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놀이다. 하지만… 게임은 정치이고, 경제헹위이며, 현실과의 중첩이다

[게임필리아] 게임으로 인문학하기

게임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한 연구는 전자식 비디오게임이 확산하기 시작하는 1970년대부터 이미 등장했다. 따라서 그 역사가 짧지는 않다. 요는 '어떤' 연구였는지인데, 1970~80년대의 게임 관련 연구가 본격적인 게임 연구로 포함되지 않는 이유는 - 전부 미포함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초반에 출간된 <Mind at play(1983)>나 <The Art of Game Design(국내판 제목 동일, 1984/2005)> 등은 게임 문화와 미학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 초기 저작들이다 - 게임이나 플레이어보다는 게임이 아동과 청소년, 또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효과를 측정하는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들이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게임이나 그것을 플레이하는 사람들, 게임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었다(정확히는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달랐다 하겠다).

게임에 대한 본격적인 인문사회학적 연구가 시작된 시기는 1990년대 초중반이었다.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기술 발전이 두드러졌던 때로, CD롬, 3D 그래픽, 온라인 네트워크 플레이 등이 보급되었다. 이와 같은 기술 발전은 게임의 리얼리즘을 크게 증폭시키면서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방향으로 진화를 이끌었다. 대용량 CD롬을 기반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가상세계를 탐험하는 사유적 몰입의 가능성을 연 <미스트(Myst)>, 혁신적인 엔진을 통해 빠른 속도감과 부드러운 네트워크 플레이로 긴장감 넘치는 경쟁의 미학을 구축한 <둠(Doom)>은 그러한 진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와 같은 게임의 매체적 진화는 사회적 논란 또한 야기했다. 보다 리얼해지는 게임의 핍진성이 그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동반했다. 미국에서 게임등급을 매기는 기관인 오락소프트웨어등급위원회(ESRB, Entertainment Software Rating Board)가 생기는 게 바로 이 시점이다.

▲게임 <둠>의 플레이화면. ⓒ이드소프트웨어

이와 같은 게임의 기술적 진화는 그 미학적 가능성 또한 증진시켰고, 그 가능성은 당시 상호작용성과 하이퍼텍스트 소설을 연구하던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용자/독자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다르게 전개되는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텔링, 즉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주목하던 이들에게 있어 게임은 이미 대중화되어 있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작품이었다. <Hamlet on the Holodeck(국내판 제목: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1997/2001)>의 저자 자넷 머레이(Janet Murray)로 대표되는 소위 '서사론(narratology)'의 부상은 게임에 대한 본격적인 인문학적 연구가 가시화된 계기였다.

서사론은 근본적으로 서사의 관점에서 게임을 본다. 그렇다 보니 게임 고유의 속성이나 구조, 미학 등을 놓칠 수 있다는 '내러티브 중심주의(narrativism)'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등장한 것이 바로 놀이론(ludology)이다. 어렸을 때부터 닌텐도나 세가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란 세대로서 놀이론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의 핵심이 배경 스토리의 전개 또는 이해가 아닌, 그 경험을 발생시키는 구조와 규칙에 있다고 보았다. 또한 '상호작용성'을 강조함에도 다소 수동적 경험 - 대다수의 하이퍼텍스트/인터랙티브 픽션 작품은 디자이너가 설계한 선택지 중 하나를 이용자/독자가 선택하는 것에 그친다 - 에 머물러있는 서사론적 게임플레이 개념에 대항하여, 게임의 플레이어는 경로를 스스로 개척한다는 점 - 예컨대 게임 플레이어는 죽지 않기 위해 매순간 나름의 전략을 짜야 한다 -을 강조했다. 이와 같은 놀이론에서 제시한 이론적 토대가 바로 '놀이(play)'다.

