파는 순간, 애써 쌓은 지역 브랜드 전체의 신뢰가 무너진다. 한 곳의 과장이 그 지역 이름을 단 모든 생산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 미식의 경쟁력은 '우리 지역 것'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그 땅이 아니면 낼 수 없는 진짜 차이를 증명하는 데서 나와야 한다.

결국 이번 글의 결론은 분명하다. 지역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곳에서만'이라는 대체 불가능성이며 그것은 땅과 사람이 함께 빚은 테루아에서 나오고 지리적표시 같은 제도로 지켜지고 자산이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진짜'라는 토대 위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소비자와 여행자는 이 '진짜'를 어떻게 알아볼까. 그리고 지역은 어떻게 그 진정성을 지키고 증명할까. 다음 글에서는 미식관광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자산, '진정성'의 문제를 이야기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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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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