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올 한 해 2월부터 한 명씩 총 11명의 삶을 구술기록으로 전해드립니다.
26년째 막내
성원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팹에서 CVD(Chemical Vapor Deposition) 설비 정비 업무를 혼자 한다는 것이다. 배정 인원이 한 명이다 보니 다른 사람이 휴가 간다 그러면 무조건 백업을 해야 하고 스케줄 관리에 있어 자율성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나이 들면 눈이 침침하다고 그러잖아요. 그것도 그렇고 체력도 빨리 방전돼요. 웬만하면 사람 좀 붙여줘서 나도 쉴 때 휴가 좀 빼고, 야간에도 뭐 일 있으면, 몸이 안 좋거나 이러면 휴가를 빼거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안 되죠. 여유가 없죠.
중소기업의 한계는 장비에 대한 투자와 인력 배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회사에서는 장비가 낡으면 새로운 발전된 장비를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기존의 장비를 살려서 쓰라는 요구를 하고, 제대로 수리됐는지도 알지 못하는 중고 장비를 들여온다.
우리가 그 장비가 오래된 만큼 개조 개선을 많이 해서 안정화를 했어요. 에러 안 나게. 그러니까 '사람이 없어도 된다' 이런 식으로 나와요. '에러가 많이 안 나네.' 그만큼 우리가 고생해 가지고 그렇게 일궈 놓은 일턴데 이거를 '사람을 줄여도 되겠네' 이 생각을 하는 거죠.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회사는 지금 인원이 적정 인원이라고 생각한다. 입사할 때 성원은 3, 4년 지나면 반장, 직장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인력 충원이 없었기에 현실은 26년째 막내이다.
분진 흡입하면서 일했죠
노후화된 장비를 쓰는 것은 잔고장이 많아 일이 많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CVD 같은 경우에는 실리콘의 박막을 입히는, 절연막을 입히는 그런 거예요. 근데 이 절연막을 만들고 난 부산물이 있어요. 체임버에. 그거는 직접적으로 다 빨아들여야 해요. 하우스 베큠으로 빨든지 청소기로 빨든지 다 빨아가지고 다 제거를 해야 하고 긁어내고 막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직접 드라이버 가지고 막 긁어내고 닦아내고.
보통 사람들은 엄청 깨끗하게 반도체가 딱 깔끔하게 옷 입고 들어가 가지고 먼지 없이 일한다 하는데 저희가 하는 거는 긁어내고 하는 게 엄청 분진 날리거든요. 다 흡입하면서 일했죠. "야 시간 없어! 빨리빨리 해." 막내니까 뭐 압니까?
빨리 해야 하는 것도 있고 그거에 대한 의식이 많이 없었어요. 그때는 다 젊은 사람들이지 병이 나거나 그런 사람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빨리하고 그다음에 맨날 물티슈로 이렇게 닦고 (위험한 거) 모르고 그냥 일하는 거죠.
산업 보건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을 20여 년 전 젊은 노동자들은 보호구도 없이 일을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고 하지만, 과거의 열악했던 작업환경은 현재 협력업체의 작업환경과 겹쳐 진다.
같이 하는 협력업체는 저보다 더 안 좋은 환경이에요. 그 사람들은 아예 파우더를 긁어내는 작업이에요. 그 직접적인 작업을 하는 거고 저는 이제 그 사람들이 했을 때 만약에 좀 덜 치워졌다 그러면 나머지 부산물 그런 거 다 긁어내는 거예요.근데 그분들은 마스크도 안 해요. 우리보다 더 안 좋아요.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 와가지고 그래서 그 일을 오래 안 하시거든요. 다들 막 계속 바뀌어요. 한 5년 일하면 딴 데 가고 더 이상 못하겠다. 그분들이 건강상에 문제 없는지 난 그게 더 궁금해요. 저보다 더 안 좋은 환경에서 그런 일만 계속하는 거예요.
잠깐 일하다 떠나는 사람들. 빠르게 교체돼 사라지기에 피해 사례를 모으기도 어렵지만 가장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던 이들의 몸에 어떤 흔적이 새겨졌을지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그 파우더는 어떤 물질로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분진을 흡입하는 것이 안 좋다는 것은 상식으로 짐작할 수 있어도 정작 그 부산물의 성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반도체가 공장마다 다 달라요. 쓰는 가스가 다르고 케미컬이 다르고 다 달라요.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공급하는 가스에 대해서는 발암 물질 여부가 확인이 다 돼 있어요. 근데 그걸 융합해가지고 나온 부산물에 대한 자료는 없어요. 그리고 그거는 공장마다 다 달라요. 예를 들어 O2가 얼마나 들어갔냐, 그다음에 케미컬이 얼마나 들어갔냐, 합성되는 그 함량에 따라서 다 다르고, 남아 있는 부산물이 얼마나 되는지 다 다르거든요.
성원은 파우더의 성분 분석을 직접 의뢰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작업장의 유해 물질을 측정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원의 말에 따르면 형식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이다.
눈 가리고 아웅 데이터 측정
작업환경 측정 결과라고 있어요. 매년 하거든요. 근데 의미가 없어요. 조끼를 착용해가지고 센서를 다 달아놔요. 그걸 오퍼레이터한테만 주는 거예요. 같은 팹이라고 해가지고 우리는(엔지니어는) 뒤에서 막 파우더 제거하고 이러고 있는데 오퍼레이터는 런만 거는 거예요. 우리한테 주든가 해야... 그것도 단기적이라 매번 똑같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에요. 어떨 때 한 번씩 확 나오는 그런 것도 있고. 그래서 그거는(작업환경 측정 결과는) 그냥 간접적인 건데 그 자료를 맨날 내놓더라고요.
성원이 하는 일에는 오퍼레이터가 베이에서 냄새가 난다고 보고하면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다니는 일도 포함돼 있다. 이때 직접 코로 냄새를 맡으며 찾아야 하는데 유독한 가스를 들이마시게 되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리기도 한다. 이처럼 오퍼레이터와 엔지니어의 일은 다르고 노출되는 위험 역시 같지 않다. 보다 넓은 업무와 위험을 포괄하는 방식의 측정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협력업체한테 줘요. 센서 달린 조끼를 입으라 해가지고. 근데 그 사람들도 하는 거 보면 거슬리거든요. 일을 할 때 좁은 공간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조끼 끼고 가면 막 거슬려서 빼버려요. 누가 그걸 (입고 하겠어요). 빼버리고 다 하고 난 다음에 또 조끼를 입어요. 24시간 관찰을 하든가 차라리.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하니까 데이터는 늘 좋을 수밖에 없어요.
작업환경 측정이란 산업안전보건법 제125조에 따라 작업환경 중 존재하는 소음, 분진, 유해화학물질 등의 유해인자에 노동자가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를 측정·평가하는 제도이다. 적절한 개선을 통해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과 생산성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성원의 말마따나 같은 공간이라 해도 모든 작업자에게 동일한 수준의 노출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작업에 방해가 될 때는 조끼를 치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작업환경 측정 결과가 위험성을 충분히 잘 포착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성원이 작업환경의 위험 요소를 더 민감하게 감지하고 문제 의식을 느끼게 된 것은 그의 몸이 실제로 아프게 됐기 때문이다. 성원은 일한 지 20년이 넘은 시점인 2020년 3월 부신암 4기를 진단받았다.
3편에서 이어집니다.
※ 이름은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가명으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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