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포기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휴전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주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만남 뒤에도 크림반도의 러시아 영토 인정 관련 입장을 고수하며 우크라이나에 더 나은 타협안을 제시할 여지는 내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주"를 중대 기한으로 언급한 미국의 재촉에도 러시아는 합의 조건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미적댔다. 러시아는 주말 재차 우크라이나를 공습해 4명이 숨졌다.
미 ABC 방송, 영국 BBC 및 <가디언>을 보면 27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바티칸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 참석 뒤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취재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공격을 게속하는 데 대해 "매우 실망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총격을 멈추고 앉아서 협상에 서명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2차 제재"를 언급하는 등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면 전날 바티칸에서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이 "더 차분해진 것 같았다"며 "그가 협상 성사를 원한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이 "잘 진행됐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고 요청했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완화적 발언이 휴전 협상에서 더 나은 제안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 지난 25일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미국의 휴전 제안엔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러시아가 2022년부터 벌인 전쟁에서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및 남부 루한스크, 도네츠크, 자포리자, 헤르손에 대한 러시아 통제권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취재진에게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에서 크림반도 문제도 "매우 간략하게" 논의됐다며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포기할 것으로 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25일 공개된 미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도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남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영토 인정은 우크라이나와 트럼프 대통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가 입수한 우크라이나와 유럽 쪽이 지난주 런던 미·우크라·유럽 실무 회담에서 미국 쪽에 제시한 휴전안도 "영토 문제는 완전하고 무조건적 휴전이 이뤄진 뒤 논의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미국안과는 차이가 크다.
<가디언>에 따르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27일 독일 공영방송 ARD에 미국의 우크라이나 영토 양보 제안은 "항복이나 다름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평화 협정이 영토 양보를 수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최근 미국 대통령 제안만큼 멀리 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트럼프) 제안에 포함된 건 우크라이나가 1년 전에 스스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꼬집고 "이는 항복이나 다름 없다. 어떤 추가적 가치도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쪽 이견이 빠르게 봉합되기 어려워 보이지만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번 주"를 결정적 시한으로 제시하고 빠른 합의를 재촉했다. 루비오 장관은 27일 미 NBC 방송에서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 관련 체결에 소요될 기간 관련 질문을 받고 "이번 주는 우리는 이 일에 계속 관여할지, 아니면 다른 문제에 집중할지 결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주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루비오 장관 발언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직접 협상에 나서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인지, 트럼프 정부가 진지하게 중재에서 물러날 것을 고려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독촉에도 러시아 쪽에선 합의가 임박했다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은 27일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합의에 도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여전히 세부적으로 조정해야 할 몇몇 구체적 요소들이 남아 있다"며 서두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7일 러 국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 대통령궁) 대변인도 우크라전 합의 조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에도 주말 재차 우크라이나 공습에 나서 우크라이나에서 4명이 숨졌다. <AP> 통신은 우크라이나 공군을 인용해 27일 오전 러시아가 무인기 149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전역을 공습했다고 보도했다. 지역 당국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도네츠크 지역 코스티얀티니우카에서 3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 남동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 파블로흐라드에서도 1명이 죽고 14살 소녀 1명이 다쳤다. 남서부 오데사, 헤르손에서도 부상자가 나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공습을 줄이겠다고 시사하지도 않았다. 라브로프 장관은 CBS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한 지난주 12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낸 키이우 공습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는 군사적 목표물과 군이 사용하는 민간 시설만 목표물로 삼는다"며 키이우에서 공격 받은 시설이 "완전한 민간 시설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우크라이나군, 외국 용병, 유럽이 파견한 교관이 사용하는 시설을 계속해서 목표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28일 <타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에 공습을 통해 반격했다. 지역 당국은 이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접경지대 러시아 브랸스크에서 민간인 1명이 죽고 여성 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통신은 러시아가 부분적으로 점령한 도네츠크 지역 호를리우카에도 우크라이나 발사체 공격이 이뤄지며 민간인 1명이 죽고 6명이 다쳤으며 주거 건물 한 채 및 민간 시설 두 곳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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