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2인자 "앞으로 물가 인상 압력 더 커… 기준금리 추가 인상 필요"

"시장이 인플레이션 완화 근거 없이 낙관" 일침… 기후위기는 "심각한 위험" 초래할 수도

국제통화기금(IMF)이 앞으로 전 세계가 지금보다 더 강력한 물가 상승 압력에 직면하리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압력과의 장기전을 치러야 하지만 각국은 금방이라도 물가 압력이 잡히리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져 있다는 일침도 나왔다.

특히 앞으로 세계는 기후위기로 인해 지금보다 더 심각한 인플레이션 압력에 처할 것이라며 실물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라도 과감한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한 메시지가 나왔다.

기타 고피너스 "물가 안정에 너무 오래 걸려"

IMF의 2인자인 기타 고피너스 부총재(하버드대 교수)는 26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연례회의에서 '통화정책의 불편한 3가지 진실'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이 같이 밝혔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전 세계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각국 통화정책이 세 가지 불편한 진실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부총재가 밝힌 첫 번째 진실은 "인플레이션 상황이 (각국 중앙은행의) 목표치까지 안정화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당초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2년 전 물가 급등이 시작된 후 (중앙은행의) 목표치까지 빠른 시간 안에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으나 "현실은 이전 예측보다 물가 상승률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에는 "ECB와 IMF도 포함된다"고 부총재는 부연했다.

그는 이어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인용해 "연극에서 출연진과 관객이 결코 나타나지 않는 고도(Godot)를 기다리듯 우리는 저물가 시대가 재현되기를 기다리고만 있다"며 그간 반복된 예측 실패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상황이 곧 진정되리라고만 낙관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최근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물가 인상 사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올해 안에 두 차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각국은 이미 다시금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다. ECB가 지난 15일 기준금리 0.25%포인트를 올렸고 영란은행(BOE)은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과 중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리오프닝 등이 맞물린 가운데 그간 전 세계 자산시장에 과도하게 공급된 유동성 흡수 속도가 떨어지는 모습이 장기간 관측되고 있다.

▲기타 고피너스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wikimedia

"실질금리 지금도 매우 낮아… 노동 시장 냉각 감수해야"

관련해 고피너스 부총재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장기화의 배경으로 특히 ECB를 예로 들어 "지난 1년간 기준금리를 400베이시스포인트(bp) 끌어올려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인상했지만 그럼에도 (경기는) 완만히 둔화하는데 그쳤다"며 "지금도 실업률은 역사적인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기준금리의 가파른 인상으로 경기가 둔화하면서 그 영향에 따라 물가도 안정화하기를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통화정책 영향이 뚜렷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특히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실질금리가 '여전히 매우 낮다(still quite low)'"며 "오히려 단기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앞으로도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직설한 셈이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결국 각국 중앙은행은 "근원 물가가 분명한 하향 경로에 진입할 때까지" 유로존이 엄격한 통화 관리를 유지해야 하며 "ECB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한) 중앙은행도 '(강력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노동 시장이 더 크게 냉각되더라도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질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해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 경기 침체를 무릅쓰고라도 강력한 유동성 흡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특히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강조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팬데믹 이전보다 더 큰 인플레이션 위험을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주장했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그 근거로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이 '구조적 변화'로 안착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더 크고 지속적인 충격"을 전 세계에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주장에서 한발 나아가 1990년대부터 지난 2010년대까지 이어진 세계화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주장은 실제 세계 경제학계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이 같은 전망을 반영하듯 "여러 나라가 (세계화 대신) 내향적 정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이는 생산비용을 높이고 각국이 공급 충격에 더 취약하게끔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유럽연합(EU)을 예로 들어 "팬데믹 기간에 외국인직접투자(FDI) 규제가 눈에 띄게 강화됐다"고 밝혔다.

더딘 기후위기 대응이 '심각한 위험' 초래할 수도

기후위기 또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하리라고 고피너스 부총재는 전망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전환 위험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폭"할 것이고 "파리 협정(각국이 2100년까지 세계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내로 제한하고, 실질적으로는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협정) 목표 달성이 지연된다면 무질서한 전환과 에너지 공급 중단이라는 심각한 위험(disorderly transition and serious disruptions to energy supply)을 키워 급격한 물가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즉 기후위기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물가 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이 일어난다면 금융 부문에 취약점이 있는 나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할 우려도 있다고 고피너스 부총재는 언급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한국을 콕 집었다. 

그는 "중앙은행이 시장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긴축정책을 취해야 한다면 자산가치의 급변과 신용위험의 급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며 "우리는 지난 1년간 한국, 영국, 최근에는 미국에서 긴축 정책이 상당한 금융시장 스트레스를 가할 수 있음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같이 자산시장 위험이 커질 경우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낮추거나 유동성 지원"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조치를 취하더라도 "기준금리 인하가 인플레이션 안정 목표의 약화로 해석되지 않도록 (시장과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고피너스 부총재는 덧붙였다.

특히 급격한 통화 긴축 정책이 시스템 위기로까지 번지지 않도록 하는 대응이 필요하지만 "그들(중앙은행)은 광범위한 유동성 지원은 할 수 있지만 부실 은행이나 기업, 가계를 직접 지원할 수는 없다"며 "이런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다"고 고피너스 부총재는 언급했다.

고피너스 부총재의 조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물가 인상 압력은 지금 시장의 기대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국 중앙은행이 종전보다 더 과감하게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 이 경우 신용경색 등 금융시장 위험도 덩달아 커진다. 특히 한국처럼 가계부채 부담이 큰 경우 가계의 신용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런 문제에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대응해야 한다.

즉 고피너스 부총재는 "이 같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분리 대응이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은행이 실물 경제 위기를 우려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기준(물가 안정 수준, 한국과 미국 등 각국 대부분 중앙은행은 2%를 목표로 함)이 높아야 한다"고 고피너스 부총재는 덧붙였다.

고피너스 부총재는 "지금은 제가 설명한 세 가지 불편한 진실(인플레이션 압력 완화 속도가 너무 더디다, 금융 부문 스트레스가 커질 위험이 있다, 앞으로는 팬데믹 이전보다 더 큰 인플레이션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을 마주할 때"라며 "(인플레이션과의) 전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물가 안정 없이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며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한 이들과 달리 우리는 모르는 이방인이 오기를 마냥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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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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