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에 '생태학살'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녹색 시대가 온다] ⑧ 허승규 한국녹색당 부대표 인터뷰

2023년 6월 8일부터 11일, 총 3박 4일 동안 인천 송도에서 진행된 제5차 글로벌그린즈(세계녹색당) 총회가 막을 내렸다. 이번 총회에는 전 세계 80여 개국의 녹색당과 녹색 시민 700명 이상이 참가해 기후 보호와 사회정의를 위한 지구적인 방안과 액션을 함께 공유했다. 또한 기후 위기 시대, 녹색 정치가 갖는 힘과 의미를 전 세계에 보여 주었다. 세계녹색당과 <프레시안>은 글로벌그린즈 총회에 참석하는 국가별 녹색당의 역사, 현황, 주요 정책, 주요 정치인 및 활동가 등을 소개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한국 독자들께 전한다. 곧 발표되는 글로벌그린즈의 한국 선언문에도 많은 관심을 바란다. 필자 주.

2023 글로벌그린즈 총회를 지켜보며, 전쟁 피해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글로벌그린즈의 입장이 나오길 기다렸다.

아쉽게도 이번 글로벌그린즈 총회에 우크라이나 녹색당 대표진은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1990년 우크라이나 녹색당 창당 당시 발기인으로 함께하고, 지난 30년간 녹색당원으로서 환경운동에 헌신해온 세르히 쿠리킨(Serhii Kurykin) 우크라이나 전 환경부 장관의 의견을 서면으로나마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녹색당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가 "러시아 침략 전쟁으로 평범한 시민들이 겪는 폭력, 그리고 거대한 환경 파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론 유례가 없는 잔인성을 보이며 "테러리스트, 살인자, 강간범, 약탈자로 행동하고 있는" 러시아를 막을 수 있는 것이 "군사적인 힘뿐"이라고 말했다.

'군사적 힘'을 말할 수밖에 없는 우크라이나 녹색당. 이 잔혹한 역설 앞에서 글로벌그린즈는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설 수 있을까. 허승규 한국녹색당 부대표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과 관련한 글로벌그린즈의 긴급 발의안 소식을 전했다.

▲제5회 글로벌그린즈 총회는 참석을 못했지만 영상을 통해 연대와 지지 영상을 보낸 우크라이나 녹색당 대표진들. 가장 왼쪽이 세르히 쿠리킨(Serhii Kurykin) 우크라이나 전 환경부 장관이다. ⓒ글로벌그린즈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규탄하는 추가 결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세계녹색당의 이번 긴급결의안은 우크라이나 댐 파괴 문제를 비롯한 에코사이드, 즉 생태학살의 측면에 주목했습니다."

허 부대표는 "결의안 통과까지 많은 논의와 수정 과정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결의안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녹색당은 지원 방식의 '군사'화를 경계하는 한편 '평화적 지원'을 전제로 생태학살에 대한 문제를 규탄한다는 데 동의했다.

전쟁 피해에 대한 평화적 지원을 고민하고, 이를 위해 전쟁에 대한 통상의 관점을 넘어 '생태학살'의 관점을 강조한 것이다. 녹색당 내부의 이 같은 고민은 녹색 정치가 가지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쟁에 대한 생태적 접근은 우리가 전쟁을 다룰 때 자칫 빠질 수 있는 전 지구적 고통의 재생산을 경계하게 한다.

그러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생태주의 정치, 녹색 정치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인식이다. 허 부대표는 한국 당원들이 녹색당을 만든 이유가 "다른 모든 지역의 아픔에 연대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번 글로벌그린즈 총회에서는 "동네에서 지구까지"라는 가치를 가지고 풀뿌리 정치와 동시에 글로벌 정치를 하는 녹색당들의 다양한 의제들, 정치적 경험, 성과들이 공유되었다. 눈물과 웃음이 범벅이 되었던 전당원대회는 특히 한국녹색당이 갖고 있는 힘과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지구적 평화를 위한 녹색 정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현장으로 지역 정치를 하고 있는 한국녹색당의 허승규 부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이번 연재를 마친다.

필자 : 2023 글로벌그린 총회에선 기후문제 뿐만이 아닌 전 세계 거의 모든 중요한 이슈가 다뤄졌습니다. 부대표님이 참여했던 세션을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어떤 세션이었고, 어떤 내용을 나누었으며, 어떤 분들이 주로 참석하셨나요?

