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드대에서 프랑스문학·비교문학 교수로 있는 마리나 반 주일렌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에 대한 찬사>(박효은 옮김. 피카 펴냄)는 제목 그대로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의 가치를 조명한 책이다.
한국 등 동양 정신문화의 유산을 짊어진 나라들에서는 <도덕경>, <채근담> 등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기에 어느 정도 익숙한, 그러나 개성과 경쟁을 강조한 미국·프랑스 사회에서는 비교적 새로울 저자의 주장은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이란, 헛된 야망의 실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책 29쪽)"이라는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흥미로울 지점은 '평범함과 중용(!)의 미덕'이라는 책의 주제의식 그 자체보다, 오히려 동양적 사상·문화에서 비교적 익숙한 이 아이디어가 서구의 지적 전통에서는 어떻게 발굴·해석되는지일 수 있다.
예컨대 저자는 "적당한 평범함이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호라티우스, 마르티알리스의 글이 이를 증명한다. 당시 중용은 하찮은 성과나 답보상태를 합리화하는 구실이 아니었다. 평범함은 정말로 황금과 같이 여겨졌다. 특히 '황금의 중용'은 무천 신중한 자들이 성공과 자기애로 인해 삶의 균형이 꺄지려 할때 극단을 멀리하기 위해 선택한 미덕이었다(39쪽)"라고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의 가르침을 현대에 부활(르네상스)시킨다.
소박함과 실질강건을 숭배했다는 공화정 로마에서는 영광스러운 개선장군의 귓가에 노예가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라고 속삭이는 관습이 있었다는데, 이를 상기시키는 면이 있다. 다만 후대 로마제국의 궁정에서 향락과 사치가 유행하고 기괴한 식도락과 패션이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모든 로마인이 '황금의 중용'을 중시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자는 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을 막아주는 신중한 거리두기로 여겼던 중용을 우리는 과단성의 결여나 비겁한 무관심으로 바라보는 듯하다(44쪽)"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어, 즉 우리의 어쩔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귀중한 중용"의 가치를 강조한다.
고대·중세의 한국과 중국 공무원 공채시험, 즉 과거제도의 기본 출제과목인 '사서삼경'의 <중용>은, 책에 인용된 그리스 신화 속 다이달로스의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날지 말라'는 부정(父情)어린 당부 속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로마 철학의 가르침을 끌어와 당대의 풍조를 비판하는 것이 르네상스 이후 서양문화권에서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엘리트 사회에서 평범하다는 것은 심각한 핸디캡이자 수준높은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나아가 사회적 사형선고와도 같다고 여긴다(69쪽)"는 비판, 그리고 "예술의 유혹 중에서 가장 천박한 유혹은 천재인 체하고자 하는 유혹"이라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책에 재인용됨)은 '대(大)유튜브 시대'의 도래와 광고·미디어 등 대중문화산업 분야 전반에서 천재·괴짜임을 스스로 연출해야 성공할 수 있는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들은) 덧없는 성공을 좇는 데 온 생애를 걸었다. 명예의 꼭대기로 갈 수 있는 사다리를 오르는 일에 정신이 팔린 그들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경쟁자들에게뒤처질까 봐 언제나 노심초사했다. 그들은 야심에 가득 차 있고 도발적 언동을 자주 하며, 편지, 인터뷰, 대화에서 비타협적 태도를 드러낸다(96쪽)"는 비판은 20세기 미국의 소설가와 화가들을 겨냥한 것이지만,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현대인들은 드물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인의 성공과 행복을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지만 "현실을 무시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평범한 삶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 자신이 우리가 품은 원대한 야망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해도, 우리가 열망하는 진리와 성공은 대개 타인의 성공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70쪽)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경쟁에서 승리해 남들 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를 경계한다. 그는 "능력주의가 폭군이 되는 현상은 대개 과정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중요시할 때 일어난다(136쪽)"고 지적하며 마이클 샌들을 인용해 "능력주의는 시민적 감수성에 유해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샌들의 저서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부추기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며 연대를 훼손하는 능력주의를 불러올 뿐", "스스로를 자수성가한 사람 또는 자기충족적인 사람으로 볼수록 감사와 겸손을 배우기가 어려워지며, 그런 감정이 없다면 공동선에 대한 배려도 힘들어지게 된다"는 문구를 인용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한국 독자들에게 흥미로을 지점 또 하나. '뛰어난 학식과 지혜를 가졌으나 세속적 권력과 명성을 버리고 초탈한 은자의 삶을 산 사람'들의 사례는 동양 고전 속에는 흔한 반면 서양에는 드물 것 같지만, 글쎄 그렇지도 않다. <장자>처럼, 수레바퀴를 깎는 천대받던 기술자나 도둑의 일에도 도(道)가 있다는 가르침도 그렇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생전 가장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혔음에도 높은 것과 낮은 것, 명성과 소박함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려 했다. 그래서 빈의 호화로운 저택에 살았던 갑부 집안 출신임에도 오스트리아의 작은 산골 마을에 들어가 무척 소박한 삶을 살았다. (158쪽)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 역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평범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러시아 철학자 세스토프는 <비극의 철학>에 이렇게 썼다. '톨스토이는 평범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서그 자신이 평범해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던 독특한 천재였다.' (158쪽)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그의 저서 <장인>에서 우월한 천재와 열등한 장인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했다. 그는 고귀함과 평범함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일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고 세심하게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할 때, 손으로 하는 작업 역시 예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0쪽)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는 자신없어 했지만 빵 만드는 솜씨에 대해서만큼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울프는 즉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에서 긍지를 느꼈으며, 불가사의한 물질세계조차 상호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217쪽)
저자는 "최선은 선의 적"이라는 볼테르의 유명한 경구를 "'선' 역시 눈에 띄지 않았을 뿐 그것 역시 또다른 형태의 탁월함이라는 의미"로 풀어낸다. 수·우·미·양·가로 매겨지는 학업 성적 가운데 양(良)과 가(可) 역시 얼마나 훌륭한 뜻이냐는 말이기도 하다.
성경 고린도전서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1:27~28)라는 구절은 이 책에서 <도덕경>의 대지약우(大智若愚), 대교불공(大巧若拙)의 뜻과 상통하는 맥락으로 인용된다.
한편 저자의 주 논지보다도, 그 논지를 전개하는 데 인용되고 발단을 제공한 것이 대부분 문학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저자가 비교문학 교수이기에 어쩌면 당연할 일이나, 오직 '재미'만을 목적으로 쓴 장르소설·웹소설이 범람하는 시대에 '문학의 이상은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고전적 명제를 한 권의 단행본으로 풀어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책이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스탕달, 버지니아 울프, 안톤 체호프, 찰스 디킨스, 조지 엘리엇,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의 말과 작품, 그 속의 등장인물들을 인용하며 '평범함의 미덕'이라는 자신의 철학적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저자는 "대수롭지 않은 삶을 조명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며 "소설은 존재와 무존재 사이에 놓인 경계 위에 무엇이 서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197쪽)", "소설에는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290쪽)라고 독자들에게 손짓한다. 문학 교수님의 '전공 영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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