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보면 대만은 중국 대륙에 가까이 붙어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떠 있다는 표현은 좀 어색해 보인다. 흔히 양안(兩岸)이라 불리는 중국 푸젠성과 타이완 본섬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고, 평균 60m로 수심도 깊지 않다. 대만해협의 평균 너비는 180km, 가장 짧은 곳의 폭은 131km에 불과하다. 반대로 미국 본토까지의 거리는 비행기로 열 시간이 넘는다. 광활한 태평양을 가로질러야 한다. 본토가 아닌 미국령 괌까지의 거리만 해도 2000km가 훌쩍 넘는다.
하지만 실제로 대만은 중국과 미국 사이 정중앙에 놓여 있다. 땅을 중심으로 보면 중국과 가깝지만, 바다를 중심으로 보면 미국과 훨씬 가깝다. 미국의 영토는 매우 복잡하다. 그 대부분이 북미대륙의 캐나다 이남, 멕시코 이북에 자리잡은 본토에 속해 있다. 이에 더해 북쪽의 알래스카, 서쪽의 하와이 이렇게 두 개의 주(州)가 본토와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공식적으로만 봐도 미국은 괌, 북마리아나 제도,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미국령 사모아 등 5개의 영구 거주 영토와 대체로 작은 섬들인 11개의 무인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땅과 함께 광대한 바다에서 나온다.
미국의 해양 강국이다. '대항해시대(The Great Discovery)' 이후 현재까지 세계적 패권을 잡은 나라들은 모두 해양 강국이다. 포루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 등 유럽의 해양 강국들이 서로 패권을 다퉜고, 양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미국이 그 패권을 이어받았다. 원거리를 연결하는 '해양 운송' 능력, 그를 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막강한 '해군'력, 그리고 해양 운송과 해군을 유지하기 위한 '보급 기지'가 그 패권을 지키는 힘이었다. 경제력과 농업과 제조업 생산력, 에너지 통제력, 통화 패권, 그리고 소위 '소프트파워'가 해양 패권을 뒷받침했다.
미국은 본토의 동서로 드넓게 펼쳐진 대서양과 태평양, 그 둘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지브롤터 해협 등 세계 해양 운송에서 핵심적인 바닷길 들은 모두 미국 또는 그 동맹국들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차지하려는 이유 역시 북극항로가 향후 핵심적인 바닷길로 떠오를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은 이전의 해양 강국들처럼 그 통제권을 지키기 위해 넓은 식민지를 유지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해외 영토만을 보유하면서, 나머지는 군사동맹이나 군사기지 배치 그리고 강력한 항모전단 운용으로 해결한다. 그렇게 미국이 통제권을 가진 주요 해협 중 하나가 대만해협이다.
패권 국가 그리고 해양 강국으로서 미국의 영향력을 명쾌하게 지도에 표시하기는 어렵다. 동맹이 변하고, 분쟁이 일어나는 등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일본과 필리핀이라는 강력한 미국의 동맹국 사이에서 미국의 바다 태평양과 인접한 대만은 미국과 무척 가까운 나라임이 분명하다. 땅을 중심으로 보면 중국과 더 가까운 것이 분명하지만, 대만은 미국의 바다와 닿아 있다.
경제적으로 봐도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떠 있다. 중국은 대만의 최대 교역국이다. 홍콩까지 포함하면 중국은 대만 교역량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중국과의 경제 교류 없이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만을 떠받치는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TSMC는 미국이 추구하는 반중 경제권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한 반중 반도체 밸류체인의 핵심이다. 중국 난징(南京)에 공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핵심 생산시설은 대만 그리고 미국, 일본 등으로 분산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파운드리 기술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대만은 생존 자체를 장담할 수 없다.
대만이 사용하는 통화인 뉴타이완달러(NTD)는 미국 달러와 고정돼 있다. 환율도 USD에 연동돼 움직이고, 실제로 미국 달러를 대만에서 환전하면 환전 수수료도 거의 받지 않는다. 경제의 가장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안보 역시 미국의 절대적인 우산 아래 있다.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대만의 전략은 한마디로 '미군이 올 때까지 상륙을 막고 봉쇄를 버틴다'로 요약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보면 어떨까? 대만은 현재 중국 본토를 제외하면 가장 중국 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다. 한자 문화권, 유교 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일본, 비엣남은 물론이고 중국 이민자들의 나라라 할 수 있는 싱가포르와 비교해도 그렇다. 장제스 국민당이 ‘국부천대(國府遷臺)’하면서 함께 이주한 본토 출신 외성인(外省人)들이 인구의 10%나 된다. 1987년 계엄령 해제 이후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인구 비율을 훨씬 뛰어넘는 영향력을 가진다. 그들에게 대만은 ‘우리 중화민국이 공산당에게 쫓겨 잠깐 와있는 지역’일 뿐, 그 정체성은 대륙의 중국인이다. 중국 문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물 역시 타이베이 국립 고궁박물관에 가득하다. 대륙에서 이젠 쓰지 않는 전통 한자(漢字)도, 문화대혁명으로 핍박받은 공자의 후손도 대만으로 건너와 있다.
