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시스템: 가디언 엔젤 (Studio System : Guardian Angel)>은 독립 개발자 '유윌(rytuwil)'이 '알레티 서클(alreti circle)'이란 명의로 2025년 출시한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다. 언뜻 PSX 시절을 연상케 하는 투박한 그래픽과 장르는 이 게임이 최근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의 일환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지만, <스튜디오 시스템>에는 그러한 흐름 속에서 유독 돋보이는 독특한 시스템이 숨어있다. "'슈팅' 태그가 달려 있던데, 스크린샷 상으론 (발사하는) 무기가 하나도 안 보입니다. 이게 뭔 게임인가요?"
해당 게임을 구매하고자 하는 이용자가 스팀 토론장에 작성한 질문이다. 실로, <스튜디오 시스템>의 주인공은 야구 방망이 하나만 들고 다닐 뿐 어떠한 총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일런트 힐>이나 <시그널리스>와 같은 3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들은 주인공이 총을 사용한다 해도 총알을 발사하는 그 액션이 게임의 초점이 아니기 때문에 '슈팅' 게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튜디오 시스템>의 '슈팅' 태그는 잘못 달린 태그일까? 비밀은 카메라 속에 있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고전적 서바이벌 호러 장르에서 특징적이었던 요소인 '고정 카메라' 관점을 뒤틀어, 3인칭과 FPS를 혼합하는 실험적 구성을 선보인다.
고정 카메라의 불안감, 그리고 행위성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를 풍미했던 서바이벌 호러 장르의 공식은 1992년 <어둠 속에 나 홀로>가 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둠 속에 나 홀로>는 인물들은 3D로 구현했지만 기술의 한계로 인해 배경은 사전에 렌더링된 2D 이미지였다. 그러다 보니 3인칭 주인공을 비추는 카메라의 관점은 자연히 특정 위치, 특정 각도에 고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후 <바이오하자드>, <패러사이트 이브>, <사일런트 힐>, <零 ~제로~>, <디멘토> 등에게로 계승되었다. 특히 <사일런트 힐> 이후의 작품들은 배경까지 완전히 3D로 구현할 수 있었음에도 고정식 카메라 연출을 고수했다. 다만 실시간으로 3D 배경이 렌더링되는 작품들은 이를 이용해 주인공이 걸어 다니면 사전에 정해진 방향과 각도로 카메라를 움직이며 따라다니는 변용된 연출을 선보였다. 이는 사용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또 그 움직임이 의도적으로 뒤틀리고 기이했기에 시야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 그리고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공포감을 게임에 더했다. 후일 사용자가 인물을 조작하는 편의성에 대한 불만을 개선하겠다는 이유로 이러한 고정 카메라 형식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불편과 함께 그 특유의 공포감도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이후 호러 게임의 대세는 3인칭에서 2010년의 <암네시아>를 필두로 한 1인칭 게임들에게로 넘어갔고, 2017년엔 <바이오하자드>조차 관점을 1인칭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정 카메라 연출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고유한 감각을 그리워하는 플레이어들이 여전히 있었고, 결국 2020년대 인디 게임계에 고전 서바이벌 호러로의 복고 운동 바람이 불며 고정 카메라는 귀환하게 된다. 2021년의 <알리사>, 2022년의 <시그널리스> 등 작품들은 20년전 서바이벌 호러의 감각을 성공적으로 살려내고, 또 새롭게 진일보시키기까지 했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스튜디오 시스템>의 플레이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그저 전형적 고정 카메라 게임으로 여겨진다. 특히 마찬가지로 사장된 시스템인 '탱크 컨트롤'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인상은 더욱 도드라진다. 그러나 게임의 주요 무대가 되는 학교 지하에 숨겨진 영화 스튜디오에 진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라는 안내가 출력되는데, 이내 고정된 카메라를 직접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레이어는 카메라가 고정된 위치를 조정할 순 없지만, 카메라가 비추는 각도는 마우스를 이용해 움직일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서바이벌 호러 게임들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출이다.
