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21세기가 되면서 한국에서나 다른 나라에서나 '중년의 불안'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고용 불안정성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65세부터인데 지금 다니는 직장을 64세 11개월 29일차까지 다닐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이라도 기술을 배워서 자격증을 따거나 은퇴 후 파트타임으로 일할 '다른 자리'라도 알아봐야 하나.' 이런 고민들은 이제 새롭지 않은 '뉴 노멀'이 됐다.
현직에 계시는 분들께는 민망하게도, 이런 류의 이야기 끝에 오르내리는 '다른 자리'라는 건 전통적으로 택시·경비·청소 등의 직렬이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택배·배달'이 여기에 추가됐다!)
송은주 작가의 <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는 재목만 보기에는 일견 이같은 중년의 불안을 겨냥한 책으로 보인다. 부분적으로는 실제로 그렇게 읽힐 여지도 있다.
청소노동자로의 '전직' 이전 직업이 전업주부라는 것은 그러나 생각보다 큰 차이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바니걸 위장취업기나 허환주의 <현대조선잔혹사> 또는 뉴욕타임스(NYT)의 네일살롱 탐사보도와는 다른 결의 의미를 갖는다.
오히려 결혼·출산·육아로 단절되고 고립된 삶을 산 여성들이 축구, 달리기, 사람들과의 관계맺기 등을 통해 삶의 주체성을 되찾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책들과의 유사성이 더 크다.
이 책은, 남편은 은행 지점장이고 집은 서울 삼성동인 중년의 교회 집사님이 호텔 청소 일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가사노동이 돈으로 환산되는 마법에 매료"되기 시작했다는 지인의 전언과, 이에 귀가 솔깃해진 저자가 가족이 운영하는 병원 청소 일을 시작하는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다만 이같은 도입부나 책 제목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몇 챕터와 에필로그 정도를 제외하면 청소 일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나 그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책은 대신 청소노동자가 됨으로써 저자가 비로소 벗어나 마주볼수 있었던 이전의 '고립'과 '단절'에 대해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자식·손주들 먹이는 데 유달리 집착했던 저자의 시어머니 등 한국의 노년세대 여성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회 진출' 대신 텃밭 가꾸기에 갇힌 저자의 친정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타자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에 가깝다.
특히 학원 강사로 일했던 저자 자신의 경력을 포함, 설사 여성이 임금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많은 경우 그 성격이 가사노동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주변화돼 있음을 지적한 대목은 눈길을 끈다.
학생 시절 공부를 잘했지만 결혼 후 전업주부로 있다가 아이가 크고 나서 학력을 살려 보습학원·공부방 선생님으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서로의 아이를 바꿔 가르치는' 것으로 비유된다.
저자는 이와 관련 "남성이 자기 가사도우미와 결혼하면 GDP가 감소하고,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면 GDP가 상승한다"는 경제학자들의 농담을 "엄마가 집에서 자기 아이를 가르치면 사교육비가 감소하고, 엄마가 학원으로 출근하면 사교육비가 상승한다"고 변주한다.
경제학자들의 저 '농담' 역시 가사·돌봄노동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지적임은 물론이다.
다만 청소·세탁·요리·돌봄이 가사노동의 울타리 내에 머물 때와는 달리 '집 밖'의 노동이 되면서부터는, 노동의 성격 자체는 달라지지 않더라도 여성을 '자식(가정)이라는 우상'에게서 해방하는 효과는 있어 보인다.
집에서 남편·자식들이 어지른 것을 치울 때는 한없는 무력함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저자는, 병원 청소 일을 하면서는 "무기력하게 늘어지던 아침에 탄력이 생겼다. 어딘가 갈 곳이 생겼다는 것, 할 일이 생겼다는 것,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됐다는 것, 내가 이 사회에 쓰임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발맞추고 있다는, 오래전 잊은 유용함에 대한 감각"을 자각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한편 여성이 집에서 가사노동 전담자가 되는 동안 "자신의 쓸모를 이미 150% 이상 밖에서 소진하고 들어온 껍데기"가 돼, 집에서는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해진 남성들에 대한 지적은 많은 이들을 뜨끔하게 만들 것이다.
일찍 귀가해 육아·가사일을 분담해 달라는 요청을 귀담아듣지 않아 배우자에게 "육아에 있어서 왜 나(여성)만 디폴트여야 하는가"라는 원성을 듣고 또 해야 하는 현실. 이를 보며 저자는 탄식한다.
"세계사에 유례 없는 대한민국의 낮은 결혼율과 출생률은 나와 어머니를 보고 자란 딸들, 하지만 우리처럼 바보같이 살지 않기로 작정한 똑똑한 여자들이 바깥일을 선택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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