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받아쓰기'한 김민석, '노동 계엄' 말한 이재명…정부 대응 적절했나

삼성전자 파업이 드러낸 李 정부 노동관…"삼성 편향, 헌법상 권리 무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하루만 정지돼도 1조 원 손실이 난다. 잠시 멈춰도 수 개월 마비로 이어지고, 공정 내 제품을 전량 폐기해야 한다. 손실은 최대 100조 원에 이를 수 있다. 정상 상태 회복에만 수개월이 걸린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지난 17일 대국민 담화는 근거 없는 '공포론'에 가까웠다. 실현 가능성이 적은 '공장 가동 중단' 상황을 가정하며, 제품 전량 폐기나 100조 원 손실 같은 삼성전자 측 입장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나아가 김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은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 발동할 수 있는 긴급조정권까지 연일 거론하며 노동조합을 압박했다. 삼성전자 노사 교섭 과정에서 정부가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고 노사자율주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동차 공회전' 같은 비가동 상태… "회사 필요할 땐 멈춰놓고"

김 총리 담화문을 먼저 살피면, 파업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된다는 말은 과장된 엄포에 가깝다. 실상 많은 공정이 자동화돼 있고, 안전한 대기 상태인 '비가동 상태(Idle)'로 설비를 유지할 수 있는 데다, 신규 웨이퍼(반도체 핵심 원료) 투입만 중단해도 위험 상황은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동 상태는 자동차 공회전과 비슷하다. 설비 전원은 켜져 있고 모든 기능이 정상 작동할 준비를 마친 채 생산만 멈춘 일종의 대기 상태다. 온도, 습도 등 공장 내 조건의 항상성도 유지돼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즉시 재가동도 가능해, 김 총리의 주장처럼 '수개월의 회복'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을 비가동 상태로 운영했던 이력은 언론보도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수년 단위로 불황과 호황을 반복해 왔다. 삼성전자는 불황일 때 일부 공정을 수개월 간 비가동 상태로 두거나, 심할 땐 전원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멈춰도 공장이 수개월 마비된다'거나 '공장 안전을 위협한다'는 분석은 나온 적 없다.

비가동 상태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누구나 아는 사실에 가깝다. 이는 삼성전자 노사 교섭 때도 충분히 거론된 대안이다. 김 총리는 공장 전원을 아예 꺼버리는 상황을 가정했지만, 삼성전자의 어느 노동조합도 이를 주장한 적이 없다.

우하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20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노조는 필수·유지 업무의 범위와 필요한 최소 인력을 정하는 협상에 수개월 간 성실히 임했다"며 "쟁의행위에 대비해 웨이퍼 투입을 줄이고, 일부 설비를 비가동 상태로 두면, 웨이퍼 폐기도, 설비 손실도 안 일어난다는 건 회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전자 파업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김민석 국무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뉴스

'전량 폐기' 과장과 허구의 논리

'웨이퍼 전량 폐기'도 과장됐다. 회사가 택할 수 있는 사전 예방 조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웨이퍼는 특정 공정 직후엔 공기에 노출되면 오염될 가능성이 크지만, 전량 폐기하지 않고 세정을 통합 재작업을 거칠 수 있다. 무엇보다 신규 투입을 줄이면 이런 위험은 대폭 줄어든다.

웨이퍼를 '보관 가능 공정'으로 옮겨 피해를 예방할 수도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각종 예방정비 때도 하고 있는 과정이다. 비유하면 화재가 난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지 않고, 안전한 보통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는 개념이다. 김 총리 주장은 불이 난 주차장에 자동차를 그대로 주차하게 될 것이란 논리와 같다.