고정되어 있지만 부분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이 카메라는 단순히 관측의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무기의 역할도 수행한다. 여기서 '슈팅' 태그의 비밀이 밝혀진다. 플레이어는 맵 상에서 수집할 수 있는 '카메라 탄환'들을 이 고정 카메라로 발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화면상에 3인칭으로 나타나는 주인공에게서 탄환이 발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조망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화면 중심에 직접 발사되는 것이다. 나아가 플레이어는 상자나 벽 등 게임 세계 내 특정 물체들을 카메라로 똑바로 바라본 상태에서 Q 버튼을 눌러 그 사물을 붙잡고, 마우스로 카메라를 움직여 그 붙잡은 사물도 함께 움직일 수 있다. 카메라를 이용한 물체 조종은 게임 내 퍼즐의 주요한 축이 되는데, 이렇게 카메라는 관찰을 넘어 전투의 역할, 그리고 퍼즐 해결 장치로서의 역할까지 도맡는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주인공을 관찰하며 조종하는 기존 서바이벌 호러의 문법상에, 그 카메라를 게임 속 세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하나의 행위자로 들여옴으로써, 3인칭과 1인칭을 조합하고 또 행위성의 층위를 한 겹 더한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고정 카메라를 부분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함으로써 행위성을 더하지만, 이것이 공포감을 줄이는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사일런트 힐> 이후 게임이 고정 카메라를 사전에 연출된 경로상으로 움직임으로써 불안감을 더했듯이, <스튜디오 시스템>도 카메라의 가동 범위를 적절히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공포감을 더한다. 특히 적들은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으면 기본 구도의 화면 안에선 볼 수 없는 모서리 너머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고, 또 그마저도 카메라 가동 범위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마우스를 움직여도 보기 쉽지가 않다. 결국 플레이어는 화면 너머에 적이 숨어있는지 끊임없이 카메라를 사방으로 움직여가며 자연스레 확인하게 되고, 이처럼 보이지 않는 뒤편이 어디든 존재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끊임없이 조성하는 장치가 된 고정 카메라는 호러라는 게임 장르의 본분에 알맞은 요소가 된다.
<스튜디오 시스템>의 퍼즐 또한 카메라를 1인칭으로 삼아 둘러보는 것으로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3인칭으로 주인공을 움직여 카메라의 위치를 이리저리 전환하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는 요소들을 숨겨놓았다. 퍼즐은 단순히 잠긴 문을 여는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형 및 발판, 장치 등을 카메라로 조작하여 주인공을 이동시킴으로써 맵을 진행하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게임은 행위를 좀 더 용이하게 하는 데에서 도전과 긴장감의 부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의식하고 그 편의성의 함정을 피한다. 고전 서바이벌 호러의 황금기를 되살리고자 하는 인디 개발자들의 의지는 당시 기술적 한계가 부과했던 제약 안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구현하고자 했던 시도가 오히려 미적 표현력과 상호작용 연출을 극대화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스튜디오 시스템>도 복고 운동의 연장선에서 한계가 선사하는 그 독자적이고 기발한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무력감의 미학
<스튜디오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2003년의 <사일런트 힐 3>을 연상시키는 서사와 미학을 기용한다. 십 대 소녀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이면 세계로 건너가 공포와 마주하게 되는 구조는 두 작품이 거의 동일하게 공유한다. 또한 신적인 존재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든지,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대화와 사건, 상호작용의 인과가 이어지지 않는 느낌을 주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 꿈속의 무의식이 숨기고 있는 심리적 주제는 차별화된다. <사일런트 힐 3>의 대주제는 '고통'이라 할 수 있었다면, <스튜디오 시스템>의 주제는 '무력감'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베키 타운센드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는 그 전환기에 처해 있지만, 대학으로의 진학 계획도 없고, 별다른 뚜렷한 진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시기는 어떤 이에겐 청춘의 기대감이 가득한 시기일 수 있지만, 베키에겐 아무것도 뚜렷이 이루거나 성취하지 못한 채 이정표 없이 어른이 되어버리는 불안감만 가득한 시기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색과 질감을 잃은 듯 보인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스튜디오 시스템>만의 고유한 미학이 등장한다.