허승규 : 저는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에서의 녹색당'이라는 세션에 발표자로 참여했습니다. 말 그대로 지방 및 중앙정부 경험이 있는 녹색당 사례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제니 리옹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원, 르완다 대표이자 국회의원인 프랑크 하비네자 의원을 비롯해 오스트리아와 중남미 의원들이 세션에 참여했는데요. 이미 현실정치에서 활동하는 녹색당 의원이 많고, 그만큼 제도권 참여 사례도 많은 거죠.

제가 한국의 사례를 말해야 했는데, 한국녹색당은 지방 의회와 국회에 진출한 경험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사실 녹색당이 지방의원을 보유했던 시기가 있었긴 했죠. (2006년과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과천시의원으로 당선된 서형원 의원, 2010년 지방선거에서 구미시의원으로 당선된 김수민 의원은 이후 녹색당 창당에 참여해 녹색당원이 되었다. 필자주.)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녹색당은 분명 원외 정당(no seating parties)이었고, 저는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정치를 녹색정치로 교체해야 한다는 소명에 대해, 또 그러기 위해 해결해야 할 2023년 현재 한국녹색당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에서의 녹색당' 세션에서 한국 사례를 발표하는 허승규 부대표 ⓒ한국녹색당

필자 : 이미 국회와 지역 의회에 진출한 해외 녹색당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각 나라 녹색당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또 그분들을 보면서 어떤 꿈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허승규 : 한국에서는 그동안 독일녹색당 사례가 많이 소개되었죠. 독일의 이야기는 여전히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다만 우리는 독일을 보면서 한국보다 나은 선거제도 등 '녹색정치를 하기 좋은 조건'들에 많이 주목했었는데요. 이번 세계녹색당총회에선 오히려 한국보다 선거제도가 별로라고 평가되는 나라들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칸도 아키코(Kando Akiko) 의원, 영국의 캐롤라인 루카스(Caroline Lucas) 의원 등이 보여준 당선사례, 한국보다 정치 환경이 위험한 르완다에서 대통령 선거에 나와 4.5%를 득표한 프랑크 하비네자(Frank Habineza) 의원의 사례가 큰 영감을 줬어요.

"결국 한국녹색당이 잘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한국녹색당도 외부의 불리한 조건에 개의치 않고 변화에 도전하고,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발표한 세션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2023 세계녹색당 총회 개최국인 한국녹색당 부대표로서 약속합니다. 먼 훗날 한국녹색당이 한국정부를 운영할 때가 되면, 세계녹색당 친구들을 초대하여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한국녹색당이 희망을 잃지 않고 녹색정치를 해왔다고 말하겠습니다. 그게 저의 꿈입니다. 함께 녹색 정치합시다."

이미 전 세계에 내질렀기 때문에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발해야겠습니다. (웃음)

필자 :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네요 (웃음). 승규님은 서울에서 활동하실 때 선거제도 개혁단체에서도 활동하셨는데요. 사실 한국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쉬운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선거방식이 비례대표제가 아닌 국가에서 녹색당이 선전한 사례들이 주는 시사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허승규 : 제가 지금 대통령이고, 지지율도 80% 정도 된다, 그럼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그만큼 선거제도 개혁을 오매불망 바라고 있고, 올해도 제 지역(안동)에서 선거제도 개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다만 제도가 바뀌기 위해선, 그 변화를 바라는 사람·정당들이 현재의 불합리한 선거제도 안에서도 정치세력화를 해내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를 통해서야만 개혁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정치 기득권 세력이 선거제도를 스스로 바꿔주진 않을 것인데, 우리가 언제까지 기도만 하면서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즉 한 트랙에서는 제도개혁을 그 자체를 위한 투쟁을 가열 차게 해야 하고, 다른 한 트랙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도에 진입하고, 그로써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국녹색당의 사례를 보면, 창당하고 나서 40년 만인 2010년에 원내 진출을 했잖아요.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이민을 갈 수도 없고. 하지만 영국녹색당은 아주 구체적인 지역을 선택·집중해서 결국 국회의원을 배출했고, 지금은 유럽의회와 지방의회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물론 영국 선거제도 하에서 녹색당이 차지한 의석은 하원 573석 중 1석, 상원 776석 중 2석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실제 '아래로부터의 힘'은 이 한 두석 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5월에 실시된 영국 지방의회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똑같이 소선거구제로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이 크게 선전했습니다. 무려 241석이 증가하여 총 481명의 지방의원이 당선되었고, 특히 미드 서퍽(Mid Suffolk) 지역에서는 34석 중 24석을 차지하여 영국 역사상 최초로 의회 다수당이 되었습니다. '제도를 바꾸는 원동력'이 점점 만들어지고 있어요.

