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438일만에야 유족 오열 끝에 '이태원 특별법' 국회 통과

與 전원퇴장, "혈세 낭비" 주장…쌍특검법 재의결은 불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등을 위한 이른바 '이태원 특별법'이 참사 발생 438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 통과에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본회의장에서 퇴장하고 "참사의 정쟁화"를 주장하며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회는 9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을 재석 177석에 찬성 177표로 가결했다. 지난해 6월 30일 해당 법안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지 194일만, 그해 4월 20일 총 183인 의원 명의로 특별법이 공동발의된 지 265일만, 그리고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438일 만의 일이다.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수정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그 동안 윤석열 정권에선 10.29 이태원 참사에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꼬리 자르기식 수사로 일관했다. 참사 이후 재발방지 대책을 위한 제도정비도 없었다"며 "눈이 쏟아지는 오늘까지도 희생자 유가족들은 법안 통과를 호소하며 언 땅 위에서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멈추지 않았다. 참사의 진실이 아직도 2022년 10월 29일 그 자리 멈춰있기 때문"이라고 법안 취지를 밝혔다.

앞서 여야는 특별법 내용 중 포함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및 구성방식 등을 놓고 이견을 빚어 왔다. 박 의원은 이번 수정안을 두고 앞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을 기본으로 "국민의힘 측 고민과 노력도 반영한 수정안"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런 수정안을 제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번 수정안은 참사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을 총 11명으로 하되 국회의장이 관련단체와 합의해 3명, 국회 내 각 교섭단체가 4명씩 위원을 추천하게 한다. 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 요청 조항은 삭제됐으며, 여당 측 "참사의 정쟁화" 지적을 일부 수용해 법 시행을 4월 10일 총선 이후로 연기했다.

그러나 이날 본회의 막판까지 이어진 여야 간의 합의가 끝내 결렬되면서, 법안표결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등 야당 측 의원들만이 참여했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본회의 법안상정 시 반대토론에서 "국민과의 사회적 합의는커녕 여야 간 합의도 없이 입법폭주로 진행된 법안"이라며 "(이태원 참사에선) 더 숨기는 사실도 더 숨겨야 할 사실도 없다", "특별법으로 인해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면 국가 행정력 및 국민 혈세가 엉뚱한 곳에 낭비될 수도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펼쳐, 본회의에 배석한 유가족들의 오열과 항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상정된 가운데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상정을 두고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이 반대 토론을 하자 방청하던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측 의원들은 법안이 표결에 부쳐지자 전원 본회의장을 퇴장, 해당 법안통과가 "참사의 정쟁화", "민주당의 입법폭주"라는 주장을 펼치며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다만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앞서 이날 본회의 직전 '이태원 특별법 통과 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인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오늘 그 얘기를 할 시기는 아닌 거 같다"고 했다. 그는 특별법을 둘러싼 앞으로의 협상재개 가능성에 대해 "종전의 예에 따르면 단독통과 이후에라도 또 협상한 사례는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박 의원에 따르면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자체에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협상 과정에서 "진상규명위원회 설치에는 동의하는 것으로" 일정 정도 입장에 변화를 보였다고 한다. 조사기구의 독립성에 관한 여야 간 의견차이가 끝내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후 상황에 따라 협상재개의 가능성만큼은 열려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협상 파트너로서 윤 원내대표의 노력에 개인적으로 감사하다"면서도 "대통령실과 행안부에서 끊임없는 방해와 협상을 어렵게 하는, 오직 조사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 퇴장 후 개최한 규탄대회에서 "이태원특별법은 여야가 합의 처리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정작 본회의에 상정하여 표결해야 할 쌍특검법은 표결을 거부했다"(윤재옥 원내대표)며 "민주당은 거대 다수를 앞세운 폭정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고 반발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본회의 직후 대변인실 명의 공지에서 "특별법이 여야 합의 없이 또다시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당과 관련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앞서 '쌍특검법' 때와는 달리, 거부권 행사 관련 즉각적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2월 28일 쌍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이도운 홍보수석 브리핑을 통해 "지금 국회에서 쌍특검 법안이 통과됐다"며 "대통령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는 대로 즉각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했었다.

한편 이날 본회의 도중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권한쟁의심판 청구 검토 등을 이유로 표결을 뒤로 미루자고 했던 쌍특검법 재표결을 이날 본회의에 바로 부의하는 내용의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했지만,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과반 찬성표를 획득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본회의에서는 이태원특별법 외 법안 102건이 처리됐다. 이른바 '개 식용 금지법'으로 알려진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은 재석 210석에 찬성 208표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특별법'은 재석 266석에 찬성 263표로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상정되자 본회의장을 나와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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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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