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서열은 불안감과 불행감의 원천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 학벌, 지위, 외모는 서열화되어 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높은 서열에 속할 수 있지만, 그곳에 속한 사람들도 마냥 편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건물 옥상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추락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곳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선망하는 것은 아니다. 니힐리스트들은 그런 종류의 성공이 허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재산, 학벌, 지위, 외모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자기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니힐리스트들의 목표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사월의책, 2022)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협력적 민주주의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는 서울여대 문성훈 교수는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에서 문제의 초점을 개인의 삶에 맞춘다. 무한 경쟁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는 니체의 철학에서 답을 찾는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내세에 대한 부정을 의미했다. 영원하고 고통 없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 생성과 소멸이 무한히 반복되는 세계뿐이다. 이는 인간 삶에도 어떤 궁극적 목적, 의미,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세계에서, 다시 말해 '무(nihil)'의 상태에서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개인이 미리 주어진 목표를 따르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는 축복이기도 하다. 참된 니힐리스트는 그러한 창조적 삶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저자는 '허무주의자'라는 번역어가 주는 비관적인 함의를 피하고자 '니힐리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유명한 말에서 저자는 또 다른 의미를 읽어 낸다. 그것은 돈이라는 우상의 죽음이다. 현대 사회는 돈이 모든 가치의 정점에 놓이는 사회다. 돈이 많으면 남들이 선망하는 학벌, 사회적 지위, 외모도 쉽게 얻을 수 있고, 지배층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돈은 무조건 추구해야 하는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이것이 경쟁 사회와 서열 사회를 만든다. 사람들은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며, 남들만큼 가지지 못해 불행해한다. 이 경우 자신에 대한 판단 기준은 항상 외부에서 주어진 것들이다. 니힐리스트는 그러한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저자는 그 예를 2010년에 고려대학교를 자퇴하며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붙인 김예슬에서 찾는다. 김예슬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기를 거부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니힐리스트의 삶에 대한 저자의 탐색은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과학과 문학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극단적 무소유를 실천한 고대 그리스의 디오게네스,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고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을 한 사르트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시지프의 신화에 비유한 카뮈, 비정상으로 취급받던 동성애자의 삶에서 존재의 미학을 이끌어 낸 푸코. 이들은 비판적인 철학 사상을 설파했을 뿐만 아니라 니힐리스트의 삶을 실천한 자들이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쿠바의 늙은 어부가 있다. 비록 소설을 위해 창조된 허구의 인물이지만 노인은 우리에게 니힐리스트의 숙명을 그 누구보다 강렬히 보여준다. 노인은 먼바다에 나가 혼자의 힘으로 엄청나게 큰 청새치를 잡지만, 청새치는 상어들의 공격으로 뼈만 남는다.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망망대해 같은 허무에 절망하지 않고 다시 바다에 나갈 계획을 세운다. 그날 밤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꾼다.
이 책은 저자의 의식 속에서 다양한 사상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독특한 풍경을 보여준다. 저자는 마르크스를 처음 접한 후에 그가 말하는 역사의 필연적 발전 사상에 공감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니힐리스트의 세계관 속에 필연적 방향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가 니체와 달리 역사도 창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니체가 말하지 않은 니힐리즘을 확장한 것이라고 본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니힐리스트 사회를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저자는 롤즈가 <정의론>에서 말한 정의의 원칙이 실현된 사회가 니힐리스트가 창조적 삶을 살기에도 좋은 사회라고 말한다. 모두의 삶의 목표가 재산, 학벌, 지위, 외모로 정해져서 서로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다름이 인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돕는 사회가 바로 니힐리스트 사회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쉽게 풀어쓴 책들은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철학 에세이와 다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서열화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을 바꿀 것을, 진짜 니힐리스트의 삶을 실천할 것을 강하게 권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끝없는 경쟁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특히 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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