필자 : 총회 마지막 날 발표된 '한국선언'에 담긴 결의안 내용은 곧 글로벌그린즈에서 제공을 할 것이고 한국어로도 공유될 예정이지요. 부대표님에게 인상적이었던 결의안이 있다면 한 가지 이야기 해주세요.

허승규 : 이번 세계녹색당총회에선 긴급결의안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규탄하는 추가 결의안이 통과됐어요. 특히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 평화, 침략의 측면에서 전쟁을 바라봤다면, 이번 녹색당 총회는 우크라이나 댐 파괴 문제를 포함해 에코사이드(Ecocide), 즉 생태학살의 측면을 주목해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 결의안의 경우 초반에 조금 논란이 되었는데요. 이 같은 입장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인 지원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입니다. 결국 많은 논의와 수정 과정을 거쳐 결의안이 완성됐어요. 한국녹색당도 평화적 지원을 전제로 생태 학살에 대한 문제를 규탄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국제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녹색당이기 때문에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구나' 느꼈고, 에코사이드라는 표현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글로벌그린즈에서는 러시아 푸틴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과 관련해, 무고한 시민뿐만 아니라 비인간 동물과 식물을 파괴하는 에코사이드 전쟁을 멈추라고 규탄했다. ⓒ글로벌그린즈

필자 : 한국 정치, 정당 활동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의 지역당원들이 모여 잔치 같은 시간을 가진 이번 녹색당 전당대회는 더 의미가 깊었을 것 같아요. 전당대회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허승규 : 녹색당이 창당대회 이후에 재창당대회도 했고, 2016년 밀양에서 당원 한마당 행사도 했어요. 이번 전당대회 무대에 지역당 분들이 나오셔서 자기 당을 소개하시는 것을 보니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펑펑 운 건 아니고 (웃음) 웃고 있는데 계속 눈물이 흘렀어요.

녹색당이 2019년 하반기부터 굉장히 어둡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잖아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분이 당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도 당에 남아서, 중앙 녹색당 뿐만 아니라 녹색당 바깥에서까지, 지역에서 녹색 가치를 확산하는 활동을 해온 당원들끼리 우애의 시간을 보낸 것 자체가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녹색당의 자산은 당원들입니다. 당원들의 마음에 따라서 표가 움직이고 정치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녹색당원들의 마음을 서로 재확인하는 시간이 감동적이었고, 저 또한 많은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필자 :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장혜영 의원, 청년진보당 홍희진 대표, 기본소득당 오준호 대표, 미래당 최지선 기후미래위원장이 현장을 찾아 세계녹색당총회와 전국당원대회 개최를 축하해 주시기도 했어요. 제 느낌일 수도 있는데, 저희를 굉장히 부럽게 보시는 것 같았거든요. 이유를 생각해보면 녹색당이 가진 이런 우애와 흥, 바이브는 다른 정당에는 없어서인 것 같아요. 제 착각일까요? (웃음)

허승규 : 많은 분이 녹색당 행사에 오시면 저희 당의 그런 잠재력, 가능성을 느끼신다고 하는데, 물론 좀 자세히 봐야 보이는 것 같아요. (웃음) 부러울 만하죠, 그럼요.

▲글로벌그린즈 총회 개최와 녹색당 전당대회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자리에 함께한 타 정당 정치인들. 왼쪽부터 미래당 최지선 기후미래 위원장, 청년진보당 홍희진 대표, 기본소득당 오준호 대표,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과 이정미 대표. 그 옆으론 녹색당 김찬휘 대표와 김혜미, 허승규 부대표. ⓒ한국녹색당

필자 : 유럽의 경우 다양한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이 있고, 환경에 관심 있는 교사들, 공무원들, 노조 조직이 있고, 이들의 표가 선거 때 녹색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의 경우 마찬가지로 환경 관련 시민단체도 많고, 환경문제를 인식하는 시민들도 많이 있는데 이게 왜 녹색당 가입이나 녹색당 표로 이어지지는 않는 걸까요?

허승규 : 근본 원인을 따지자면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까지는 올라가야겠죠. '정치혐오' 현상부터해서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다만 이것은 논외로 하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해요.

한국에서 녹색 시민들이 0.23%(2022년 지방선거 시 녹색당 정당 득표율. 필자주.)밖에 안 될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독일 68혁명의 아이콘 루디 두치케가 '제도권을 향한 대장정'이란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녹색 시민사회 진영과 녹색 정당정치가 결합됐다는 말이죠. 한국의 경우 녹색당 창당 때 녹색당이 녹색 시민사회와 조직적으로 결합하지 못했습니다. 한국녹색당이 한국 내 녹색 단체, 녹색 시민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선거 때만 '우리가 녹색 정책을 내세우겠다, 찍어줄 거냐' 묻는 게 아니라, 평소에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죠.