전반적으로 <스튜디오 시스템>은 피와 녹으로 뒤덮인 듯 붉고 검은 텍스처를 자주 사용하며, 그 어두컴컴한 표면은 숨 쉬는 듯 울렁거리고 움직인다. 적과 사물들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경련하는데, 이는 <사일런트 힐>에서 정립한 '심리적 호러'의 공식이나 다름없다. 현대에 가장 성공적으로 서바이벌 호러를 재방문한 <시그널리스>가 이 공식을 사실상 재정립했고, <스튜디오 시스템>도 그 계보를 직접적으로 이어받았다. <시그널리스>는 심리적 호러의 다른 모든 요소를 새롭게, 훌륭하게 되살리며 거기에 현대적 변용으로 글리치가 일어나 깨지고 흔들리는 화면 효과를 추가했다. <스튜디오 시스템>도 그러한 글리치 효과를 사용하고, 그 외에도 타이틀 화면에서 메뉴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눈은 2017년 <에코>에서, <시그널리스>로, 그리고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계승된 요소다. 하지만 <스튜디오 시스템>이 <사일런트 힐>에서 좀 더 고유하게 이어받은 요소들도 존재하는데, 바로 이 게임의 음악이다. 얼터너티브 록과 인더스트리얼을 병치한 OST는 <사일런트 힐 3>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구성이다. 철 그레이팅 바닥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카메라 구도나 그 안을 걸어가는 보폭에 따라 피로 덮이는 복도 등도 <사일런트 힐 3>을 노골적으로 연상시킨다.
하지만 <스튜디오 시스템>은 2000년대 미래주의적 3D 디자인을 도입함으로써 여타 서바이벌 호러로부터 갈라져 나온다. Y2K 미래주의 특유의 텍스처 없는 단색 로우 폴리곤의 세계가 바로 베키가 말한 "색과 질감을 잃은" 세계로서 도입된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선 검붉은 전형적 서바이벌 호러의 세계와 이 추상적 미래주의의 세계가 번갈아가며, 그리고 때로는 합쳐진 채 등장하며 그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성한다. 이는 2000년대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서바이벌 호러와 함께 진화했다 사라졌던 <미스트>와 <모르페우스> 등의 어드벤처 장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당시에도 아름답지만 어딘지 어색하고 기묘하게, 즉 언캐니하게 사전 렌더링된 빈 공간 속을 아무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종종 불현듯 공포감이 엄습하지 않았는가?
다만 이 명암 없는 색과 질감의 단순화가 낳는 부작용도 존재하는데, 때로 거리나 깊이 감각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주인공의 위치나 맵의 구조가 헷갈리는 현상은 유사한 실험적 게임이었던 2011년도의 <엘 샤다이: 메타트론의 승천>에서 마주칠 수 있었던 문제였다. 하지만 질감 없는 단색으로 뒤덮여 버린 세상에서 사물들을 알아보거나 분간하기 힘든 것은 한편으로 무감각해져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린 베키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나아가 이렇듯 쉬이 알아보기 힘든 게임 속 세계는 난이도에 기여한다. 길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는 피드백의 부재는 소위 말하는 서바이벌 호러 특유의 '벽 비비기'를 통한 진행을 강제한다. 어떤 구간에서는 너무 어두워 아예 주변을 알아볼 수 없는 미로 속에서 주인공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소리가 커지고 작아지는 전화벨 소리에 의존해 길을 찾아야만 한다. 이렇듯 미학의 불편은 어느 정도 게임 내 퍼즐에 기여하며, 또 주제와도 공명한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자연스러운 진행 방향처럼 보이는 경로를 따라가면 나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언뜻 플레이어 통제 바깥의 상황처럼 보이지만 게임이 이끄는 대로 넋놓고 따라가면 안 되고 계속 카메라를 움직여 테두리 바깥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게임의 제목 '스튜디오 시스템’이 가라키는 영화 제작소에서 만들어진 이면 세계는 예술이 삶을 모방하고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 자기 되먹임의 순환 과정 속에 갇혀 연쇄 반응으로 붕괴하고 만 시공간이다. 이는 세상과 분리된 채, 그렇다고 또 스스로의 주체적 행동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휩쓸리기만 했던 베키의 내면과 공명한다. 그녀의 내면은 입력도 출력도 없이 고립된 채 제자리걸음 하며 패배감과 낙담, 포기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으니 말이다.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점을 움직여 실시간으로 틀 바깥에서 단서를 찾아야 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카메라로 추가하는 행위성은 베키가 찾아야 하는 인생의 주도권이기도 하다. 그러니 예상을 벗어나는 설계를 이용해 주체적으로 탐험하고 추리하도록 유도하는 이 게임 속에서 그 알아보기 힘든 미학은 일부분 의도적으로 작동하는 지점도 있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선 이 잠긴 문이 열리는지 안 열리는지, 이 길에 끝이 있는지 없는지, 저 적이 죽일 수 있는 적인지 없는 적인지 명확히 알려주는 표지가 없음에도 계속해서 신뢰의 도약을 할 수밖에 없다. 내 인생을 휘두르는 외부적 존재, 신의 부활을 막기 위해선 거듭 망설임 없이 행동하고 또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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