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을 해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서리풀 연구通] 결혼이주여성을 향한 '유기'라는 형태의 폭력

2019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여성가족부는 이 법에 따라 3년마다 '여성폭력통계'를 공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여성폭력의 발생, 범죄자 처분, 피해자 지원까지 단계별로 생성되는 152종의 통계를 종합한 '여성폭력통계'가 2022년 12월 처음으로 공표되었다. 여가부는 수집할 수 있는 모든 통계를 일목요연하게 종합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기존 통계의 한계와 그 통계에서 확인된 문제들에 대한 개선책을 제시하지 않았고, 여성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여성폭력통계' 결과 중 가정폭력 항목을 살펴보면, 평생 현 배우자에 의해 신체적·성적 폭력을 경험하였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이 10.5%, 남성이 2.9%였고, 여기에 경제적·정서적 폭력 경험을 포함하면 응답율은 20.7%, 13.9%로 올라갔다. 게다가 이는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피해자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조사 결과이기도 하다. 젠더폭력이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 비율)이 높다는 점, 그리고 경찰청이 집계하는 '범죄통계'에서 강력범죄, 폭력범죄의 범죄자가 현 배우자인지, 이전 배우자인지 식별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피해율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해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가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가정폭력이다. 지난 3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표한 '2023년 이주여성 상담 및 보호 통계'에 따르면 서울이주상담센터를 통해 진행된 가정폭력 상담 건수(5345건)는 전년(4416건)에 비해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상담 건수(733건)도 전년(522건)에 비해 40%가량 증가했는데, 정부 실태 조사는 전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가부는 올해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가정폭력피해 조사 항목을 반영할 예정이라 해명했지만, 결혼이주여성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이들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이 일상화된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개선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 대구 폭력피해 이주여성상담소. ⓒ연합뉴스

이주여성이 경험하는 가정 내 폭력과 학대의 실태를 조사하고 통계를 구축하는 것은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개입책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신체적 폭력과 같은 가시적 형태의 폭력에만 관심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이들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학대를 식별하고 피해 이후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오늘은 최근 발표된 논문으로, 미국 내에서 학대를 경험한 남아시아 이주여성의 삶을 살펴본 연구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가기 : 미국 내 학대받는 남아시아 여성의 삶에서 나타난 초국적 유기 경험)

연구진은 두 가지 질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배우자에게 학대당한 남아시아 여성들 가운데 남편으로부터 버림받는 '초국적 유기(Transnational Abandonment)'를 경험한 여성 7명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들 중 6명은 인도, 나머지 1명은 파키스탄 출신이었고, 이들의 배우자는 모두 미국에서 거주하는 인도 출신 남성이었다. 첫 번째 연구에서 이들이 가정 폭력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였는지 살펴보았고, 두 번째 연구에서는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개입은 무엇인지를 탐색하였다.

연구 결과,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 모두 신체적, 성적, 정서적, 금전적 측면 등에서 다양한 학대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초국적 유기 경험은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통해 설명되었다.

첫 번째 주제는 여성들을 회유하거나 속여서 본국으로 돌려보내거나 미국 내에서 홈리스로 만든 것이었다. 대부분 여성은 배우자에 의해 본국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비자가 만료되거나 항공권이 취소된 경험이 있었다. 한 참여자는 계속되는 배우자의 학대를 신고했지만 결국에는 집 밖으로 쫓겨나 뒷마당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을 여러 차례 경험하였다.

두 번째 주제는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본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여성들에게 사회적 지원이 전혀 없는 새로운 도시로 가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한 참여자는 배우자의 가족에 의해 다른 도시로 강제 이주 후 고립되었고, 또 다른 참여자는 협의이혼을 위한 이혼 통지서를 송달받기도 했다.

마지막 주제는 이러한 유기 경험이 여성과 자녀와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남성들은 이주여성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부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어 법적 양육권을 확보하였고, 자녀들을 어머니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미국 내에서 자원, 소득, 법·제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주여성들로서는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진은 남성이 여성에게 지참금을 갚거나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으려고 또는 부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이러한 초국적 유기를 자행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젠더 불평등과 법적 체계의 부재로 더욱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이주여성을 유기하는 것도 분명한 폭력의 유형 중 하나다. 한국 사회도 이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 소개한 연구는 이주여성과 그 배우자의 국적이 같아 언뜻 다른 문제처럼 보일지 몰라도, 수용국 남성과 송출국 여성으로 결합한 가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형태가 권력의 위계화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경험이 배우자에게 종속된 체류자격과 함께 경제적 차이, 인종, 문화, 언어 등 여러 장벽으로 인해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을 입 모아 이야기한다.

사실 이주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을 포함한 여성폭력 문제는 결혼이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난민, 북한이탈주민에게도 해당하며, 이들의 자녀 역시 예외일 수 없다. 2019년에 이주여성 폭력피해 상담소가 전국에 개소되었지만 겨우 9곳에 불과하고, 사회적 관심과 지원체계가 결혼이주여성에 한정되어 있어 제도적, 정책적 모색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출범 직후 여성가족부 폐지를 목표로 부처 기능을 줄곧 무력화시켜 왔다. 여성 폭력 방지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 이주여성 인식 개선과 폭력피해 예방 홍보 사업 예산을 삭감하는 등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에 대응해 이주민 유입을 늘리겠다면 최소한 이들의 인권 보호와 존중을 위한 제도적 개선 노력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 서지 정보

- Bhandari, S. (2024). Experiences of Transnational Abandonment in the Lives of Abused South Asian Women in the United States. Journal of Family Violence,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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