한국의 녹색 진영 또한 정치 전략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먼저는 녹색당이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당원들에게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정당정치 용어에는 멥버십과 파티전십이 있습니다. 멤버십은 소속감이고 파티전십은 일체감이죠. 당원은 아니지만 녹색당을 지지하거나 우호적인 시민들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당원 중에는 환경단체, 생활협동조합, 기후정의 진영에서도 멤버십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많아요. 본인이 속한 녹색 단체와 정당을 연결할 수 있도록 그 전략을 계속 고민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 저는 안동 녹색당 지역위원장이면서, 지역의 환경단체 집행위원이고요, 지역의 생활협동조합의 대의원입니다. 만약 안동 녹색당에서 녹색 의제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싶은데, 녹색당 자원으로는 우리가 초대하고 싶은 강사를 모실 수 없다면? 비슷한 지향을 가진 환경단체나 협동조합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우리는 당원으로 참여하면 되는 거죠. 행사에 기여한 당원이 '내가 녹색당원이다'라는 말 한마디 해주는 것도 도움이 돼요.

실제로 우리 당원들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데, '왜 녹색당은 안 보이냐'는 얘기 들으면 천불이 납니다. 행사 끝나고 녹색당 분들 모이세요! 해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됩니다. 이런 작은 행동 하나만 해도 단체 활동가가 와서 "와, 녹색당원이셨어요?" 하는 거죠. 저는 녹색당원들이 아직 잠재력을 다 쓰지 않았다고 봐요. 우리의 역량을 쏟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당은 아직 잠재력이 터지지 않았어요. 우리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 뿐, 우리가 날개를 펼칠 시간은 남아 있고,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습니다.

필자 : 다만 그런 상황에서 머뭇거리는 당원들 중엔, 녹색당이 겪었던 시행착오에 떳떳하지 못해서, 혹은 (혐오세력 등에) 공격받을까봐 하는 마음에 어려움을 느끼는 당원들도 있을 것 같아요.

허승규 : 그렇죠. 교육과 훈련, 그리고 단계적 접근은 필요해요.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은 당연히 존중해야 하고요. 특히 혐오세력 앞에서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이런 녹색 진영, 누워도 되는 자리에선 눕자는 것이죠. 한살림 조합은 조합원이 80만 명이고, 환경운동연합 회원도 수만 명이에요. 이런 단체에서 아직 녹색당이 인정을 못 받고 있어요.

녹색당원들이 여러 단체 곳곳에서 요직을 맡고 있습니다. 녹색당에서 가끔 그런 분들을 모시려고 하면 '저 녹색당 활동 거의 안 해서 잘 몰라요'라고 하셔요. 그분이 녹색당 내부 조직 경험은 많이 안 하셨을지 모르지만, 녹색 시민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면 넓은 의미에서 녹색당 활동을 한 거라 생각해요. 녹색당이 당내 조직기구 내에서 활동한 당원들은 그것대로 인정을 해주되, 당비를 내면서 어느 녹색 단체에서 연구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을 호명하고, 초대하고, 네트워킹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야기한 것들은 무엇을 엄청나게 크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 주변의 분위기는 많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 :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지난 5월 1일부로 김혜미 당원과 함께 녹색당 부대표로 임명이 되셨어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후정의와 녹색정치 실현을 위해 기성 정치권력을 재구성하고, 녹색 시민들에게 더 다가가겠다"는 목표를 밝혀 주셨는데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눠주세요.

허승규 : 총선이 300일 정도 남았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녹색당의 선거 전략을 어떻게 가져갈지 준비해야 할 시점인데요, 3% 득표율을 통해 원내에 진입할 것인지, 혹은 독자적으로 참여하는 게 어려워 연합정치를 한다고 하면, 연합 정치의 기준, 범주, 대상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등을 많이 토론해야 해요.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선거연합을 둘러싼 논란이 컸죠. 많은 당원이 선거 연합의 내용에 반대해서라기 보다는, 급박한 시기에 충분한 토론 없이 급작스럽게 결정됐기 때문에 탈당했다는 분들이 있어요. 부대표로서 선거라는 급격한 정세 속에서 중요한 사안에 관해 토론하는 과정을 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꼭 부대표로서가 아니더라도, 제 자리에서 계속 참여하고 토론할 것입니다.