반면에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미국화된 나라 중에 하나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미국보다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다. 오래 지속된 독재 이후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민주화를 이뤘다. 중국 본토가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중국계 화교(華僑) 및 화인(華人)들과 폭넓은 교류가 이뤄졌다. 영어를 할 줄 알면 일상생활도 큰 지장이 없고, 정서적으로도 중국보다 일본이나 미국과 훨씬 더 가깝다. 대만 젊은이가 중국과 미국에서 몇 년씩 살아야 한다면 중국어가 통하는 중국보다 구글을 쓸 수 있고 대통령을 조롱해도 잡혀가지 않는 미국을 더 편하게 느낄 것이다.
물론 혈연적으로는 중국과 훨씬 더 가깝다. 미국은 세계 전 지역의 이민자들이 어울려 사는 나라지만, 그 주류는 유럽계 백인이다. 외성인들은 아직 부모가 살던 본토에 소속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본성인(本省人)’이라도 중국에서 일하는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미국에 이민 가서 사는 친척이나 친구도 많다. 혈연적으로 중국과 가깝긴 하지만, 중국식 통제 사회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대만 젊은이들에게 그런 거부감이 확산된 결정적인 계기는 홍콩의 '우산혁명'이었을 것이다. 2014년 홍콩에서 벌어진 광범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이 처절하게 실패하면서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중국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대만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됐다.
개인적으로 나의 취미는 바둑과 야구다. 둘 다 열심히 즐기기도 했고, 지금도 바둑과 야구 관련 중계나 뉴스는 챙겨보는 편이다. 바둑은 세계적인 두뇌 스포츠이고, 야구 역시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다. 하지만 생각보다 바둑이나 야구를 즐기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인도나 남미,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는 야구도 바둑도 큰 관심이 없다. 바둑은 한중일과 대만에서 즐긴다. 야구는 중남미, 호주 등에서 즐기지만 제대로 된 프로리그를 가진 나라는 한미일과 대만뿐이다. 바둑은 중국에서 유래한 전통문화고, 야구는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다. 현재 전세계적인 패권 전쟁을 벌이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바둑과 야구를 둘 다 즐기는 나라는 한국, 일본 그리도 대만이 전부다.
뿌리 깊은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 급속하게 미국화된 현재의 문화. 그 두 개가 공존하는 것이 타이완이 가진 이중적인 정체성이다. 가장 중국적인 나라인 동시에 가장 미국적인 나라다. 중국어를 쓰고, 미국 달러와 연동된 통화를 사용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 역시 중국과 미국의 영향 사이에 놓여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문화는 중화 문명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싸우며 우리 민족만의 문화를 만들고 지켜왔다. 조선왕조가 끝난 후에는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며 가장 성공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우리가 이뤄낸 근대화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세계질서, 즉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동참한 것과 다르지 않다. K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 누군가 그 스타일을 ‘가장 동아시아적이면서도 가장 미국적인 대중음악’이라고 평가한다 해도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중국의 변방’, ‘미국의 변방’으로 살면서도 그들이 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지키며 독창적으로 만들어온 것’이 어쩌면 한국 문화의 가장 객관적인 정체성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곧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지에(春節)'가 다가온다. 대만 사람들은 열흘 가까운 연휴를 맞아 친척들을 만나고 명절 음식을 나눌 것이다. 빨간색 종이에 쓴 '춘리엔(春聯)'을 문에 붙이고,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 아이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그 열흘 동안은 마치 대만이 중국 본토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연휴 중에도 대만 젊은이들은 유튜브와 구글로 검색하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할 것이다. 중국에서 일하는 친구와 소통하기 위해 잠시 위챗을 쓰겠지만, 라인 메신저를 전화 통화보다 훨씬 더 많이 쓸 것이다. 무엇보다 최고지도자의 권위나 정부의 방침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삶을 받아들이기에는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사고방식은 이미 너무나도 미국화가 돼 있다.
가장 중국적인 동시에 가장 미국적인 타이완의 정체성은 심각한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두 나라의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양쪽으로부터 구애를 받았다가, 두들겨 맞기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항상 기회이기도 하다. 그 위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지에 그들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그 위기와 기회는 대한민국 역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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