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9일 국회 본회의에 노란봉투법·방송3법이 상정·처리되는 과정에서 필리버스터, 즉 무제한 토론을 포기한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동관 지키기'라는 비난이 나왔지만, 그 '지키기'조차 약간의 시간 지연 효과 외에는 뚜렷한 실익이 보이지 않기 때문.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3시께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원내대표는 앞서 이날 오후 1시10분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만 해도 "오늘 본회의에는 의회폭거 4대 악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예정돼 있다"며 "국민의힘은 다수당의 의회 폭거를 국민의 반대로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국민께 이 법의 문제점을 소상히 보고드리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약 2시간 후 윤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철회 입장을 밝히며 "필리버스터라는 소수당의 반대토론 기회마저도 국무위원 탄핵에 활용하겠다는 정치적, 악의적인 의도를 묵과할 수가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안을 당론 발의해 본회의에 보고됐다. 보고 후 24시간이 지나면 해당 탄핵소추안에 대한 본회의 표결이 가능하게 되는데, 해당 시점에 본회의가 열리지 않게 하면서 표결 자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국회법 130조는 탄핵소추안의 의결 절차에 대해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탄핵소추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 이 기간 내에 표결하지 아니한 탄핵소추안은 폐기된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이를 근거로 "(9일 본회의 종료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본회의가 잡힐 수도 없고 탄핵소추안은 자동으로 폐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국민의힘의 기류 변화는 이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를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에 대한 탄핵 시도에 대해 "부당하고 황당하다"고 주장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탄핵 사유를 일일이 반박하며 "야당에서 가짜뉴스 심의에 반대해서 탄핵까지 한다는 것은 혹시 가짜뉴스 단속이 본인들 선거운동에 방해되기 때문 아니냐"고까지 했다.
이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날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던 방송3법에 대해서는 "앞뒤가 안 맞는 법안 밀어붙이기"라며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라고 했다.
즉 정부·여당 내부의 셈법은, △노란봉투법이나 방송3법은 필리버스터를 하더라도 어차피 본회의 통과를 막을 수 없지만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력화할 수 있으니 △대신 탄핵소추안 통과로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는 사태는 최대한 막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동관 위원장이 이른바 '가짜뉴스 대응', 한국방송공사(KBS) 및 문화방송(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해임 등 현 정부 방송·언론정책 수행의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방통위는 국회 추천 위원 3인이 모두 공석이고, 이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등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위원장이 직무가 정지되면 최소 의결정족수인 2인도 채우지 못해 방통위 직무는 '올 스톱' 상태가 된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까지 포기하며 이번 탄핵소추안 표결을 막았지만 무한정 시간을 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국회법 92조는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하거나 제출할 수 없다"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폐기 전에) 안건을 철회하면 일사부재의가 적용되지 않는다"(홍익표 원내대표)라는 입장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일 오후 6시까지 철회 여부를 정하겠다"며 "내일 오후 6시까지 국회의장과 여당을 설득해서 본회의를 여는 방안을 (추진)해보고, 어려울 경우 철회해서 이틀 연속 본회의가 열리는 시점에 다시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앞서 여야가 합의한 정기국회 의사일정에 따르면, 9일 이후 본회의는 이달 23일과 30일, 12월 1일과 8일로 예정돼 있어 있다. 홍 원내대표 말한 '이틀 연속 본회의', 즉 72시간 내에 2차례 본회의가 열리는 시점은 이 일정상으로는 11월 30일과 12월 1일 이틀간이 유력하다.
또 민주당이 자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을 압박해 단독 본회의 개최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홍 원내대표는 "우리가 제출한 탄핵안이 본회의에서 72시간 내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의장에게 추가) 본회의 개최를 요청할 생각"이라며 "의장이 (본회의 추가 개의를) 수용하지 않더라도 정기국회 내 여러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홍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이 위원장과 검사 2인 탄핵안은 정기국회 내 꼭 처리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얼마나 방송 장악이 시급하면 방통위원장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꼼수까지 쓰나"라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러나 단순한 '시간 벌기' 자체도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나름의 기대 효과가 있다는 풀이도 나온다. 정치평론가 장성철 '공감과 논쟁' 소장은 "시간끌기 작전이라는 생각"이라며 "23일 본회의까지 시간을 미뤄 여러 가지 급한 사안을 다 의결해놓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제기했다.
장 소장은 "MBN도 30일까지 재연장을 결정해야 하고 처리할 게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 방통위는 오는 30일 MBN 재승인 여부와 조건을 심의·의결하기로 했고, 오는 12월에도 KBS 2TV, KBS UHD, MBC UHD, SBS UHD 등에 대한 재허가 심사가 예정돼 있다.
국민의힘은 한 번 폐기된 탄핵소추안은 부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인사 안건도 일사부재의 적용 대상"이라며 "자동 폐기된 것도 부결이라고 본다는 것이 국민의힘 입장"이라고 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나아가 "민주당은 '철회할 것'이라고 하지만 상정된 안건은 철회를 못 한다"며 "(탄핵소추안은) 일반 다른 안건과 달리 보고되는 순간 효력이 발생한다. 때문에 일방적인 철회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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