1930년대에 출간된 네덜란드 인문학자 요한 하위징아의 저서 <호모 루덴스>가 게임 연구에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놀이에 있어 구조와 규칙 중심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하위징아의 관점이 놀이로서 게임을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놀이는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라는 것, 규칙을 통해 현실공간과 구분되는 매직서클(magic circle)에서 놀이가 벌어진다는 하위징아의 인식은 게임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하위징아가 놀이의 매직서클이 절대 현실이 침투불가한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근본적으로 놀이가 현실에 '오염'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를 전제했기에, 다분히 현실과 분리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놀이라는 개념으로서 '매직서클'이 통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위징아식의 놀이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현 시대의 대표적 놀이 중 하나인 게임을 이해하는데 분명한 한계점이 있다. 예를 들어 놀이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지만 오늘날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가상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속 사람들의 행동은 여전히 상당부분 현실의 규범에 얽매여 있는 등 게임이라는 놀이는 결코 현실과 유리된 매직서클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즉 하위징아의 놀이론만으로는 오늘날 게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최소한) 게임연구 분야에 있어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이루는 하위징아의 놀이론은 업데이트 될 필요가 있어보인다.

▲대표적 TCG(트레이딩카드게임) <매직: 더 게더링> 시리즈. ⓒWizards of the Coast

놀이가 현실이 될 지라도

2000년대 중반 전후로 매직서클의 개념은 게임연구 분야에서 비판을 받았다. 정확히 말해 그 비판의 대상은 하위징아라기보다는 그의 매직서클 개념을 게임 분야로 들여온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과 케이티 세일런(Katie Salen)이었다. 이들이 저술한 <Rules of Play(국내판 제목: 게임디자인 원론, 2004/2010)>에서 하위징아의 '매직서클' 개념을 원용해 게임을 다소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정의하자, 이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예를 들어 미아 콘살보(Mia Consalvo)같은 연구자는 게임 공략을 위한 팁을 보거나 치트키를 사용하는 치팅(cheating) 행위, 게임 바깥으로부터 얻는 지식이나 정보 등으로 형성되는 게임 자본(gaming capital)의 개념 등을 통해 게임의 매직서클이 현실세계와 상호침투가능한 '열린 공간'임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열린 공간으로서 게임의 개념은 '메타 게임(meta-gaming)'론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메타 게임이라는 개념 자체는 수학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나, 게임 분야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기념비적 TCG(트레이딩카드게임)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의 개발자 리처드 가필드(Richard Garfield)의 메타게임에 관한 강연 및 저술에서였다. 여기서 가필드는 게임 전에 가져오는 것(what you bring to the game), 게임 후에 남는 것(what you take away from a game), 게임 사이에 벌어지는 활동(what happens between games), 게임 중에 발생하는 것(what happens during a game but not in it)의 4가지 범주로 나누어 메타 게임을 설명하였다. 그 핵심은 게임하기 전, 후, 심지어 그것이 발생하는 동안 및 그 사이 사이의 쉬는 시간에도 플레이어가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게임 안팎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즉 게임이 끝나면 플레이어는 매직서클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하위징아와 달리, 게임은 현실에서도 지속된다는 것 - 왜냐하면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현실의 맥락을 게임하는 상황에 끌어오(거나 그 반대로 하)곤 하니까 - 이 바로 메타 게임의 의미다(여담이지만 오늘날 게임판에서 '전략'을 의미하는 '메타'의 어원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매직서클에 대한 비판, 그리고 메타게임론은 결국 '현실과 게임의 중첩'을 의미한다. 즉 게임은 고유한 규칙과 구조에 의해 현실과 유리된 폐쇄적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상존하면서 수시로 열고 닫히는 - 혹은 수시로 신호를 주고 받는 - 창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게임은 결코 하위징아식의 '순수한 놀이'로 환원될 수 없다. 현실의 자원과 규범은 필연적으로 게임 플레이에 개입하고, 게임 플레이 역시 현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질서를 끊임없이 건드린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놀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지만, 그 공간은 스트리밍이나 골드 파밍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노동의 장이기도 하고, 가챠나 아이템 거래로 자본이 오가는 복잡한 경제의 장이기도 하며, 밸런스 패치나 길드 권력 다툼이 벌어지는 정치의 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게임은 - 현실과 유리된 채 노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수행되는 행위가 아니라 - 현실과 겹쳐진 상태에서 여전히 놀이로서 기능하는 어떤 행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게임은 현실의 논리가 어떤 식으로 재구성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실험실이자, 그 틈새에서 플레이어의 주체적 행위성을 고민하는 장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시 '놀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지점으로 돌아온다. 현실과 중첩된 공간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놀이이기에 게임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타협하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보라

게임을 연구한다. 게임플레이는 어렸을 때부터 해왔지만 게임 연구를 접한 것은 대학원에 들어와 우연히 게임학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게임,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대표 저서로는 <게임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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