▲녹색당 전당대회에서 발언 중인 허승규(가장 왼쪽), 김혜미(가운데) 부대표. ⓒ한국녹색당

필자 : 녹색당에 입당하신 후에 당직자로 활동하시다가,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와 지역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2018년,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셨고요. 그 사이에 총선도 있었는데 출마하진 않으셨어요. 지역 의회에서부터 녹색정치를 하려는 의도였는지,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실까요?

허승규 : 당시 총선에서 녹색당의 전략은 전국 단위 비례대표 3% 지지율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려는 쪽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 출마는 지방선거에 비해 전국적인 당내 논의가 더욱 중요합니다.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며, 당내 논의와 함께 역할을 정하게 될 것입니다.

총선 논의와 별개로 지역의 정치 거점을 만드는 역할은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독일 녹색당은 그동안 지지율이 급격히 오르지도 않았지만, 급격히 내려가지도 않았다는 글이 기억납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지역 또는 의제 중심으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거죠. 한국도 녹색 정치의 기반이 되는 '거점'이 단단해져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색도시 안동을 만드는 일, 녹색 정치를 통해 그것을 구현하는 일을 지역에서 해나가려 합니다. 녹색당 의원과 녹색당 정부를 지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만들고 싶습니다.

필자 : 20대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내고 다시 안동 지역구로 왔습니다. 안동에선 어떤 마음을 갖고 활동하고 계신가요. 어떤 지역정치를 원하죠?

허승규 : 저는 '안동만 잘 살겠다'는 목표로 지역정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 운동이 보편성을 놓치면 그냥 지역 이기주의가 되겠죠. '동네에서 지구까지'라는 녹색당의 가치처럼, 지구적 평화를 위한 '녹색 정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현장'으로 제가 사는 지역을 바라보고 있어요.

솔직히 첫 출마 이후 1년간은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지역구 정치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깨달았고, 진로 고민도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정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먼저 미디어나 사람들이 말하는 여론과 다른 '숨겨진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실제로는 더 많은데, 선거제도나 어떤 정당의 독점 구조 때문에 그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어요. 만약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제가 그 정도 득표를 얻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허승규 부대표는 2018년 지방선거 경북 안동시의회 마 2인 선거구에서 16.5%로 4위, 2022 지방선거에서는 18%로 3위를 기록했다. 필자주.)

지역정치를 계속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활동하면서 만난 정좋은 네트워크 덕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20대 때는 주로 서울에서 보내다 보니 청년기에 고민을 많이 나눴던 네트워크가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에 많이 있었어요. 이제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 많아지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먼저 저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계셔요.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네트워크가 점점 늘어가고 있어서 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이 사람들이 여기서 멋진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제가 안동에서 하는 활동들이 결국 전국적인 녹색당의 활동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태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연결이에요. 풀뿌리 민주주의가 간혹 뿔뿔이 민주주의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각자도생처럼요. 그런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녹색당을 만드는 것은 다른 지역의 아픔을 연대하기 위해서이고, 우리 지역만 생각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물론 지역당 연합체라는 구조에서 조직의 속성상 안동녹색당 경북녹색당, 또 전국녹색당과 이해가 상충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우리는 연결성으로서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연방제 민주주의의 안 좋은 예를 답습할 수 있어요. 지역 활동을 할 때도 지구적으로 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당대회때 경북녹색당의 지역당 소개 시간. 한국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이지만, 한국녹색당 최초 지역의회 의원 당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녹색당

필자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허승규 : 이번 총회 때 제가 '녹색당의 소명'이란 제목으로 발언했어요. "녹색당의 소명은 지구적 환경과 우리들의 삶을 파괴하는 정치를 교체하는 것이다." 생태 파괴를, 우리네 삶의 파괴를 우리가 직접 바꾸기 위해 창당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소명은 바로 정치 자체를 교체하는 것입니다.

저항이라는 말 대신 '교체'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실종된 기득권 정치에 대한 저항을 넘어, 그 자리를 밀어내고 우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정치 교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은 희망을 엮는다"라는 말처럼, 녹색당원들과 녹색시민들이 연결되어서 희망의 녹색정치를 힘차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녹색 정치를 통해 우리 사회를 바꾸겠다는 녹색당의 꿈은 아직 도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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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어진

한국과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정치/사회 부문 기고, 번역, 리서치, 팟캐스트 제작, 라디오 방송 리포팅을 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키워드로 독일에 사는 한국 녹색당원들과 만든 <움벨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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