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려놓은 일 수습 안되는 트럼프, 뿔났나? 크림반도 포기 안 하는 젤렌스키 비난

밴스 '영토 포기 요구', 보도된 러 '전선 동결' 제안과 유사…미 국무는 돌연 유럽 및 우크라 회담 불참도

2014년 강제 병합된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라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 쪽 제안에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며 우크라전 종전 협상이 다시 삐걱대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영토 포기 요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거부할 경우 중재를 포기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협상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비난한 가운데, 미국 중재 시도에 말뿐인 동조를 이어 오며 시간을 끌고 있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올 들어 최대 공습을 가하며 협상 의지를 의심하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의 본인 계정을 통해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이 "협상에 매우 해롭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원했다면 왜 11년 전 (러시아가 침공했을 때) 총 한 발 쏘지 않고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넘겼나?"라고 비난하며 크림반도가 이미 "상실"된지 오래고 "논의의 대상조차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쓸 패가 없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동적 발언" 탓에 "이 전쟁 합의가 매우 어렵다"고 비난했다.

전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기서 더 말할 게 없다. 이는 우리 헌법에 반한다"고 분명히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종전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는 보도에 이어 나왔다. 최근 <뉴욕타임스>(NYT), 미 CNN 방송 등 복수의 외신은 미국이 지난주 프랑스 파리에서 우크라전 종전 관련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및 유럽 고위 당국자들과 회동했을 때 이 같은 제안을 내놨다고 유럽 당국자 등을 인용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 점령된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가 계속 통제하도록 하는 안도 제시했다고 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아무도 젤렌스키에게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3일 JD 밴스 미 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화하며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 미국이 중재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최후통첩식 발언을 내놨다. 영국 일간 <가디언>, <AP> 통신을 보면 이날 밴스 부통령은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매우 명확한 제안을 내놨고 이제 그들이 이를 수락하거나 미국이 이 (중재) 과정에서 물러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매우 공정한 제안"은 "영토 경계를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동결"하는 것을 의미하며 "물론 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 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영토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2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미, 우크라, 영국, 프랑스, 독일 장관급 회담 참석을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장관급 회담이 연기되고 실무진 회의로 격이 낮아졌다.

태미 브루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2일 루비오 장관 불참이 "회담 관련 메시지는 아니며 일정 문제"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가디언>은 이러한 행위가 트럼프 측근과 우크라이나 및 유럽의 긴장 고조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봤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우크라이나는 런던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지지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30일 임시 휴전안을 논의하고자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쪽 제안에 집중하길 원했다고 행정부 내부 계획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루비오 장관 불참이 미국이 우선적으로 러시아와 협력하고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소외시키려 한다는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러 국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22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러 대통령궁) 외교정책보좌관은 지난 1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스티브 윗코프 백악관 특사가 이번 주에도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23일 별도의 보도에서 푸틴 대통령과 윗코프의 만남이 25일 이뤄질 수 있다고 미 매체 <악시오스>를 인용해 전했다.

밴스 '영토 포기 요구', 보도된 러 '전선 동결' 제안과 유사

러시아 쪽은 협상 관련 미국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실질적 진전엔 미적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이달 초 윗코프와 만났을 때 현재 전선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동부 및 남부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 네 곳 모두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해야 한다는 기존 요구에서 물러선 것이다. 이는 23일 밴스 부통령이 설명한 미국 제안인 "영토 경계를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동결"해야 한다는 발언과 유사하게 읽힌다.

<가디언>은 이는 푸틴 대통령의 "첫 구체적 양보" 제안이지만 러시아 정부 구상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더 광범위한 러시아 쪽 조건을 수용하도록 이끌기 위한 전략적 계책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러시아가 이전 협상에서도 입장을 완화하는 듯 하다가 곧 새 조건을 제시하곤 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미 카네기국재평화재단 정치분석가 알렉산더 바우노프가 "푸틴은 트럼프에게서 떨어질지, 아니면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계속 그를 이용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듯 하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바우노프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늘릴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 중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은 러시아를 특별히 두렵게 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대부분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동했다고 설명됐던 최근 몇 달간의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4일 새벽 러시아의 키이우 공습은 러시아의 휴전 의지를 더욱 의심하게 한다. <로이터>, 영국 BBC 방송 등을 보면 이날 러시아는 올해 들어 키이우에 가장 심한 공습을 가했는데,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에 따르면 이로 인해 최소 8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70명이 넘었다. 건물 12채가 파괴된 가운데 잔해에 매몰된 주민도 있어 사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이날 공격이 주로 키이우로 향했으며 러시아가 탄도미사일 11대를 포함한 미사일 70대, 무인기(드론) 145대를 동원했고 공군은 112개 목표물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키이우를 향한 러시아의 "악랄한 공습"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가 평화의 걸림돌임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 공습이 가해지며 무인기(드론)가 폭발을 일으켰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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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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