수십 개가 넘는 공정을 제각각 분석해도 공장이 바로 멈춘다거나, 대규모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곧바로 성립하지 않는다. 엔지니어들의 증언을 청취한 우하경 수석부위원장은 "금속 배선(METAL), 박막(CVD), 불량품 검사(EDS) 공정 등은 장비가 가동을 잠시 멈춰도 망가지지 않고, 위험 물질 누출 우려가 없으며, 복구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며 "이는 특정 예일 뿐, 많은 공정이 이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안타깝지만, 정규직 파업해도 공장은 돌아간다"

사전 예방 조치는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방지할 회사의 책임이기도 하다. 노조는 지난 3월 쟁의권을 확보한 후 회사와 협상에서 '쟁의권을 발동할 수 있으니 이에 맞는 사전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해 왔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평시 가동률 90~100%를 전제하는 태도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 A 씨는 지난 19일 통화에서 "실제 생산현장의 대다수는 하청노동자다. 자동화된 공정도 많으나, 일일이 사람 손이 필요한 공정은 대부분 그렇다"며 "체감상 평일 주간엔 7 대 3 정도, 주말이나 야간엔 9 대 1 정도로 하청노동자가 많다"고 말했다. 원청 직원은 흰색 방진복을 입고, 상주 하청업체 직원은 파란색, 그외 하청업체 직원은 하늘색 방진복을 입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 씨는 "실상 공장 설비를 돌리는 손발이 하청노동자다. 이 공정에서 다음 공정으로 가는 이동 흐름에 다 직접 개입돼 있다"며 "씁쓸하면서도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정규직이 파업한다 해도 (회사가 주장하듯) 그렇게 손실이 클 것 같진 않다. 공장은 큰 여파 없이 돌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SBS 뉴스속보 유튜브 썸네일(위)과 JTBC 뉴스룸 보도 썸네일(아래). ⓒ유튜브 갈무리

검증 없이 남발되는 '100조 손실설'

즉 손실액이 최대 100조 원이란 주장은 명확한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이 수치는 다수 경제지는 물론 MBC, JTBC 등의 보도로도 꾸준히 거론됐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21일 통화에서 "어디에선 10조 원, 30조 원을 말하고, 60조 원, 100조 원이라고 보도되기도 하더라"며 "산출 근거나 방식의 객관성이 검증된 추정치도 아니고, 손실액은 실제 파업 후 산출될 수 있음에도 검증이 안 된 추정치가 남발됐다"고 평가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JTBC 관련 보도를 보면, 2018년 삼성전자 평택 공장 정전 사고로 생산라인이 28분 멈추면서 500억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최대 추정치'를 근거로 삼았다"며 "이를 근거로 1분 당 18억 원(하루 환산 2조 6000억 원)으로 계산했고, 이에 따르면 노조가 예고한 18일간의 총파업 손실액 '최대 추정치'는 46조 8000억 원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전·사후 작업까지 감안해야 한다'며 최대 100조 원 손실에 이를 수 있다고 부풀렸다"고 분석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한국 언론은 파업과 관련해 항상 손실을 부각해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는 보도 관행을 보여왔기에, 파업 손실을 엄격하고 신중하게 보도하는 건 더 중요한 문제"라며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은 추정치로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 짓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시작도 안 한 파업에 '노동 계엄령'… 긴급조정권의 위험성

이재명 대통령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이 직접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언급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긴급조정권(노동조합법 제76조)은 노조의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하거나 국민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때'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다.

안우혁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대리인)는 지난 18일 통화에서 "긴급조정권은 '노동 계엄령'과 같다. 전시, 사변 등에 준하는 사태 때 국가가 긴급히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계엄처럼, 국가긴급권과 유사한 성격"이라며 "엄격히 적용되지 않으면 남용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규모와 범위로 (파업이) 진행될지도 확정되지 않아 노조법상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려운데, 사전에 언론과 정부가 긴급조정권 발동을 말하는 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안 변호사는 김 총리 담화문에 대해서도 "삼성전자가 충분히 존재하는 사전 예방 조치를 하나도 지키지 않고, 조합원, 쟁의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 비조합원 등 모든 인력과 관리자가 공장을 버려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을 전제해야 가능한 것"이라며 "언론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검증 없이 받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녹색당도 지난 19일 성명을 내 "노동자와 기업의 권력관계가 대등하지 않기에 헌법은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한다"며 "삼성전자 노동자가 비록 다른 노동자에 비해 높은 소득과 나은 노동조건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사측과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은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통해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권리를 짓누르는 행태는 언제든 다른 노조의 헌법적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재현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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