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11살에 처음 주식을 샀고, 그 경험이 평생의 투자 철학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녀에게 일찍 투자 경험을 갖게 하려는 부모가 늘면서 미성년 자녀 명의의 주식계좌를 개설하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그런데 부모가 대신 주식을 사고팔아 수익을 내면 그 수익까지 증여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과연 부모가 자녀 계좌를 대신 운용해 얻은 수익은 누구의 것일까.
묻어두면 비과세, 굴려주면 증여
원칙부터 살펴보자. 부모가 적법하게 증여한 자금으로 자녀가 주식을 사서 장기 보유했다면,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그 상승분은 자녀의 재산이다. 배당금 역시 자녀의 소득이다. 추가 증여세는 없다.문제는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대신해 적극적으로 매매하는 경우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경제적 가치가 무상으로 이전되는 모든 거래를 포괄해 과세하는 '완전포괄주의'를 취하고 있고, 국세청 예규(재산-2983, 2008.9.29)도 부모의 기여로 타인의 재산 가치가 증가했는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같은 자녀 계좌라도 장기 보유는 괜찮지만, 적극적인 대리 운용은 증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과세 대상은 수익이 아니라 기여의 가치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의문이 있다. 부모가 자녀 대신 투자한 행위를 무상 용역으로 본다면, 과세 대상은 투자수익 전체가 아니라 그 용역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세법도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무상으로 용역을 제공받아 얻은 경제적 이익은 용역의 '시가 상당액'을 기준으로, 그것도 연간 1,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만 과세한다. 예를 들어 무료 법률상담을 받았다고 해서 그 상담 덕분에 얻은 재산 전체를 증여받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무료 경영 자문을 받아 회사 가치가 크게 올랐다고 해서 증가한 기업가치 전부를 자문료로 보지도 않는다.투자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기여에 과세하려면 과세 대상은 자산관리 수수료 상당의 경제적 가치여야 한다. 통상적인 일임 운용 수수료가 연 1~2% 수준임을 고려하면, 자녀의 포트폴리오가 수억 원대에 이르지 않는 한 연간 1,000만 원 기준선을 넘기 어렵다. 법 논리를 제대로 적용한다면 대다수 일반 가정의 대리 운용은 애초에 과세 범위 밖에 있는 셈이다. 투자수익 전체를 부모의 용역 가치로 평가하는 것은 과세 대상과 과세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편법 승계 규정이 일반 가정으로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실무에서는 이러한 용역의 시가를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수익 전체를 '재산가치 증가에 따른 이익'으로 보아 과세하려는 사례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 규정은 원래 기업 승계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나 개발사업, 일감 몰아주기 등을 이용한 편법적인 재산 이전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공개된 시장에서 상장주식을 사고파는 일반 가정의 투자까지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입법 취지와 거리가 있다. 편법 승계를 막기 위한 규정과 정상적인 가족의 자산관리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설령 부모의 기여에 과세하더라도, 그 대상은 투자수익이 아니라 용역의 시가여야 한다는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은 운용이 아니라 소득을 본다
미국도 부모가 미성년 자녀의 계좌를 관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 대신 문제 삼는 것은 누가 운용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소득의 혜택을 받았는가다. 고소득 부모가 자녀 명의를 이용해 투자소득을 분산하는 경우에는 '키디 택스(Kiddie Tax)'를 통해 부모의 세율을 적용한다. 과세의 초점이 부모의 무상 노동이 아니라 소득 이전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 접근이 세법의 목적에도 더 충실하다.우리도 이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공개 시장 대리 매매가 과세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조세회피 목적으로 증여를 가장해 명의만 분산한 경우에는 그 소득을 실질 귀속자인 부모의 소득에 합산해 과세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면, 가족 안의 사적 노동을 화폐 가치로 평가하는 무리 없이도 고소득층의 편법 증여를 차단할 수 있다.
세법은 가족의 협력까지 과세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사업 경험을 전해 주고, 운동을 지도한다. 그 결과 자녀가 더 많은 소득을 올리게 되더라도 세법은 이를 증여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금융투자만은 부모의 시간과 판단이 재산을 늘렸다는 이유로 증여 문제를 제기한다.물론 차명투자나 편법적인 부의 이전은 엄격히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가족의 자산관리까지 증여의 틀 안에서 해석하는 것은 과세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세법은 부의 이전을 과세하는 제도이지, 가족의 협력을 과세하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조세의 신뢰는 더 많이 과세하는 데서가 아니라, 어디까지 과세할 것인지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분명히 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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